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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전수출을 위한 새로운 기회요인
2. 원전 수출을 위한 원자력외교 과제와 방향
1. 원전수출을 위한 새로운 기회요인
60~70 년대 원자력 발전 초기에 원자력은 꿈의 에너지원으로 각광 받았다. 마침 1973년 오일 쇼크를 맞아 세계적으로 원전 건설 붐이 일었고, 오늘 가동되고 있는 원전의 반이 70년대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쓰리마일 섬 원전사고(1979), 구소련(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 이후 서방세계에는 ‘원자력 암흑기’가 찾아왔다. 탈냉전기 들어 세계화와 산업화가 전 지구로 확장되면서 신흥산업국을 중심으로 원자력 수요가 급증한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2011) 이후 다시 선진국을 중심으로 ‘원자력 침체기’가 찾아왔다.
2020년대 들어 세계적인 탈원전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첫째, 2021년 초 취임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직전 트럼프 행정부의 기후변화 무시정책을 뒤집고, 기후변화 대응을 최우선적인 외교와 산업정책 목표로 채택했다. 기후변화 현상이 빈발하면서 세계적으로 저탄소 에너지로서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2022년 6월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가 발표한 『원자력과 안정된 에너지 전환(Nuclear Power and Secure Energy Transitions)』 보고서는 이런 ‘신 원자력 르네상스’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전통적인 화석연료 시대에서 미래의 신재생 클린에너지 시대로 안전하게 전환하려면, 과도기적으로 원자력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특히 원자력이 다른 대체에너지에 비해 급전성(給電性, dispatchability)과 확장성의 장점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둘째, 지정학적 세력경쟁 시대를 맞아 개별국의 에너지안보가 중시되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세계의 대러 제재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가 충돌하면서, 원유와 가스 가격이 급상승하고 공급도 크게 불안정해졌다. 그 결과, 에너지안보를 위한 수단으로써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21세기 초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에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주로 신흥산업국에서 높았던데 비해, 최근 기후변화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영향의 경우에는 선진국, 특히 유럽국에서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셋째, 우크라이나 사태의 결과로 국제 원전시장의 지형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 로사톰은 독자 원전 노형과 강력한 자금력을 배경으로 원전시장의 약 70%를 장악했다. 러시아 원전 도입국은 대부분 자체적인 금융 조달 여건이 어려워, 금융 조건이 좋은 러시아 원전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진영 국가들이 러시아에게 강력한 수출입통제와 금융제재를 부과하면서, 러시아의 원전 수출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면, 최근 핀란드는 일방적으로 러시아 원전도입 계약을 파기했고, 헝가리는 친러 성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원전 도입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원전시장의 지각 변동은 한국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국제적 배경 하에서 윤석열 정부의 친 원자력정책도 원자력 활성화와 원전 수출을 위한 중대한 기회요인이 된다. 윤석열 정부는 주요 국정과제로 “탈원전 정책 폐기,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를 제시하고, 원자력을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수출 증대, 에너지안보, 신 성장 동력 등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7월 5일 발표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서 전기 생산에서 원전 비율을 2021년 현재 27.4%에서 2030년 30% 이상으로 증가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는 원전 산업의 부활과 원전 수출에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22년 8월 산업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관련 부처와 산업체,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원전수출전략 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2. 원전 수출을 위한 원자력외교 과제와 방향
한국 원자력은 다양한 기회요인이 한 번에 정렬되는 ‘완벽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원자력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기회의 창’은 오래 가지 않았다. 따라서 정부와 산업계와 정책전문가들은 모처럼 열린 ‘기회의 창’을 활용하기 위해 조기에 원전 수출 전략을 수립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이 원전 수출을 추진할 때 핵심적인 변수 중 하나는 바로 미 정부 및 원전기업과 협력하고 경쟁하는 문제이다. 사실 한국과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력협정(2015)과 두 차례 한미정상회담 합의문(2021.5, 2022.5)을 통해 상호 협력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한바 있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핵심은 협력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협력 하느냐이다.
2009년 한국이 UAE에 원전을 수출할 때만 하더라도 원전 수출은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의 대상도, 한미 정상 간 정치외교적 협의 사안도 아니었다. 따라서 한미 정부도 각자 자국 기업을 지원하며 경쟁했고, 결국 원전의 가격경쟁력이 수주 여부를 결정했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러시아가 최강의 원전수출국으로 등장하고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이 본격화되자, 한미는 원전 수출을 위한 협력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자국내 원전 건설을 가속화한 데 이어 수출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하자, 한미 정부는 더 이상 원전 수출을 위한 협력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이 원전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고, 나아가 한미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첫째, 한국은 원전수출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해 원전의 시공력·기술력·가격경쟁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국의 경쟁력과 매력을 같이 활용해야 한다. 한국은 원자력 강국일 뿐 아니라, 제조업 강국이며, 첨단산업 강국이다. 우선 한국은 원자력 규모에서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 5위이다. 또한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 방위산업, 게임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산업역량을 갖고 있다. 더욱이 한국은 신흥국가 중에서는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 디지털화, 첨단화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이다. 이런 한국의 국가발전과 산업발전 모델은 모든 신흥국가들이 선망하는 모델이며, 최상의 상품이다. 따라서 신흥산업국에 원전 수출을 추진할 때 한국의 총체적인 국가발전 모델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같이 제공한다면,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하고 수출 경쟁력도 배가될 것이다. 예를 들면, 폴란드의 경우, 향후 원전을 대거 도입한다는 계획에 따라 원전산업의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때 한국의 원전 공급망 구축 경험은 폴란드가 도입하고 싶은 최선의 참조 모델이 될 것이다. 이런 유형과 무형의 한국적 산업발전 경험을 자산화하여 원전 수출에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중·동유럽, 중동, 아프리카의 신흥산업국들이 원전 도입을 추진할 때, 한국의 산업발전 모델은 최상의 경쟁력 요소가 될 것이다.
둘째, 한미 정부는 양국의 기업이 원전 수주를 두고 과도히 경쟁할 경우,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 한미 기업은 중유럽과 중동 등에서 원전 수주를 위해 경쟁 중이다. 그런데 한미 기업이 과도하게 경쟁할 경우, 한미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사기업의 활동 영역에 정부의 개입은 제한적이지만, 원자력 기술의 이중용도와 원전 수주의 지정학적, 정치외교적 의미를 감안할 때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한 면도 있다. 예를 들면, 한미 기업이 정부의 도움을 얻어 각각 수출을 집중할 국가군을 나누고, 비주력 국가에 대해서는 서로 상대를 지원한다면, 양국 모두에게 윈-윈 해법이 될 것이다.
셋째, 한미 정부 간, 기업 간 긴밀한 대화를 통해 양국의 쟁점을 조기에 해소하고, 협력을 통한 경쟁력 강화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선 한미 기업 간 원자력 원천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 논쟁을 조기에 해결해야 한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전의 원전 노형에 미국의 원천 기술이 포함되어 있어, 원전 수출 시 자신의 동의와 미 정부의 수출허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한국 측은 수출 주력모델인 APR1400 원자로의 기술 자립이 완료되었다는 입장이다. 프랑스와 중국은 미국의 노형을 활용했지만 지적재산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 독자 수출에 아무 문제가 없다. 한국 기업도 웨스팅하우스와 지적재산권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한미 정부도 양국의 공동이익을 위해 필요시 개입해야 한다. 프랑스와 중국이 어떻게 지적재산권 문제를 해결했는지 연구하고, 참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원전수출 시 자금력이 최대 약점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 미국은 큰 경제규모로 인해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자금 동원이 훨씬 용이한 강점이 있다. 한미 정부가 협력하여 개발협력을 위한 시범사업의 차원에서 원전건설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넷째, 새로운 전기생산원으로 최근 크게 각광받고 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의 연구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한미 협력이 긴요하다. SMR은 작은 규모와 이동성으로 인해 기존 대형 원전과 달리 매우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건설하고 배치할 수 있다. 또한 SMR은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안전성과 핵비확산성이 획기적으로 강화되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므로 SMR의 클린에너지 효과를 향유하려면, 조기에 개발을 완료하고 대량 생산과 건설을 시작해야 한다. SMR 연구개발은 미국이 주도하여 이미 크게 진전되어 있다. 여기에 한국의 원자력 연구역량과 산업기술이 보태진다면 SMR 시대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미 정부는 양 정상 간 원전 수출에 대한 합의사항을 실행하기 위해 조속히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2015년 한미원자력협력협정에 따라 설치된 차관급의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동 위원회는 그 밑에 4개 실무그룹의 하나로 ‘원자력 수출 진흥 및 수출통제 협력’을 두었는데, 지금이야말로 원자력수출 실무그룹 회의를 개최하여, 양국의 개별적 또는 공동 수주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증진키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양국의 신뢰 구축과 원전 수출을 위한 창의적 방안을 찾기 위해 한미 전문가들의 대화 채널도 확대되어야 한다.
* 붙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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