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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2. 국제범죄에 대한 현직 국가원수의 책임 및 면제권
3. 북한 지도부에 대한 책임 추궁 가능성
4. 한국의 정책적 대응 방향
1. 배경
북한 인권 문제가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북한 지도부에 대한 책임 문제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는 2003년부터 유엔인권위원회 북한인권결의안과 유엔 총회 결의 등을 통해 계속 국제사회에서 제기되어 왔지만, 북한 지도자들에 대한 책임까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2월 발표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통해서이다. 그 당시 유엔인권이사회 결의에 따라 설치되었던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이뤄지고 있어 '인도에 반한 죄’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히며, 북한 최고 통치권자들과 가해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로 회부하거나 유엔 특별재판소를 설립하는 방안을 권고하였다. 이에 따라, 2014년 12월 유럽연합과 일부 유엔 회원국들은 북한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로 회부할 것을 권고하는 유엔 총회 결의를 116개국의 찬성표로 채택할 수 있었고 같은 해 12월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처음으로 북한 인권 상황을 정식 안건으로 채택할 수 있게 되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결국 재판소로 회부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3월 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과 알바니아의 제안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특별회의를 개최하였고, 이 자리에서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은 북한의 국제범죄에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해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형사재판소 기소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유엔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국제형사재판소는 3월 17일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도 발부하여 현직 국가원수에 대한 책임 추궁이 점차 더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여러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는 시점에 있다. 물론 국제형사재판소가 현직 국가 원수에 대해 재판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 국제법적으로 정당한지에 대한 국가 간 논란이 지속되고 있어 비협조적인 국가들이 상당수 있고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북한의 인권상황이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회부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유엔인권이사회는 국제형사재판소 외 다른 플랫폼을 통해 북한의 책임을 규명하는 방안도 언급하고 있으므로 여러 가능성을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2. 국제범죄에 대한 현직 국가원수의 책임 및 면제권
국제형사재판소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영장 발부를 통해 현직 국가원수에 대한 책임을 추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다르푸르 지역에서의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한 죄를 저지른 혐의로 오마르 알바시르 전 수단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2009년에 발부한 바 있고,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주권 침해와 면제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수단 정부는 재판소의 영장 발부는 수단의 주권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며 협조를 거부했고, 수단 내 국제구호단체들을 추방하기도 하였다. 그 외 아프리카연합과 아랍연맹 비동맹운동회의 소속 국가들도 재판소 결정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알 바시르 전 대통령을 헤이그로 인도하는 절차에 협조하지 않아 실질적인 체포가 이뤄지지 않아 법의 한계가 지적되기도 하였다. 알바시르 전 대통령이 2019년 군에 의해 축출당하고 부패 혐의로 수단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아 교도소에 수감되고 나서야 수단 정부는 2021년 알바시르 전 대통령을 국제형사재판소로 넘기기로 결정할 수 있었다.
국가원수는 국제법상 주권면제를 향유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지만 국제형사재판소가 이처럼 현직 국가원수에 대해 영장을 발부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규정 제27조 에 근거해서이다. 동 규정에 의하면, 국가원수 또는 정부 수반을 포함한 정부 공무원으로서의 공적 지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에 대한 형사책임을 면제시켜 주지 아니한다고 하고 있고, 국내법 또는 국제법상으로 개인의 공적 지위에 따르는 면제나 특별한 절차규칙은 그 개인에 대한 재판소 관할권 행사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 규정은 국제범죄에 대한 불처벌(impunity)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재판소의 설립 목적을 반영한 것으로서 동 사건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재판소는 판단하였다. 수단 정부는 로마규정의 당사국이 아니라는 점에 강하게 항의하였지만, 재판소는 유엔 헌장 제7장에 따라 수단 사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소추관에 의해 회부되었으므로 재판소는 이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근거하여 관할권을 행사하고 체포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고 결정하였다. 그 이후 재판소는 알 바시르 전 대통령이 제노사이드도 범했다는 이유로 2010년에 두 번째 영장을 발부하기도 하였고, 2019년에는 요르단 정부가 알 바시르 전 대통령이 요르단을 방문하였을 때 체포하지 않아 국제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함으로써 관련국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리비아 사태 때도 리비아의 인권 상황이 2011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통해 국제형사재판소로 회부되어 그 당시 리비아의 지도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지만, 독재자 카다피가 같은 해 10월에 사망하면서 사건은 종료되었다.
2023년 3월 17일 국제형사재판소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함에 따라 알 바시르 전 대통령, 독재자 카다피에 이어 세 번째로 국제형사재판소가 현직 국가원수에 대해 개인형사책임을 추궁하게 되었다. 재판부는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아동을 불법적으로 이주시킨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볼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보았다. 푸틴 대통령이 비록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직접 이주시키지 않았더라도 푸틴의 권한과 영향력 아래 있는 민간인과 군 하급자들을 통제하지 못함으로써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제25조 아래 직접적 또는 공동으로 범한 혐의가 있다고 본 것이다. 러시아도 수단과 리비아와 같이 로마규정 당사국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는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의 선언을 통해 크림반도 병합 이후의 사건들과 2014년 2월 20일부터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모든 사건들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권 행사를 허용하였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혐의로 책임 추궁이 가능했던 것이다. 재판부는 또한 같은 날 마리야 리보바-벨로바 러시아 대통령실 아동인권 담당위원에 대해서도 동일한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함으로써 러시아 지도부에 본격적으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국제형사재판소가 강대국인 러시아의 지도자에 대해서 이와 같은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한 것은 향후 어떠한 국가원수도 국제범죄에 대한 형벌을 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end impunity)는 국제사회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북한 지도부에 대한 책임 추궁 가능성
국제형사재판소에서 현직 국가원수에 대한 책임 추궁을 인정하고 있는 이러한 국제사회의 추세는 향후 북한 인권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작년부터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은 2014년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언급하며 북한 정부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 바 있고, 2023년 제52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된 ‘북한 인권 책임규명 보고서’도 북한 내 조직적인 강제실종, 해외 강제노동, 인신매매가 발생하고 있다고 하며 국제형사재판소나 특별재판소 설치 등을 통해 북한 지도부에 대한 형사책임 추궁을 권고하였다. 그리고 살몬 특별보고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특별회의에서 북한 정권을 상대로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함으로써 형사 처벌 외에도 북한 지도부에 대한 민사상의 책임을 제안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북한 지도부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북한은 로마규정 당사국이 아니므로 국제형사재판소가 북한 지도자들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리비아의 사태에서와 같이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통한 국제형사재판소로의 회부 방안밖에 없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 현실적으로 회부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이에 따라, 숌버그 전 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 전쟁 때 채택되었던 ‘평화를 위한 단결’과 유사하게 유엔 총회에서 표결을 하도록 하는 방법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안전보장이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밖에도 개별 국가에서 형사상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하여 피노체트 사건과 같이 보편적 관할권을 행사하는 방법이 있다. 실제로 제52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된 ‘북한책임규명 보고서’는 상당수의 피해자들이 한국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법원이 보편적 관할권을 행사하는 방법도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보편적 관할권 적용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어 실질적으로 이를 행사하는 국가들이 거의 없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 외에도 북한 정부에 대한 민사 소송, 특별재판소의 설치 및 인권침해로 인한 대북제재 등 여러 가능성이 유엔 보고서와 전문가들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4. 한국의 정책적 대응 방향
현직 국가 원수에 대한 책임 추궁이 국제형사재판소를 중심으로 더 강화되고 있는 현 국제 추세에 따라 북한 지도부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책임 규명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가 이러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들을 함께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올해 3월 30일 통일부에서 발표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 등 통해 북한 주민의 인권 실상을 국내외에 계속 공개하고 북한의 인권 침해 정보를 수집하고 보존하고 있는 유엔 기구들과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다른 나라의 사례들도 검토하여 국내의 법체계를 통한 책임 규명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유엔의 ‘북한책임규명 보고서’는 한국이 국제범죄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는 포괄적인 법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한 참신하고 창의적인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힘입어 여러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이 여러 법적 조치들을 고려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한국 정부도 이에 따른 외교 대응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붙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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