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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협상의 추이
2. 주요 쟁점
3. 미국과 이란의 상황∙입장
4. 향후 전망
이란핵합의 (이하 JCPoA) 재협상 타결에 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하고 있다. 최근에도 타결 임박설과 난항설이 짧은 시차를 두고 등장하면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8월말까지 타결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최근 1주일 사이에 다시 불투명하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동 사안은 이란 석유판매대금 동결 관련, 한국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관련 배경과 현안 쟁점, 관련국들의 상황 그리고 전망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재협상의 추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21년 4월 시작된 일련의 재협상이 17개월째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8차례에 걸친 협상 국면에서 지난 3월에는 타결 임박설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미국의 로버트 말리 이란핵문제 담당 특사의 측근들은 당시 타결확률을 70% 이상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JCPoA 당사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3국 (E3) 과 유럽연합은 안보위기 상황 속에서 합의 재개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이란과 연대하며 미국 및 유럽3국과 맞서는 입장을 취하면서 타결 가능성은 점차 낮아졌다. 회담은 동력을 잃었고 타결 가능성은 20% 이하까지 추락했다는 분석도 잇따랐다. 이란의 핵무장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반전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과 함께 나타났다. 에너지 위기와 맞물렸다. JCPoA 복원을 통한 이란산 석유와 가스의 시장 공급이 절실해진 것이다. 고유가로 말미암은 인플레이션과 경제위기 징후가 선명해지면서 새로운 동력이 생긴 셈이었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곤경에 처한 유럽이 팔을 걷어붙였다. 그동안 유럽이 바라보는 JCPoA는 기업의 이란 진출 및 투자를 통한 경제적 기회였다. 그러나 이제는 에너지 위기 및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한 절실한 사안이 된 것이다. 특히 12월 5일 발효되는 EU의 제재, 즉 러시아산 석유 금수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유럽 주요 3개국은 이란과의 적극적 합의 중재에 나섰다. 자칫 통제불능의 고유가 상황을 맞을 수도 있기에 시장에 긍정적 신호를 줄 수 있는 합의 타결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재협상이 타결되면 120일내에 이란의 석유와 가스가 시장에 공급되기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완화가 될 수 있다. 물론 워낙 낙후된 이란의 석유 및 가스 생산 시설로 인해 공급의 실질적 확대에는 제약이 있다. 그러나 일단 공급선 다변화라는 심리적 안정감만으로도 그 의미는 작지 않다. 일부 에너지 컨설턴트들은 이란 제재가 풀리고 본격적으로 기존 시설을 풀가동하면 3개월내에 하루 100만배럴 추가생산이 가능하다고도 본다. 이 때문에 이란측에 유럽의 이란 에너지 개발, 생산, 수출과 관련된 꽤 매력적인 제안을 이면으로 전달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8월초 유럽연합은 최종 협상안인 소위 ‘최종 문안’ (Final Text)을 만들어 테헤란과 워싱턴 DC 간 중재에 나섰다. 일단 테헤란의 반응은 긍정적이었고, 몇가지 수정안을 반영한 초안이 워싱턴 DC로 전달되었을 때 조심스럽지만 미국의 반응도 부정적이지는 않았었다. 8월 23일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례적으로 “We are encouraged by the fact that Iran appears to have dropped some of its non-starter demands..." 라는 표현을 하면서 협상 진행의 여지를 피력했다. 반년간의 교착상태를 벗어날 가능성을 높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러나 9월 둘째주부터 다시 부정적 기류가 상승했다. 관련 당사국에서는 다시 타결 가능성이 50대 50이라는 설이 돌고 있다. 현재는 장기전을 염두에 둔 포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중이다.
2. 주요 쟁점
그렇다면 최근 재협상의 쟁점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사안이 타결의 걸림돌이 되는 것일까? 크게 세 가지 사안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란혁명수비대 (IRGC)를 해외테러집단 (FTO, Foreign Terrorist Organization) 목록에서 해제하는 문제다. 트럼프 정부는 IRGC를 테러집단으로 지정했다. IRGC가 이란의 공식적인 정규군사 조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례적인 일이었다. IRGC를 마치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 (ISIS)와 동류로 취급한 것이다. 이란은 자국의 주권을 모욕했다며 강력히 비난했고, 목록 해제를 재협상 조건으로 내세워왔다.
둘째, 이란내 일부 미신고 시설에서 검출된 미확인 핵물질 관련 조사건이다. 9월 12일 국제원자력기구 (IAEA) 이사회는 결의안을 통해 미신고지역의 핵물질 검출 관련, 이란의 불투명성을 비판했다. 투르쿠자바드 (Turquzabad), 마리반 (Marivan), 바라민 (Varamin) 등에 대한 사찰이 필요한 상황이나 이란측은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이 의혹이 합의를 방해하려는 이스라엘 측의 농간이라며 여기에 굴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JCPoA상 이란의 합의이행 검증의 주체인 IAEA의 조사를 이란이 계속 거부할 경우 의혹이 확산되면서 합의는 난망한 상황이다.
셋째, 재발 방지 보장 요구의 문제다. 트럼프 정부의 일방적 파기와 함께 제재 복원 (snapback)을 경험한 이란은 이러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되기에 관련국들이 법적으로 제재 부활을 못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합의를 통해 제재를 해제했다고 해도 향후 2025년 미국의 신정부가 다시 파기하지 않으리라는 아무런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11월 중간선거 이후 공화당이 다수가 되면 바이든조차 약속을 못지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란은 차라리 2015년 JCPoA에 서명하지 않았더라면 저항경제를 유지하면서 견고하게 버틸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재해제 후 다시 복원되는 과정에서 이란 경제는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기에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상기 사안들 중 IRGC의 FTO 리스트 해제는 일단 큰 이슈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럽측의 최종 문안에서 이 사안을 이란 측이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바로 이 점에 대해 이란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반면 세 번째 사안인 제재복원 방지 법적 보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 의회가 찬성해 줄 가능성은 전무하며, 차기 백악관의 정책을 현 행정부가 미리 구속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란도 잘 알고 있다. 법적 보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이란은 이를 협상 레버리지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시점에서 협상 관련 최대 관건은 둘째 사안, 즉 미신고 시설 조사 건이다. 이란 측에서는 이 문제가 불거진 배경에 이스라엘의 방해 공작이 있다고 주장한다. 일종의 이란-이스라엘 대결이 된 셈이다. 실제로 8월경 협상 임박설이 나오기 시작하자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수장이 도미 (渡美), 관련 사안을 브리핑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결국 이 사안을 어떻게 타협하느냐에 따라 재협상 타결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3. 미국과 이란의 상황∙입장
JCPoA의 복원은 미국과 이란 모두에게 필요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JCPoA를 회복시킬 것이라 공약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란에 대해 우호적이거나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첫째는 트럼프 행정부가 파국으로 이끌어간 미국 외교를 정상화 시키는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영, 프, 독 유럽 대서양 동맹국가에 대한 미국의 홀대와 일방적 의사결정을 바로잡는 조치였다. 두 번째는 중국 견제를 위한 인태전략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중동의 안정적 균형질서 구축을 위해서는 이란의 핵무장을 막아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JCPoA의 복원을 공약했지만 바이든은 2015년 합의안 그대로 돌아가려는 것은 아니었다. 이란에 반대하는 중동내 미 우방국들의 우려와 국내 여론의 반발들을 고려, 원안보다 확장되고 더 장기간 이란을 묶어두는 합의안 (longer and stronger deal)을 추진해왔다. 여기에는 기존의 핵관련 사안을 넘어서서 이란의 미사일 개발 금지, 중동 지역내 친이란 대리세력 (proxies)의 준동 방지 및 일몰 조항 연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과 걸프 왕정국가들을 위무(慰撫)하고, 이란도 적정선에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의 정보실패로 인한 외교 무능 비판에 직면했다. 국내정치에서도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다. 인플레이션 특히 고유가로 인한 지지율하락으로 인해 이란과의 협상 동력은 점차 상실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다시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아졌던 상황은 바이든 지지율이 점진적으로 회복되는 국면과 맞물린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럽 동맹국들이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기에 다시 동맹국들의 절실한 요구에 반응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적극적이고 과감한 외교 행보를 보이기엔 아직 상황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요구사항에 대해 더 철저하고 신랄하게 문제제기를 하며 장기전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물론 이란이 전향적으로 입장을 전환, 미신고 시설의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모양새를 나타낸다면 바이든 정부는 타결을 가속화 시키면서 외교 승리의 전과(戰果)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대외 거대 전략의 전개 및 동맹 관리 차원에서 이란핵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이란은 체제 안보와 관련된 문제로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딜레마 상황이기도 하다. 이슬람 혁명체제를 수호한다는 국시(國是)를 위해 국가 위신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따라서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미국에게 굴복하는 모양새를 보일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제재 복원으로 인한 경제난이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이란 대중들은 미국에 대한 비난과 동시에 체제 지도자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도 내어놓기 시작했다. 제재 해제가 절실하기에 JCPoA 재협상에 이란이 나선 것이다. 미국의 최대 압박 (maximum pressure) 제재를 러시아와 중국과의 협력으로 버텨낼 수 있다면 굳이 합의에 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과의 제한적인 경제협력으로 과연 서방의 제재를 체제가 버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어떻게해서든 이란의 위신과 자존심을 살리는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다면 석유, 가스 수출 및 해외 동결 자산 획득 등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위신과 경제라는 맥락의 딜레마 상황에서 이란은 미국과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란을 더 강하고 넓게, 더 길게 통제하려는 미국의 요구에 반대하며, 핵개발 고도화를 제외한 2015년 원안 (제재해제조건 및 일몰조항 등)을 고수하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가 가속화되면서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정국은 불확실하다. 미국과 이란 양측은 내심 합의를 바라면서도, 선뜻 상대가 원하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4. 향후 전망
2022년 9월 중순 현재, 전문가들은 대개 합의 타결 가능성을 50대 50으로 전망하고 있다. 낙관과 비관이 첨예하게 갈린다는 것은 사실상 객관적 전망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당사국들의 합의 타결 의지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양보하기 어려운 쟁점 사안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경우 상황 변수가 중요하다. 현재로서는 두 가지 상황 변수를 가늠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유럽의 에너지난, 이란의 경제위기 등 지경학적 위기 변수다. 감당이 안되는 위기 상황에서 합의를 통해서만 이를 타개할 수 있는 임계점의 도래가 관건이다. 두 번째는 주변국가 변수다. 미국의 경우 이스라엘과 걸프 국가들이 어떻게 이 합의에 반대하며 나서는가가 핵심 사안이다. 이란의 경우는 러시아와 중국과의 연대를 통해 서방의 제재를 버텨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여부가 중요하다. 물론 국내 여론 문제도 경시할 수 없다. 결국 미묘한 상황 변화에 의해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질 수도, 아니면 불발될 수도 있는 불가측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완전한 파국으로 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곧 중동 전역의 핵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며, 자칫 우크라이나에 이은 또 다른 전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붙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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