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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제르 쿠데타 배경
2. 니제르 쿠데타 여파
올해 7월 26일 아프리카 사헬(Sahel) 지역에 위치한 니제르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대통령 경호대(Presidential Guard) 수장 압두라흐마네 치아니(Abdourahamane Tchiani)를 위시한 군부 인사들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하메드 바줌(Mohamed Bazoum) 대통령을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쿠데타 세력은 바줌 대통령을 감금하고 정부 고위 인사들을 체포하고, 동시에 헌법과 정부 기관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인접국과의 국경을 폐쇄하였다. 쿠데타 인사들로 구성된 ‘조국수호국민회의(CNSP: Conseil National pour la Sauvegarde de la Patrie)’는 치아니 장군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였고, 과도 정부 내각을 출범시켰다.
국제 사회는 니제르 군부 쿠데타를 비난하면서 바줌 대통령의 석방 및 민주 정부 복구를 요구하고 있다. 니제르를 회원국으로 둔 아프리카연합(AU: African Union) 및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는 사태 해결을 위한 협상에 착수하였다. 더 나아가 ECOWAS는 경제제재 시행과 더불어 민정 복귀 거부 시 쿠데타 세력 축출을 위한 군사 개입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니제르를 사헬 지역 반테러 군사 작전 본거지로 삼는 프랑스,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은 니제르와의 군사 협력 및 경제 원조 중지를 선언하고, 또한 니제르 거주 자국민 철수에 착수하였다. 심지어 바그너 용병 진출 등을 통해 대(對)아프리카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는 러시아도 니제르 쿠데타에 우려를 표명하였다.
국제 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니제르 쿠데타 인사들은 바줌 대통령 석방 및 민정 복구 요구를 거부하면서, 3년의 과도기를 거친 후 민정으로 이양하는 안을 제시하였다. 특히 ECOWAS의 무력 사용 움직임에 반발하면서, 군사 개입에 저항할 뜻을 밝혔다. 니제르 이전 쿠데타로 집권한 말리, 부르키나파소, 기니 지도자들은 쿠데타 세력에 지지를 표하며 군사 개입 반대를 천명하였다.
1. 니제르 쿠데타 배경
니제르 쿠데타는 바줌 대통령과 군부 고위 인사들 간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니제르는 폭력적 극단주의 무장 활동으로 정세 불안을 겪고 있다. 말리, 부르키나파소와의 국경 지역에서는 다에쉬[Daesh,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연계 조직인 이슬람국가 대(大)사하라지부(ISGS: Islamic State in the Greater Sahara), 알카에다 연계 조직인 이슬람·무슬림 지지그룹(JNIM: Jama’at Nasr al-Islam wal Muslimin) 등이 공격을 전개하고 있다. 동시에 나이지리아 북동부 지역에 본거지를 둔 보코 하람(Boko Haram)과 분파 조직 이슬람국가 서아프리카지부(ISWAP: Islamic State’s West Africa Province)가 국경을 넘어 니제르에서 테러 공격을 자행하고 있다. 바줌 대통령은 이러한 안보 위기 해결을 위해 ‘종합적인 접근(holistic approach)’ 방식을 추진하였다. 즉 군사 작전 전개와 더불어 무장 조직과의 대화 및 조직원의 탈극단화(deradicalization)를 유도하는 유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군부 인사들은 이러한 접근 방식에 반발하면서 군사 작전 위주의 해결방식을 선호하였다. 이들은 유화책이 무장 활동 소탕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이와 더불어 대통령과 군부 간 갈등은 종족 간 대립 양상을 지닌다. 바줌은 권력에서 소외되어 온 아랍 종족 출신이며, 독립 이후 권력을 장악해 온 다수 종족 하우사-풀라니(Hausa-Fulani) 및 제르마(Djerma) 출신이 아닌 첫 번째 대통령이다. 기존의 엘리트 집단은 바줌을 ‘외국 출신’으로 인식하면서 그의 집권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더구나 바줌이 안보 부문 개혁을 추진하면서 군부 엘리트의 반발이 증폭되었다.
사헬 지역에서 확산 중인 반(反)프랑스 정서는 니제르 쿠데타에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는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차드 등 구(舊)식민지 국가들의 독립 이후에도 내정에 간섭하여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프랑사프리크(françafrique) 정책을 펼쳤다. 이는 구식민지 대중 사이에서 프랑스에 대한 반감을 초래하였다. 2010년대 초 시작된 프랑스의 사헬 지역 군사 개입은 반프랑스 정서 확산에 일조하였다. 말리 내전에 개입하여 안사르 디네(Ansar Dine) 등 폭력적 극단주의 단체들을 외곽 지역으로 몰아낸 이후 프랑스는 약 5,000명 규모의 병력을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차드에 파병하여 바르칸(Barkhane) 작전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폭력 사태가 지속되면서 니제르인들의 프랑스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고조되었다. 또한 독립 이후 지속된 프랑스의 우라늄 등 광물자원 개발이익 독점은 니제르 내 반프랑스 정서 고취에 기여하였다.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팽배하는 상황에서 바줌 대통령은 군사 역량 강화를 위해 말리에서 철수한 프랑스 병력을 받아들이고,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 서방 국가들과의 군사 협력 강화를 추진하였다. 이는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외국군 주둔으로 인한 영향력 약화를 우려한 일부 군부 지도자들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쿠데타 세력은 반프랑스 정서 팽배가 쿠데타 성공 및 이후 정권 유지를 보장해줄 것으로 판단하였다.
인접국 말리, 부르키나파소의 쿠데타 성공은 니제르 군부를 자극하였다. 말리, 부르키나파소 군부는 민선 정부가 폭력적 극단주의 공격 확산, 부패, 경제 악화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면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쿠데타 발생 직후 AU, ECOWAS는 말리, 부르키나파소에 대한 회원국 자격 정지 및 경제제재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말리, 부르키나파소 쿠데타 지도자들이 민정 이양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이들 지역 기구는 제재를 해제하였다. 인접국의 성공 사례는 니제르 군부 인사들에게 쿠데타 시도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2. 니제르 쿠데타 여파
니제르 군부 쿠데타는 사헬 지역을 비롯한 서아프리카 정치·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AU, ECOWAS는 쿠데타를 통한 정권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민주주의 규범 고착을 위해 노력해왔다. 니제르 쿠데타로 사헬 지역 말리에서 수단으로 이어지는 ‘쿠데타 벨트’가 형성되면서 이러한 노력은 위기에 봉착했다. 즉 니제르 사태가 역내 쿠데타 확산 및 민주주의 퇴보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위기 인식은 나이지리아를 주축으로 한 ECOWAS 차원의 무력 대응 모색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군사 개입은 회원국 간 분열 야기, 니제르 민족주의 고취를 통한 쿠데타 지지 증대, 서구 군사 원조를 받은 니제르 군과의 전투 장기화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고려하여 ECOWAS는 외교적 해결 노력을 경주하면서 무력 사용을 ‘마지막 수단(last resort)’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쿠데타로 인한 안보 공백 및 쿠데타 세력의 군사적 해결 방안 선호는 니제르 내 폭력적 극단주의 무장 활동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말리, 부르키나파소 군사 정부 하에서 지하디스트(jihadist)의 공격 빈도 및 희생자 수가 오히려 증가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설상가상으로 사헬 지역 테러활동 증가는 가나, 토고, 코트디부아르 등 기니만 연안 국가들의 안보 불안을 가중시킬 전망이다.
니제르 쿠데타는 사헬 지역을 둘러싼 강대국 간 세력 경쟁을 촉진할 전망이다. 니제르는 프랑스, 미국의 반(反)테러 작전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 프랑스는 말리에서 철수한 병력을 니제르로 이동시키면서, 니제르는 바르칸 작전의 중심지가 되었다. 미국은 아가데즈(Agadez)에 드론 기지를 운용하고 있으며, 1,100여 명의 미군이 니제르 정부군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독일이 니제르 군 훈련 등을 담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구 국가들은 자원 개발, 아프리카발(發) 이주민 문제 해결 차원에서 니제르에 접근하였다. 우라늄, 석유, 금과 같은 자원의 풍부한 매장량은 니제르의 경제적 가치를 제고하였다. 이와 더불어 니제르가 사하라 사막을 건너 유럽으로 이주를 시도하는 아프리카인들이 모이는 거점인 관계로 유럽 국가들은 이주민 유입 감소를 목적으로 니제르에 상당량의 원조를 제공하였다.
니제르 쿠데타는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력 감소 및 러시아의 영향력 증대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반프랑스 정서를 등에 업고 집권한 니제르 군부 인사들이 프랑스, 미국과의 군사 협력을 축소하면서 이 공백을 러시아가 메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즉 폭력적 극단주의 세력 소탕을 위해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모색하면서 인접국 말리, 부르키나파소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쿠데타 성공 후 군사정부는 프랑스와의 국방 관련 조약 파기를 선언하였고 프랑스 정부가 바줌 대통령 복귀를 목적으로 정치 불안을 조장한다고 비난하였다. 동시에 니제르 쿠데타 세력이 러시아 바그너 용병그룹과 접촉하여 지원을 요청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러시아의 군사적 진출은 자원 개발 진출을 동반하는바, 프랑스, 미국 등의 자원 개발에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니제르와 유럽 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이주민 유입 감소를 위한 협력이 훼손될 수 있다. 따라서 프랑스, 미국의 ECOWAS에 의한 사태 해결 노력 지지는 러시아 견제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 붙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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