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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전황 및 향후 전개의 핵심 변수들
2. 협상 국면 형성 가능성과 주요국들의 입장 및 역할
3. 대중․대인도 관계 강화 노력 속 중앙아시아․중동․아프리카 등에서 군사적 영향력 유지 과제
4. 푸틴의 2024년 대권가도에서의 전황, 경제적 상황, 엘리트 및 민심 변수
5. 북․러 밀착과 한․러 관계 위기 속 러시아의 동북아 전략 주목
2023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국면은 크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미국 및 동맹들 간 소모전 지속, ▲수세에 몰린 러시아의 핵 사용과 이후 예측불허한 전개, ▲평화 협상 시작이라는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전개될 수 있다. 협상 국면이 조성된다고 해도 러시아는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할 것을 요구할 것이고, 우크라이나와 미국은 이를 인정할 수 없을 것인바, 전쟁이 오랜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줄이게 된다면 우크라이나는 협상에 응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어 미국의 입장이 우크라이나 전황 전개에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2023년 러시아는 중국․인도와의 관계 강화에 진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중 관계에 있어 러시아는 양국 간 연대를 강화하면서도 중국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자기 중심’을 지켜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 판단된다. 러시아에게 인도의 전략적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에서 인도 역시 대러 관계에서 실리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2023년 러․인도 관계가 국제 질서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여기에 대인도 관계에 있어서는 양국 협력의 기초라 할 수 있는 러시아의 무기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지 여부도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이 되지 않고 러시아가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하는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러시아가 소위 ‘군사 외교(military diplomacy)’ 차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군사력 투사를 통해 영향력을 유지․강화시켜온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유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2023년은 러시아 국내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푸틴(Vladimir Putin)이 후계자에게 권좌를 물려주고자 한다면 후계자가 대선을 준비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 후계자를 지명해야 한다. 전쟁의 부정적 영향이 러시아 사회 각 부분에 미치고 정치적 부담이 커지는 경우에도 푸틴이 재출마를 선언할 것인지가 관건인데, 향후 ▲전개될 전황 및 경제 상황, ▲집권 엘리트 내 분열 여부, ▲러시아 국민들의 푸틴에 대한 지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러시아는 북핵불용 원칙을 고수하고 남북 균형 외교 속에서도 한국과의 관계를 보다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의 대한반도 전략의 기본 기조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1. 현재 전황 및 향후 전개의 핵심 변수들
2022년 11월 우크라이나가 개전 초 빼앗겼던 헤르손(Kherson) 시를 포함하여 헤르손 주의 약 1/3을 수복하고 러시아 군이 동 지역에서 퇴각함에 따라 우크라이나 군이 승기를 잡은 듯 했다. 그러나 이후 드네프르강 동쪽으로 후퇴하여 정열을 정비한 러시아가 동부 지역의 솔레다르, 바흐무트 등 지역에서 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올 봄 러시아의 총공세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서방은 새로운 공격용 무기 지원을 결정했다.
그동안 확전을 우려해온 미국과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용 전차 지원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으나, 지난 1월 25일 미국이 M1 에이브럼스 전차 31대를, 독일은 레오파르트2 14대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독일을 포함하여 서방 국가들이 지원을 약속한 전차 수는 총 100여 대로 추산된다. 이에 대해 나토 측은 “러시아에 대한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 무기”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크레믈린은 “나토의 직접 개입”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러시아 측은 서방으로부터 첫 제공되는 공격용 전차를 이용해 우크라이나 군이 러시아 영토 내까지 공격할 가능성을 제기한바, 향후 전황은 예측불허한 방향으로 격화될 우려가 있다.
한편, 서방으로부터 제공되는 전차들의 전투 현장 배치까지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점, 또한 전차들의 사양이 우크라이나 군이 익숙한 기존 소비에트 시기의 T-72 모델과 매우 달라 훈련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점들이 지적되면서 현재 우크라이나 군의 수세적 상황과 3월로 지목되고 있는 러시아 군의 총공세를 막아내는 데 금번 지원이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서방의 전차 지원 결정과 거의 동시에 전투기 지원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이 전투기 지원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그동안 미국과 독일은 전투기 지원 문제와 관련하여 일관되게 불가 입장을 견지해왔고 이번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그간 서방이 많은 자체 금기를 깨면서 지원 무기의 수위를 높여 왔고 미국 내에서는 주력 전투기종이 F-35로 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F-16의 처리 시점으로 적절하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서방의 전투기 제공과 관련해서 이미 서방 군사 전문가들 내에서는 복잡한 조작법 훈련 등 전차 제공 때와 유사한 기술적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서방의 ‘확전 방지를 위해 우크라이나 군의 러시아 영내 공격 상황은 막는다’는 원칙을 넘어서는 논의인바, 러시아군이 향후 승기를 잡을 경우 서방 리더십의 동 원칙도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어 보인다.
문제는 미국과 나토의 확고한 무기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보다 본격적으로 공격하고 러시아의 점령지를 탈환하고 나아가 크림반도 회복까지 시도할 경우, 전쟁 패배를 인정할 수 없는 푸틴과 러시아 집권세력이 대내외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전술핵을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그 어떤 핵 사용에도 상응한 대응을 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북한, 파키스탄과 같은 핵무장 국가들에게 미칠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미국으로서는 러시아의 핵 사용에 확실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들을 종합해 볼 때, 설리반(Jake Sullivan)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 측에 사전 경고했다고 한 대응방식은 핵을 통한 반격이 아니라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러시아 전역의 군사시설 파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022년 11월 16일 발생한 폴란드 미사일 피격 사건에 대해 미국 정부가 서둘러 이를 러시아의 소행이 아닌 것으로 결론짓고 확전을 방지하고자 한 태도 등을 미루어 볼 때, 미국과 나토의 러시아 영내 공격 같은 응징 방식이 실제 현실화될지 여부는 장담하기가 쉽지 않다.
이와 같이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은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과 속도로 전개되고 있는데, 서방의 전차들이 본격 배치되는 봄 이후의 상황 전개가 금번 전쟁의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2. 협상 국면 형성 가능성과 주요국들의 입장 및 역할
러시아 군의 헤르손 철수가 협상 여건 마련을 위한 전략적 후퇴였다는 해석도 대두되면서 러시아 측은 협상에 열려 있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포함하여 전 영토 회복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러시아도 획득한 점령지를 돌려줄 가능성은 낮은 상황에서, 양국 간 협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금번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주요 관여국들의 입장과 역할에 따라 협상 국면이 마련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는 미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11월 11일 우크라이나 군의 헤르손 일부 탈환 직후 마크 밀리(Mark Milley) 미 합참의장은 군사적 방법을 통해 우크라이나 영토로부터 러시아군을 완전하게 축출하는 방안이 현실적이지 못하고 기대하기 어려운바, 2022년 겨울이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협상이 착수될 수 있는 호기라는 점을 시사한 바 있다. 동 발언 직후 미국은 이것이 우크라이나에게 협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며 해명했으나, 이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협상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말라’라고 조언한 사실과 우방국들과 협상 시나리오를 논의한 것이 알려지면서 미국이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한 출구 전략도 검토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 측의 협상 가능성에 대한 시사가 전쟁 장기화로 인한 피로감과 다양한 형태의 국내적 위기를 맞고 있는 동맹국들의 여론 달래기용이라고 평가되며, 미국의 외교안보 라인이 실제 얼마나 주도적으로 협상 국면 형성에 역할을 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종전의 조건과 시기를 정해야 하며 자신들은 우크라이나 측에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향후 미국의 국내 정치적 상황과 막대한 재정 적자 상황도 변수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무기의 양적․질적 변화는 우크라이나의 전투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따라서 향후 미국이 무기 지원을 줄인다면 우크라이나는 항전의 의지가 있어도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여기에 미국 의회의 입장이 이러한 변화의 계기로 작용될지 주목된다.
지난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그동안 바이든(Joe Biden) 정부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방식을 ‘백지수표’라고 비판해 온 공화당이 하원의 다수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향후 하원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제동을 건다면, 이는 다른 미국 동맹국들의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로 인해 유럽에서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여론 변화가 나타난다면, 이 역시 우크라이나에 협상을 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과 인도도 러시아에게 협상을 촉구할 수 있다. 9월 중순 상하이협력기구(SCO: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가 전쟁 장기화를 우려하는 입장을 러시아 측에 전달해 왔음이 확인된 바 있다. 중국과 인도 모두 세계적 경기 침체의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과 인도는 금번 전쟁을 통해 러시아의 세력이 지나치게 약화되는 것도 자국 이익에 반하는바,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조속한 종전을 희망한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가 최악의 제재 국면에서 2022년 나름대로 안정적 재정 관리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중국과 인도의 러시아 원유 구매 확대가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향후 에너지 채굴 장비를 포함한 첨단 부품 및 장비의 금수 조치와 같이 러시아 경제 시스템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제재들이 2023년 본격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경우, 중국과 인도의 지지와 지원이 절실한 러시아로서는 이들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도는 2022년 7월 UN과 튀르키예가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흑해 곡물 운송 협상을 타결시켰을 당시 중요한 막후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협상 국면 조성에서도 인도가 러시아를 설득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된다.
만약 이러한 주요국들의 협상 테이블 마련을 위한 적극적 관여가 없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향후 있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소모전 성격의 전투를 이어갈 수 있으며, 전쟁이 수년간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 대중․대인도 관계 강화 노력 속 중앙아시아․중동․아프리카 등에서 군사적 영향력 유지 과제
러시아는 중국, 인도와의 관계 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나 다양한 도전과제를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전쟁 장기화로 인해 러시아의 해외 군사력 투사 능력에 제약이 발생할 경우, 소위‘군사 외교(military diplomacy)’차원에서 다양한 방식의 군사력 투사를 통해 영향력을 유지․강화시켜온 지역들에서 러시아의 세력이 위축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러시아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존중한다고 언급하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을 하지 않았고 대러 경제 제재도 준수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대미 전선의 핵심 파트너인 러시아가 금번 전쟁으로 심대하게 약화될 경우 중국도 이를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나,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정치적 지지와 경제적 지원을 최대한 이끌어 내야 하는 러시아로서는 에너지, 군사기술, 북극 개발과 같은 자국의 핵심이익에서 일정한 양보를 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한편, 20차 당 대회를 통해 시진핑(習近平)의 3연임 구도가 확정된 이후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러시아의 전략적 발전 목표’에 대한 지지를 포함하여 “두 나라의 발전을 막으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지지를 확인했다. 12월 30일 중․러 정상 간 화상회담에서도 시진핑은 양국 간 전략적 협력을 강조했다. 중․러의 전략적 협력이 푸틴이 제안한 것과 같이 한 차원 높은 군사 협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지속되는 한 중․러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중․러의 SCO와 같이 양국이 주도하는 다자 기구들을 통해, 그리고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의 협력 틀 구축을 통해 미국 주도 질서에 대항하는 진영 확대에 진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러시아 내 전문가들이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외교적 도전과제라고 지적해온, 이른바 중국과의 연대를 강화하면서도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하는 러시아의 외교 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 판단된다. 이에 러시아는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인도를 비롯한 ‘나머지 세계(the rest world)’와의 관계 다각화에 노력을 경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러시아와 전통적인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러시아의 대미․대중국 레버리지라 할 수 있는 인도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양국 협력의 가장 큰 기초인 러시아의 대인도 무기 수출이 금번 전쟁의 여파로 인해 차질을 빚게 된다면 이는 양국관계에 도전요인이 될 수 있다.
2022년 11월 초 모스크바를 방문한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S. Jaishankar) 인도 외무장관이 러시아와의 현대 무기 공동생산을 포함한 군사기술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힌바, 향후 이의 실현 여부와 미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또한 동 방문에서 인도 측은 ‘러시아를 검증된 파트너’라고 전제하면서, 러시아 원유의 구매 지속 의사를 확인했고 러시아와의 무역 관계 확대 및 원자력과 우주 분야에서의 협력 계획을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황이 러시아에 불리하게 진행되던 시기에 동 방문이 이루어졌음을 고려할 때, 인도 역시 자국의 대미․대중국 레버리지로서 러시아를 중시할 것으로 전망되는바, 향후 러․인 관계의 전개 양상이 주목된다.
한편, 금번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을 경우,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세력권인 중앙아시아 내에서 안보 리더로서 러시아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 특히, 2021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 전파 가능성이라는 안보 위협을 현실적으로 느끼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가 제대로 된 역내 안보 리더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 대중국 의존 경향을 드러낼 수 있다. 이는 중‧러가 그동안 경쟁과 협력이라는 나름의 공생 틀을 성공적으로 유지해왔다고 자평해온 중앙아시아에서의 양국 관계에도 도전요인이 될 수 있다.
이 가운데 러시아계가 다수 거주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을 둘러싸고 중․러 간의 미묘한 긴장이 조성될 수 있다. 9월 14일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이 “국제적인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중국은 카자흐스탄의 독립과 주권, 영토적 온전성 수호 등을 강력히 지지할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카자흐스탄의 영토 수호에 대한 ‘중국의 지지’라고 해석되기도 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내 안보 리더십 약화가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연쇄 효과의 징조라고도 보이는바, 중앙아시아 내 영향력 유지 문제는 향후 러시아 대외 정책의 핵심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11월 20일 대선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한 카자흐스탄의 토카예프(Kassym-Jomart Tokayev) 대통령이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어떠한 대외 정책을 표방할 것인지가 주목된다.
한편,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러시아의 역외 무기 수출에 지장이 발생할 경우, 이는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군사력 투사를 통해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며 무기 수출 이익을 증대해 온 러시아의 대외 정책에 또 하나의 도전적 요소가 될 수 있다.
2023년 서방과의 관계 회복이 상당 기간 요원해진 러시아는 대외 관계에서 중국과 인도 외에도 G20 회원국이면서 제재에 불참한 인도네시아,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하여 이란, 베네수엘라와 같이 소위 ‘나머지 세계’와의 협력을 다각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4. 푸틴의 2024년 대권가도에서의 전황, 경제적 상황, 엘리트 및 민심 변수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2023년 러시아는 권력 장기화에 따른 국민 피로감, 제재 영향의 가시화, 전황 및 강제 동원으로 인한 민심 동요와 같은 난제들에 직면할 것이며, 푸틴은 강한 내부 통제를 통해 위기를 관리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 다섯 번째 임기에 도전하는 푸틴과 집권세력은 경제적 성과나 대외적 위상 제고와 같은 업적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술한 위기 요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게 되면 푸틴의 재출마 분위기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내년 대선에서 푸틴이 후계자에게 권좌를 물려주고자 한다면 후계자가 선거를 준비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푸틴은 올해 후계자를 지명해야 한다. 전쟁의 부정적 영향이 러시아 사회 각 부분에 미치고 정치적 부담이 커지는 경우에도 푸틴이 재출마를 선언할 것인지가 관건인데, ▲향후 전개될 전황 및 경제 상황, ▲집권 엘리트 내 분열 여부, ▲러시아 국민들의 푸틴에 대한 지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전황은 금년 봄 이후가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경제 상황은 1년 여간 지속되어 온 서방의 러시아 경제 붕괴설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공공영역 근로자 임금 및 연금 수령자에 대한 연금 지급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향후 러시아 정부가 악화되어 가는 경제 지표를 관리하고 돌파구를 찾는 데 이내 한계가 올 것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오랜 기간 내핍 경제에 익숙한 러시아 경제가 당분간은 버틸 것이라는 전망도 다대하다.
서방 내에서는 금번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 엘리트 내 분열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러시아 내 강경파들이 11월 헤르손 철수 결정에 대해 자국 군인 보호를 위한 합리적 조치로 인정하고 ‘어려운 결정’을 늦지 않게 내린 군 수뇌부를 칭찬한 모습 등은 아직 러시아 집권세력 내 분열 가능성이 낮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러시아 국내 정치에는 ▲동원된 군인 사망자 수 증가, ▲추가 동원령 가능성으로 인한 민심 동요, ▲제재 효과의 가시화로 인한 민생 경제 악화 같은 위기적 변수들이 적지 않다.
향후 러시아 내부 상황이 악화될 경우 시민 사회의 반발과 대규모 시위사태 발생도 배제할 수 없으나, 야권 지도자가 없고 자유 성향의 시민단체가 상당 부분 와해된 상황에서 정권을 위협할 정도의 조직화된 반정부 운동이 전개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반면, 러시아 국민들은 국가가 외부 세계와 충돌하거나 국가 위기적 국면에 직면했을 때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하며 ‘안전과 안정’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향후 러시아 사회가 대내외적으로 유례없는 위기와 갈등을 맞게 될 경우에도 이러한 러시아 국민들의 특성이 발현될지 주목된다.
5. 북․러 밀착과 한․러 관계 위기 속 러시아의 동북아 전략 주목
러시아는 남북 간 균형 외교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해 왔다. 또한 과거 러시아는 남북관계의 건설적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 지지 입장을 견지해 왔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의 대한반도 전략의 기본 기조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어 이것이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에 미칠 영향이 우려된다.
북한은 미‧중, 미‧러 간 갈등이 표면화되는 현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밀착 시도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과 러시아는 부정하고 있으나, 미국과 나토는 북한이 러시아에 로켓, 미사일 및 포탄 제공과 같은 군사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023년 1월 서방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차 제공 발표에 대해 김여정이 직접 나서 이를 서방의 ‘대리전’이라며 강한 어조로 규탄하고 러시아와 ‘한 참호에 있을 것’이라며 러시아와의 공조 의사를 표명했다.
가장 우려되는 북․러 관계 강화 양상은 푸틴이 직접 그 가능성을 언급한 바와 같이 북․러 간 군사 협력이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기술 완성을 지원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에게도 북한은 통제가 쉽지 않은 파트너인바,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고도의 군사기술 지원 결정에 대해 신중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지원에 힘입은 우크라이나의 공세로 러시아의 전황이 심각하게 불리해질 경우, 미국을 압박할 수단으로서 러시아가 대북 군사기술 지원을 고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2022년 8월 일본 기업들이 사할린II 생산 가스의 구매 의사를 밝히고 일본 종합상사 미쓰이(Mitsui)와 미쓰비시(Mitsubishi)가 사할린II 러시아 합작 법인에 대해 각각 12.5%, 10% 지분의 유지를 신청한 것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이를 승인했다. 이는 러시아가 자국 내 모든 핵심 에너지 사업을 중국에 몰아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면서 동시에 일본도 국익 차원에서의 에너지원 다각화라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바, 일본의 강한 대러시아 규탄 레토릭과는 대비되는 실용적인 접근과 관련 동향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의 대러 제재 동참 결정에 대해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 명단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했으나, 한․러 간 무비자 협정은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및 탄약 공급 결정 의혹을 제기하면서 한국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한 2022년 발다이 클럽(Valdai Club) 발언에서도 푸틴은 현재의 한․러 관계를 ‘좋은 관계’로 전제했다. 이는 러시아의 대중 관계의 지렛대 차원에서도 러시아가 동북아 내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모든 연결고리를 스스로 단절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따라서 러시아가 한국 내 대러 반감을 높일 수 있는 지나친 압박수단을 사용하는 행위는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의 폴란드 무기 수출이나 대미 포탄 수출 문제는 러시아의 전세가 불리해질 경우 한․러 관계에 상당히 불편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붙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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