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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의 제기
2. 오늘날 강대국 지정학 경쟁의 사회문화적 성격
3. 미국 공공외교에 반영된 가치경쟁 – 자유주의 보편주의(liberal universalism)
4. 중국 공공외교에 반영된 가치경쟁 – 비(非)자유주의 특수주의(illiberal particularism)
5. 미·중 소프트파워 경쟁의 함의
6. 정책적 고려사항
<요 약>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군사, 경제, 무역, 기술 분야를 넘어서 가치 분야로까지 확대되면서 가속화되고 있다. 양국의 가치경쟁은 명백히 소프트파워 경쟁의 양상을 띠고 있으며, 각국의 지정학적 경합의 수단적 도구로 사용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강대국 경쟁의 맥락에서 공공외교는 지정학적 경쟁의 수단에 불과한 것인가? 공공외교의 역할은 강대국 경쟁에 따른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키는 데에 머무르고 있는가? 비(非)강대국 공공외교, 특히 한국 공공외교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오늘날의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의 성격은 전통 지정학에서처럼 단순히 정치적이거나 지리적이라기보다는, 사회문화적, 심지어는 문명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경합국들은 자국의 전통적 문화와 국가/민족 정체성에 깊게 자리 잡은 특정 가치를 내세워서 경쟁적으로 외국민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궁극적으로 무정부 국제사회에서 정통성 있는 권위를 추구하고 있고, 이는 강대국 경쟁의 문화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들 강대국들은 자국이 주창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자국에 동조하는 국가들을 규합하고 국가 간 관계를 구성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지정학은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공공외교를 ‘특정 국가의 문화, 외교정책, 그리고 가치와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하는 외국민에 대한 소통 행위’라고 이해할 때, 바로 이러한 성격이 오늘날의 공공외교를 강대국 경쟁의 중요한 장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미국의 공공외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면서, ‘자유주의 보편주의(liberal universalism)’의 성격을 노정하고 있다. ▲공공외교의 전 영역과 프로그램에 자유주의 가치 반영, ▲지정학적 경쟁, 강대국 경쟁의 맥락에서 공공외교의 역할 강조, ▲특히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 “민주주의와 독재 간의 글로벌 투쟁”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이 공공외교에도 투영, ▲미국 가치의 증진을 위한 매체로서 인적교류, 차세대 지도자 교류에 중점, ▲디지털 공공외교에 대한 강조.
이에 비해서 ‘비자유주의 특수주의(illiberal particularism)’로 규정할 수 있는 최근 중국의 공공외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서구·미국의 보편주의에 반대하는 중국의 차별성·독자성·특수성 강조,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 간 경계의 불분명성과 ‘포괄적 관여(comprehensive engagement)’ 접근, ▲소프트파워로서 포괄적 문화 개념과 중국식 규범 및 기준의 전파, ▲소프트파워 및 공공외교의 대외는 물론 국내적 동기와 정향성, ▲정치적 가치보다 물질적 혜택을 강조하는 실용적 접근.
최근 미국과 중국의 공공외교 실행 양상으로부터 비(非)강대국에 대한 몇 가지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미·중 양국에서 공히 소프트파워의 중요한 근원 중의 하나인 문화는 대표적인 소프트파워 자산으로서 공공외교의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있으며, 문화 자체가 공공외교의 양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의 상이성에 따라 특정 가치에 대한 의미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타문화권의 타자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의미와 이해를 도출하는 것이 공공외교의 보다 주요한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오늘날의 강대국 소프트파워 경쟁은 또한 단순한 ‘매력 경쟁’을 넘어서, 국제사회에서 ‘진영화’를 촉발하고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비(非)서구 나머지’의 부상으로 문화와 정체성의 차원에서도 다양성이 증대하고 있는 오늘날의 국제사회에서는, 배타적 ‘진영화’를 통한 동질화(homogenization)를 모색하기보다는, 다양성과 이질성(heterogeneity)을 인정하고 이를 수용하는 국제질서의 형성이 중요하고, 따라서 이를 위한 공공외교 접근이 요청된다.
셋째, 오늘날 미·중 간 가치경쟁은 국제질서를 구성하는 두 가지 형태의 규칙 중 ‘행태 규칙(behavior rules)’보다는 ‘멤버십 규칙(membership rules)’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상호 공존과 협력의 공간을 대폭 줄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非)강대국들은 따라서 멤버십 규칙이나 규범보다는, 행태적 규칙과 규범에 초점을 맞추는 공공외교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넷째, 동질성과 멤버십 규칙에 기반을 둔 대립적 진영정치의 극복을 위해서는, 다양성의 와중에서도 비(非)강대국들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중심으로 ‘집단적 소프트파워(collective soft power)’를 통한 ‘균형자(balancer)’ 역할이 요청되고 있다.
한국의 현 정부에서는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가치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강대국 경쟁, 강대국 소프트파워 경쟁을 고려할 때, 자유라는 가치를 ‘서구 자유주의’의 프레임으로 해석함으로써 초래될 수 있는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자유라는 가치에 대한 인간안보(human security)에서와 같은 포괄적, 대안적 해석은 국제사회에서 공유할 수 있는 저변을 넓힘으로써 현재의 ‘자유주의 대(對) 반(反)자유주의’라는 대립을 희석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객관적 실현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구체적인 역할의 수행과 실천이 핵심 요소이며, 따라서 이와 같은 역할에 대한 정책적 고려와 구체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구체적 역할에는 대결적인 자유주의 대(對) 반(反)자유주의 간 가치의 대립, 가치의 진영화 상황에서 소프트파워 차원의 균형을 모색하는 역할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비(非)강대국 국가들 간 공유할 수 있는 가치에 기반한 결속과 연대를 통해서 집단적 소프트파워를 창출해내고, 이를 대립하는 가치 사이의 완충 또는 균형자로서 역할하는 기제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국제정치 맥락에서 한국의 공공외교는 자기중심성을 넘어서서 타자와 더불어 공유하는 가치를 생성하는 ‘상호구성형 공공외교(co-constitutive public diplomacy)’를 지향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붙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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