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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이해
2. IRA 관련 쟁점과 시사점
3. 우리의 대응방안과 경제안보 전략
1.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이해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8월 16일 서명하여 즉시 발효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은 총 7,730억 달러 규모의 정부 예산을 기후변화 대응, 보건 분야 복지 개선, 기업 과세 개편 등에 투입하여 미국의 재정적자 해소 및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을 통해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감축하는 효과를 도모하고 있다. 이 중 4,330억 달러는 정부 직접 보조금 및 세액공제 등의 형태로 친환경 에너지 산업 육성, 청정연료 사용 자동차 산업 지원,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와 같이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역점사업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 IRA의 모태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공약 이행을 위하여 추진 중이던 ‘더 나은 미국 재건법(Build Back Better Act, BBB)’인데, BBB 법안의 당초 3.5조 달러 규모의 예산 패키지가 환경 및 보건 분야로 집중 및 축소 제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IRA의 전격적인 서명 이전에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8월 9일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CHIPS)’을 제정한 바 있다. 동 법안은 미국의 핵심 미래기술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총 2,800억 달러를 투입하여 궁극적으로 미국의 국내 일자리 창출과 국가경쟁력 제고, 글로벌 리더십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 중 527억 달러는 반도체 분야에 투입되는데, 반도체 제조시설 건립을 위한 직접보조금과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R&D) 지원, 반도체 시설 및 장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제조 기업은 중국 등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가’에서 생산시설을 확장하거나 신축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동 조항은 중국에 현지 반도체 공장을 운영 중인 우리 기업의 경우 기존 반도체 생산라인을 확대하거나 기술 업그레이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투자제한 조항은 인위적인 성격의 투자규제이므로 반도체 수급의 문제를 초래하여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불안을 초래할 수 있으나, 현재 우리 기업들의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의 운영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중국 견제를 통해 우리 반도체 제조 기업들이 반대급부 효과를 누리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도 전망된다.
IRA는 사실상 미국 내 또는 북미 지역에서 제조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정부 보조금과 세액공제의 혜택을 제공하여 외국산 전기차에 대한 차별적인 적용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이와 같은 차별적인 법 적용의 배경에는 미국 시장 내에서 한국산 전기차의 미국 시장점유율이 2위인 등 미국산 전기차와 외국산 전기차가 경쟁 관계에 있고, 전기차량용 배터리의 일부 소재는 중국산 비중이 90% 이상인 것도 있어 배터리 소재의 과도한 해외의존도 문제라는 점 등이 작용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에는 미국의 반도체 기술(설계 중심)과 외국의 반도체 기술(제조 중심)이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미국이 아직 완결적인 형태의 공급망을 국내에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 대만, 일본 등 동맹국과의 협력이 필요하여, 세액 공제 및 보조금 지원을 통해 반도체 생산시설의 대미 투자를 매우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반면,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에는 중국 뿐 아니라 EU, 한국 등의 적극적인 산업 정책으로 인해 ‘보조금 경쟁’이 보다 치열한 분야이므로 미국은 자국 기업을 중심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공정한 경쟁 환경(level playing field)’을 조성한다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다.주목할만한 사실은 IRA가 미국의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환경, 노동 등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정치적 성과사업을 담고 있어 CHIPS와 달리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매우 신속하게 입법화되었다는 점이다.
2. IRA 관련 쟁점과 시사점
IRA 제정에 따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4,330억 달러 규모의 예산은 ▲미국 소비자의 에너지비용 감축을 위한 세금환급 및 세액공제, ▲풍력터빈, 태양광 패널, 배터리 등 에너지 생산·저장시설의 국내 제조 지원, ▲신규 및 중고 친환경차(clean vehicle)의 판매 진작을 위한 중산층 소비자 대상 세액공제 등 인센티브 정책에 투입될 계획이다. 문제는 친환경차의 판매 진작을 위한 인센티브의 수혜 대상이 되기 위한 조건이 미국 내에서 제조되는 전기차와 배터리에 한정되도록 법률상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IRA의 시행에 따라 ▲북미(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최종 조립되어야 한다는 조건(최종조립 요건)과 함께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되거나 북미에서 재활용된 일정 비율 이상의 배터리 핵심광물(critical minerals)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요건(핵심광물 요건)과 ▲북미에서 제조된 배터리 소재가 일정비율 이상이어야 한다는 요건(배터리 소재 요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최종조립 요건은 2022년 즉시 발효되며, 핵심광물 요건의 경우에는 2023년부터 40% 비율을 충족해야 하고 2024년 이후 50%, 2025년 이후 60%, 2026년 이후 70%, 2027년 이후 80%의 사용비율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배터리 소재 요건은 2023년 이후 50% 기준부터 시작하여 2029년 이후 100%의 사용비율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외에도 중국 등과 같은 ‘우려국가’에서 공급되는 핵심광물(2025년 1월 이후 적용)이나 소재(2024년 1월 이후 적용)가 일부라도 사용된 전기차는 보조금 및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와 같은 내용의 IRA는 WTO 규범과 한-미 FTA 규범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특히 미국정부의 세액공제 지원을 받았던 현대차의 전기차 품종은 동 법의 이행으로 인하여 최소 7,500달러 비싸게 미국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면서 올해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미국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했던 수출실적이 무색하게 되었다. WTO 및 한-미 FTA 규정상 협정참여국은 타 참여국에 대하여 비차별대우(최혜국대우 및 내국민대우) 의무가 있으며, 법률상 명시적으로 차별적인 내용이 규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실제 법 이행의 결과 타국 제품에 대하여 국내 제품과 다르게 차별적인 대우를 하게 될 경우 규정 위반에 해당되어 공식적인 통상 분쟁의 제기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외에도 WTO 보조금 규범상 타 회원국의 수입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는 보조금 조치는 금지되어 있는데, IRA에 따라 적용되는 최종조립 요건 및 핵심광물, 배터리 소재 요건들은 사실상 외국산 제품의 수입을 국내산 제품으로 대체하는 목적 및 효과가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IRA는 미국의 공급망 강화를 위한 정책의 취지와 상반되게 공급망 협력국에 대한 역차별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국제통상규범을 무시하는 과도한 자국산 소재 사용요건 등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추구하는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협력 기조와 맞지 않을뿐더러 모든 참여국에게 이익이 돌아가야 하는 협력의 전제를 일정 부분 무시하고 있다. 특정국에게만 이익이 집중되는 형태의 협력은 구축되기 어려우며, 구축이 된다하더라도 지속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한국은 미국의 공급망 강화를 위한 핵심적인 협력대상국으로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CHIP 4(또는 FAB 4) 반도체 동맹 구상, 핵심광물 안보파트너십(MSP) 등 다양한 공급망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IRA가 도입하고 있는 차별조항은 협력의 동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다양한 한-미 간 경제협력 약속의 원활한 이행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하게 될 수 있다.
국제통상질서의 관점에서 IRA의 파급효과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CHIPS와 IRA를 비롯하여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른 의약품 등 바이오기술 산업 강화를 위한 보조금 지원 계획은 향후 국가 간 치열한 ‘보조금 전쟁’을 확산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각국의 미래 기술 산업 육성 및 강화를 위한 경쟁적인 보조금 지급은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the bottom)’을 초래하며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근린궁핍화(beggar-thy- neighbor)’ 정책과 다름없다. 특히 ‘경제안보’의 논리를 활용, 전략적 첨단기술 산업에 대한 천문학적인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여 상대적 경쟁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글로벌 패권 지위를 공고히 하는 국가전략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무엇보다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글로벌 의제의 이행이라는 명분 하에 그동안 WTO 규범상 애매모호했던 친환경 보조금 관련 규제의 봉인을 해제하게 되는 격으로, 이제는 모든 국가들이 각국의 탄소배출량 감축목표 달성이라는 명분으로 규제 없이 보조금 정책을 활용할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외국 제품에 대한 차별대우 및 수입대체 효과를 가진 국내 조치들이 별다른 규제 없이 도입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될 것이다.
3. 우리의 대응방안과 경제안보 전략
현재 이러한 IRA의 법률적 쟁점을 비롯하여 전반적인 정책적 한계와 문제점에 대하여 우리 정부는 다양한 정치·외교·경제 및 실무적 협의채널을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IRA의 개정, 이행 연기, 법 적용에 대한 예외 및 면제 등을 요구하고 관철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IRA의 개정을 요구하는 것의 근본적 문제는 동 법이 미국 행정부가 아닌 의회에서 발의된 법안으로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바이든 정부의 역점사업의 성과를 축소시키도록 요구하는 것은 비효과적인 접근방식일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일부 내용이 법 서명과 함께 발효된 IRA의 이행시기를 현대차 공장이 설립되는 2025년 이후로 연기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질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현재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비롯하여 전기차 및 배터리 제조시설까지 투자 약속을 한 우리 기업에 대하여 IRA 적용대상으로부터 예외 및 면제를 부여하도록 요구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 EU도 2026년 시행 예정인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 부담금의 미국 면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미국의 IRA에 대한 EU 생산 전기차의 면제 적용을 확보하기 위한 레버리지(leverage)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도 현재 미국과의 통상현안 중 상호주의 차원에서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등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협상에 임할 필요가 있다.
전체적으로 우리의 ‘경제안보’는 미국의 ‘경제안보’와 다를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향후 미국과의 경제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큰 틀에서는 한-미간 ‘경제안보 동맹’을 추구하는 것이 정치·외교적으로 맞는 접근이더라도 대내적으로는 우리의 경제적 국익에 기반하여 협력에 동참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대규모 내수시장과 다양한 분야에서의 글로벌 경쟁력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미국과 소규모 내수시장과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상이한 경제구조를 고려해보았을 때 일정 정도 서로 상이한 ‘경제안보’ 정책 추진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하고 있는 미국의 입법조치들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을 직시하고 미국의 통상정책 방향의 근본적 변화에 따른 다양한 입법 동향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반도체 기술 유출 방지 등을 위한 수출통제 조치의 다자화 등 근본적으로 보호무역주의적인 조치는 미국과 상이한 무역구조를 지닌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은 통상정책 방향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IRA 시행을 위한 구체적인 시행규칙 마련 과정에서 미국 정부 및 의회와의 양자 협의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우리기업들이 미국 시장 내에서 최소한 타 경쟁국에 비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협상해나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기업의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분야 대규모 대미 투자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IRA상 우리기업 및 제품에 대한 차별적 조치의 철폐를 요구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한 핵심 협력국인 한국의 협력 약속 이행을 위해서는 한국 기업에게 불리하지 않은 투자환경 및 제도적 지원 약속을 하도록 협의해 나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향후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에 기반한 공급망 강화를 위한 미국 국내제도의 도입 전에 우리를 포함한 공급망 협력국과 사전적으로 협의하는 협력 메커니즘을 구축하도록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 붙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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