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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2. 한중수교의 역사적 배경과 추진요인
3. 한중수교 30주년의 평가와 도전요인
4. 한중관계의 전망 및 정책적 대응 방안
<요약>
한국과 중국이 1992년 8월 24일에 양국 간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 한 이후 한중관계는 2022년 수교 3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글은 지난 30년에 이어 새로운 한중관계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한중관계를 크게 정치٠외교, 경제٠통상, 군사٠안보, 사회٠문화 등 네 가지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각 영역에서 외교٠안보 분야와 관련된 대표적인 도전요인들을 선별하여 전망해 보고자 한다. 특히 정치٠외교 분야에서는 한٠중 사이의 가치와 체제의 차이, 경제٠통상 분야에서는 한٠중 산업 분업화 구조의 변화 및 공급망 요인, 군사٠안보 분야에서는 한미동맹 및 한٠미٠일 지역안보협력체제의 강화, 사회٠문화 분야에서는 한٠중 간 문화 논란 등 심화하는 미٠중 전략적 경쟁 구도 하에서 한중관계의 도전요인으로 부상하는 현안들을 살펴보았다.
수교 전의 시기였던 1980년대에 한٠중 사이에는 외교적 교섭이 필요했던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함으로써 수교에 기반을 쌓는 양자 외교의 경험을 축적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들로는 1982년 10월 16일 및 1986년 2월 22일에 있었던 중공(수교 이전이었던 당시 중국의 명칭) 미그 19기 망명사건, 1983년 5월 5일의 중공 민항기 사건, 1985년 3월 22일의 중공 어뢰정 사건, 1986년 6월 17일에 발생한 중공 민간인 선박 표류 사건 등을 들 수 있다. 한٠중은 이러한 외교적 물밑 교섭을 통해 수교 전부터 조금씩 외교관계의 기반을 쌓아나갔다.
당시 중국은 1989년 6월의 천안문 사태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와 외교적으로 고립에 가까운 상황에서 한중수교를 통해 하나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수교 논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한 중국의 입장에서는 1991년 9월에 개최된 제46차 UN 총회에서 남٠북한이 각각 UN 회원국으로 동시 가입이 됨으로써 한중수교 추진에 있어 '하나의 중국' 원칙과 관련된 타이완 문제에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1980년대 후반부터 나타났던 냉전 종식이라는 국제 환경의 변화, 노태우 정부의 ‘7٠7선언’과 외교적 총력을 기울였던 ‘북방 외교’의 추진 등의 종합적인 결과로 1992년 8월 마침내 한중수교가 체결되었다. 반면 한중수교와 함께 필연적으로 수반되었던 타이완과의 단교 과정이 외교적으로 매끄럽지 못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존재한다. 당시 국제정세에 비추어본다면 한중수교는 한국의 국익에 부합했으며 필연적으로 동반되었던 타이완과의 단교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타이완과의 단교 과정에서 과거 미국과 일본이 보여주었던 타이완에 대한 외교적 배려와 존중과 비교해 한국의 외교적 대응이 미비했던 점이 존재했으며 이로 인해 이어진 한국과 타이완 관계는 물론 대중국 외교에서도 부정적인 요인이 되었음에 대해 논쟁이 존재하고 있다.
한٠중 사이에는 수교 당시부터 양국 사이의 가치와 체제의 차이점이 존재해 왔으나, 최근 미٠중 전략적 경쟁이 점차 심화되며 미국이 중국을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 및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칙 기반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과정에서 한·중의 ‘차이’는 도전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٠중 전략적 경쟁은 물론 국내 정치적으로도 시진핑 주석의 권위뿐 아니라 나아가 공산당 리더십의 정통성이 걸려있는 ‘주권’, ‘영토’, 및 ‘통일’의 문제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이유로 인해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현안이다. 특히 2022년 가을로 개최 예정인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이하 20차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에 3번째 선출되며 3연임을 이루려는 시진핑 주석의 입장에서는 외부로부터의 압박에 양보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민감한 국내 정치적인 현안이다. 따라서 한국은 국민들과 합의된 한국의 ‘가치’와 ‘체제’의 정체성에 대한 입장을 다자외교에서는 이전에 비해 조금 더 명확하게 중국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 반면 한٠중 양자관계에서의 의제 조정 및 절제된 용어와 메시지의 사용, 그리고 다자외교의 역량 강화 및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경제٠통상 영역은 수교 이후 한중관계에서 가장 괄목할 발전을 이루어 낸 분야로 평가된다. 반면 수교 이후 유지되어온 동북아 지역의 한٠중٠일 산업 분업화 구조(일본: 핵심 기술과 부품 재료; 한국: 중간재; 중국: 조립 및 수출)가 변화하며, 한·중 간 산업 협력 구조가 상호٠보완 및 분업화에서 상호 경쟁 국면에 접어들고 미٠중 전략적 경쟁의 심화로 인해 한٠중 간 산업 공급망의 불안정 요인이 증가한 것은 한٠중 경제 통상 분야가 해소해야 할 쉽지 않은 과제로 부상했다. 특히 미٠중 사이의 첨단 기술 경쟁은 군사·안보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신뢰할 수 있는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로 구성된 주요 원자재와 에너지 및 첨단 제품의 '신뢰가치사슬(Trusted Value Chain)'의 확립을 추구하며, 동시에 첨단산업의 공급망에서 ‘탈중국' 또는 일부 첨단산업에서 중국의 배제를 모색하고 있다. 반면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는 경제٠통상 및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나타나는 미국으로부터의 압박에 대응해 내수 중심의 ‘쌍순환 정책’과 ‘첨단 기술의 자립’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은 무엇보다도 첨단 기술에 관한 경쟁력 확보가 절박한 상황이다. 또한 한국의 기술과 기술 인력이 쉽사리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에 대한 강경한 법제적 대책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한·중 경제 협력의 제도적 틀로서 한·중 FTA 후속 협상 및 한·중 사이의 다양한 경제 협력 및 도전요인의 관리 그리고 안정적인 양국 간 산업 공급망 유지를 정례적으로 논의할 한٠중 경제 협의체의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성이 있다.
한중수교 이후 군사٠안보 분야는 협력의 증진을 만들어 내기 가장 어려운 영역이었으며, 특히 미٠중 전략적 경쟁이 심화된 현재의 한중관계에서 많은 도전요인들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NATO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의 연계 강화 움직임 및 동/남중국해에 이어 타이완 해협에서의 긴장 고조는 중국에 심각한 군사٠안보적 우려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한국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 및 한٠미٠일 지역안보협력체제의 강화를 강조함에 따라 한중관계에서 군사안보 분야의 도전요인 증가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견지되어온 한중관계의 기본 틀인 ‘공고한 한미동맹의 기반 위에서 한중관계의 협력과 발전의 증진 추구’를 다시금 확인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한٠중 전략대화 채널의 복구와 확대 및 양국 전략대화 채널이 대내외적 환경에 흔들리지 않게 ‘정례화’시키는 방안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사회٠문화 분야는 경제٠통상 분야와 함께 한중관계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해 낸 영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1,000만 명의 시대를 연 상호 인적교류와 ‘한류(韓流)’에 대한 관심과 인기를 들 수 있다. 하지만 2002년부터 불거진 ‘동북공정’ 및 2016년 한국 내 사드 배치 현안 이후 ‘한한령(限韓令)’을 포함한 중국의 직·간접적인 제재 조치에 이어 최근 한·중 네티즌 사이의 한복 및 김치 논쟁 등으로 인해 한·중 간 사회·문화 분야에서 갈등이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최근 들어 한국 내에서는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나아가 한٠중 국민들 사이에서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가 점차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는 중국 내 애국٠민족주의 및 사상 교육의 강화가 지속되며 중화문명에 대한 높은 자긍심과 이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 및 중국–주변 국가 간의 문화교류를 수직적인 관계로 인식하는 모습이 확대되어 온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단기적인 양국 정부 차원에서의 대응과 함께 장기적인 차원에서 한٠중 청소년, 차세대 리더십, 청년 장교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장기적이고 정례적인 교류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 붙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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