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전쟁과 한국의 지전략 ( http://opendata.mofa.go.kr/mofapub/resource/Publication/14127 ) at Linked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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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아 전쟁과 한국의 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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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문제제기
    2. 동북아 신 지정학과 한국의 신 지전략
    3. 동북아 전쟁과 한국의 지전략 사례
    4. 결론
    
    <요약>
    
    본고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간 세력경쟁 사이에 ‘끼인 국가’의 운명을 타고난 한국의 생존과 안녕을 보장하기 위한 정치군사적 지전략에 대한 글이다. 현대인은 전쟁의 불법화와 핵무장국 간 핵억제로 인해 더 이상 대규모 전쟁이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 미중 전략경쟁과 강대국 세력경쟁 시대가 열리면서, 전쟁의 망령이 도처에서 되살아났다. 우크라이나 전쟁(2022)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예고했다. 전쟁은 국가뿐만 아니라, 이에 소속된 모든 개개인의 존망과 명운을 가르는 ‘진실의 순간’이다. 일찍이 손자병법은 “전쟁이란 나라의 중대한 일이다. 죽음과 삶의 문제이며, 존립과 패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며 전쟁 대비를 국가의 최고 책무로 보았다. 따라서 본고는 동북아 전쟁에 말려든 우리 선조의 전략적 고민과 선택을 되돌아보고, 오늘 강대국 세력경쟁 사이에 끼인 한국의 지전략을 위한 시사점과 교훈을 찾고자 한다.
    지난 2000년 동북아 역사에서 역내 세력의 흥망성쇠와 이로 인한 세력균형의 변화가 발생할 때마다 한국은 수시로 지역전쟁에 끌려들어가 전쟁의 참화를 입었다. 특히 중국 중원세력, 북방 초원의 유목세력, 만주세력, 일본세력 등이 새로이 흥기하거나, 지역 패권전쟁이 발생할 때마다 전쟁에 말려들었다. 한국은 1800년대 말 근대 국제정치체제에 편입된 이후에는 중국, 미국, 러시아(소련) 등 주변 강대국의 지정학적 경쟁에 말려들어 전쟁터가 되거나, 주권을 잃거나, 분단되는 고통을 겪었다. 2010년대 들어 미중 전략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국은 다시 강대국 세력경쟁의 한복판에 갑자기 노출되었다.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졌다. 미중 간 직접적인 패권전쟁이 아니더라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이 대만해협과 한반도에서 미중의 대리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의 지정학적 ‘끼인 국가’ 속성이 재부각되었다. 한국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전개되는 이런 새로운 국제정세를 어떻게 인식하고, 지속적인 안보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과거 우리 선조들은 동북아 세력경쟁과 지역전쟁에 당면하여 왕조와 영토를 보존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을까.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강대국 정치와 패권전쟁에 참여하는 국가는 몽골 초원세력, 만주세력, 중원세력, 일본세력, 구미세력 등의 흥망성쇠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하지만 동북아에서 패권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 구조는 과거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특히 한국이 중간국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동북아 세력경쟁과 패권전쟁에 수시로 끌려들었던 것도 마찬가지이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한국이 끌려들었던 동북아 지역전쟁은 주로 중원 제국의 영토팽창을 위한 정복전쟁 또는 중원과 북방, 만주세력 간 세력경쟁 때문에 발생했다. 특히 후자 전쟁의 경우, 한국은 중원세력과 북방세력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고민해야만 했다. 통상 중원세력은 문명적으로 앞섰고 약탈적이지 않아 한국으로서는 우선적인 편승과 연대의 대상이었다. 북방의 유목세력은 문명이 이질적이고 약탈적이어서 한국은 최대한 접촉과 충돌을 피하려고 했다. 한국은 유목세력이 약할 때는 회유하고 제어하는 기미(羈縻)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이들이 결집하여 막강해지면 불가항력적으로 당했다. 중원 중국과 한국은 약탈적인 북방세력에 대한 안보위협 인식을 공유하여, 자연동맹의 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북방세력의 군사력이 막강한데다 기동력도 높아 한중 군사협력은 별 효용이 없었고, 실제 북방세력에 대한 한중의 공동작전이 성공한 사례도 거의 없다. 과거 한국이 중국 대륙의 복수 강대국을 상대해야 했던 전략적 딜레마의 상황은 오늘의 그것과 외견상 크게 다르지만, 구조적으로는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은 임진왜란에서 처음으로 북쪽의 대륙이 아니라 남쪽의 해양에서 접근하는 적대세력을 상대해야만 했다. 이로써 한국은 전통적인 북방 전선뿐만 아니라 남방 전선도 포함하여 앞뒤로 양면전을 준비해야 하는 곤경에 처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계기로 동북아에서 중원 농경과 북방 유목세력 간 전통적인 경쟁 시대가 끝나고, 대륙과 해양세력이 경쟁하는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 시대가 열렸다. 그 결과, 동북아 세력 간 지정학적 단층선이 종래 중국 요동과 한반도 북방에서 한반도 내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한국의 ‘지정학적 중간국’ 속성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선명해졌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단층선이 남하하면서 한국은 대륙과 해양세력 간 전쟁에 더욱 깊이 끌려들어갔다. 이때 양대 세력 간 중간지대인 한반도가 주 전쟁터가 되면서, 전쟁 피해도 더욱 광범위하고 치명적으로 발생했다. 오늘 동북아에서는 세계 차원의 미중 경쟁, 지역 차원의 중일 경쟁, 한반도 로컬 차원의 남북 경쟁이 중복적으로 발생했다. 그 근원에는 1800년대말부터 부각되었던 대륙과 해양세력 간 대립이 있다. 앞으로 동북아에는 2개의 미래 시나리오가 열려 있다. 미중이 계속 대치하면서 경쟁하는 양극체제가 정착하는 신냉전 시나리오, 또는 미중이 동북아 패권을 위해 지역대전에 돌입하는 지역대전 시나리오이다. 이에 대한 동북아 전쟁사의 교훈은 무엇인가.
    역사 속에서 중원 중국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적대 강대국과 변경국을 철저히 불신하고, 매우 현실주의적인 지역전략을 구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의 지원에서 보았듯이 한국과 자신의 이익이 일치하는 만큼만 한국을 지원했다. 따라서 한국도 정치이익과 명분이 아니라, 현실주의적 안보 국익에 기반한 외교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원명 교체기에는 신흥제국이자 영토적 야욕이 덜한 중원에 줄서는 것이 당연했다고 본다. 하지만 명청교체기에는 중립 또는 최강자에 대한 편승이 필요했지만, 조선은 명분론에 빠져 한 치 앞의 현실도 꿰뚫어 보지 못했다. 오늘 미중 경쟁 시기에는 국익, 국제규범을 추종하면서도, 세력전이 가능성에 대한 대안도 필요하다. 중국을 팽창주의적, 수정주의적 국가라고 비난하는 것은 패권경쟁 중인 미국의 역할이지만, 중국과 인접하고 중소 ‘끼인 국가’인 한국의 역할은 아니다. 미중 관계에 대한 대응을 잘못하면 결국 청에 당한 꼴이 발생할 수도 있다. 조선 내부적으로 친명 대 친청 갈등을 계속하는 분열적 대응은 국력을 약화시켜 결국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오늘 동북아와 한반도에서는 과거 북방과 중원이 서로 영합적 게임을 했듯이 미중이 영합적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다. 양측이 영합적 전략게임을 벌일 때 결국 그 가운데 놓인 한국은 우선적 공략의 대상이 된다. 과거 중국의 중원과 북방세력이 충돌할 때 한국은 수시로 공격받았다. 이들 양대 세력은 제각기 한국에게 순응하고 줄 설 것을 요구했다. 다행히 한국은 이들로부터 정복과 직접 통치를 피했지만,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투키디데스는 일찍이 “강대국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소국은 당해야 할 것을 당할 뿐이다”라고 국제정치의 속성을 규정했다. 전통 동북아 국제정치와 전쟁사도 이런 경구가 타당함을 보여주었다. 역사 속 한국은 중소국가이자 끼인 국가로서 강대국 정치와 무한 세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동북아의 지정학 탓에 한국은 동북아 패권경쟁이 발생할 때마다 전쟁에 끌려들었다.
    한편, 전통적으로 한국은 동북아에서 불리한 세력 규모와 지정학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지정학과 지경학적 생존 공간을 확보했고 끊임없이 한국적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켜 왔다. 한국은 분리된 공간 속에서 일찍이 자연국가를 건설하고 공동체적 문화를 발전시킨 덕분에 강한 저항성과 회복력을 갖게 되었다. 이는 한국이 주변 강대국의 침공을 격퇴시키고, 외부세력의 점령 시도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는힘의 원천이 되었다. 다른 중소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은 지난 1500년 역사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외부세력의 침공과 점령에 시달렸고, 대부분 시간 동안 독립을 유지하며 주변국과 평화공존 했었다. 동북아 지정학의 구
    조와 동학의 연속성을 감안할 때, 과거 동북아 전쟁에 직면했던 선조들의 지전략적 고민과 성공과 실패의 사례는 오늘 한국의 지전략을 수립하는 데 의미 있는 참조사례가 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국력과 전략역량이었다. 결국 한국이 강대국의 침공과 강압을 극복하려면, 강대국에 대한 편승이 관습화, 이념화되어서는 안 된다. 중소국, 끼인 국가인 한국은 항상 자강하고 주변 누구보다 머리를 높이들고 앞뒤를 재지 않으면, 생존과 자율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붙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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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봉근 안보통일연구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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