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o:abstract |
1. 미국의 공급망 재편 - 국내 기반
2. 미국의 공급망 재편 - 국제 협력
3. 평가
4. 전망 및 함의
1. 미국의 공급망 재편 - 국내 기반
코로나 19 발발과 기후위기를 계기로 경제와 안보에 핵심적인 품목의 과도한 중국의존도를 자각한 미국은 탈중국화를 위한 공급망 재편에 사활을 걸었다.
바이든이 핵심품목 공급망의 검토 지시에 따라 6월 8일 완성된 중간보고서("Building Resilient Supply Chains, Revitalizing American Manufacturing, and Fostering Broad-Based Growth: 100-Day Reviews under Executive Order 14017")는 반도체, 대용량 배터리, 핵심 광물, 의약품 4대 품목의 각 공급망 위험성을 진단하였다. 이를 토대로 해당 품목의 국내 생산역량 재건과 공급망 다각화를 위한 산업정책(국내)과 우방과의 협력(대외)을 대안으로 제시한 이 보고서는 이후 미국의 반중 공급망 재편 전략의 나침반이 된다.
같은 날 상원을 통과한 &미국혁신과경쟁법안(USICA, 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s)'은 미국 산업정책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는 2020년에 과학기술 진흥 목적으로 발의한 &지속적인 프론티어 법(Endless Frontier Act)'이 점차 확대된 것으로, 이를 포함해 반도체 산업 육성과 공급망 안정화 관련 법안 등 7개 법안에 2022~2026년간 무려 2,000억 달러를 지원하는 강력하고도 방대한 산업정책 패키지 법안이다.
백악관은 자동차용 반도체 품귀 현상을 배경으로 9월 23일 반도체의 공급망 위험 조기경보시스템(Early Warning System) 구축 방침을 표명하였다. 이에 따라 다음날 상무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등 자국 내에서 생산 중인 모든 반도체 기업에 재고, 수요, 유통 등 세밀한 영업비밀의 &자발적 공유'를 11일 8일까지 요구하는 관보를 게재했다.
10월 13일에는 백악관이 코로나발 경제위기 회복기에 복병으로 나타난 물류 대란 해소를 위해 로스엔젤레스 항구 및 롱비치 등의 관리에 정부가 관여할 방침을 밝혔다. 바이든 정부는 물류 대란에 따른 물류비용 상승이 초래할 인플레이션 유발도 우려해 물류의 병목현상 해소를 위한 글로벌 차원의 공조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2. 미국의 공급망 재편 - 국제 협력
미 행정부는 그간 중국의 첨단기술 탈취, 불공정 경쟁,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 훼손에 단호한 반대 입장을 취해 왔고, 이에 대해서는 초당적 지지를 얻었다. 이에 더해 미국의 국제사회 리더로의 복귀와 동맹 복원을 기치로 내건 바이든 취임으로 공급망 재편을 위한 우방과의 공조 협력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바이든 정부는 취임 직후 먼저 핵심 안보동맹인 일본(4. 16), 한국(5. 21)과 정상회담을 개최해 양국과 각기 공급망 협력을 위한 두 개의 선을 그었다. 일본과는 반도체 공급망 강화 등 협력에 합의하였다. 한국과는 포괄적인 협력에 합의하여 동맹관계의 질적 전환을 이뤘으며, 특히 미국의 공급망 강화 4대 핵심 품목 중 희토류를 제외한 3개 품목에서 협력이 가능한 유일한 나라 한국은 미국의 긴요한 협력 파트너로 부상했다.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와 QUAD를 결성해 반도체 등의 공급망 강화 협력에 나서며 일본과 그은 선을 면으로 확대하였다. 6월에는 G7 정상회의에서 개인의료보호장비(PPE)와 반도체의 공급망 구축 협력에 나서며 또 다른 면을 만들었다. 9월 24일 미국에서 첫 회동을 가진 미국·EU 무역·기술위원회(TTC, US-EU Trade and Technology Council)는 공동선언문(US-EU Trade and Technology Council Inaugural joint Statement)에서 그 목표가 대중 공동봉쇄망 구축임을 명시하고 10개 작업반(기술표준, 기후/그린 테크, 공급망 안정화, 정보 기술 및 서비스(ICTS) 안정화와 경쟁력, 데이터 거버넌스/테크 플랫폼, 안보/인권을 위협하는 기술 오용, 수출통제, 투자 심사, 중소기업 디지털화, 무역 관련 글로벌 현안) 구성에 합의하였다.
미국은 10월 31일 개최된 G20 계기에 14개국 및 EU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 회의를 개최해 반중 공급망 재편 공간을 더 확대했다. 14개국은 한국,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캐나다, 멕시코,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콩고(배터리 주원료인 코발트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동 회의체는 RD-중간재-제조-물류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대상으로 공급망 교란 대책 마련(단기)과 회복력 제고(장기)를 추구한다. 관련 보도자료(Summit on Global Supply Chain Resilience to Address near-Term Bottlenecks and Tackle long-Term Challenges)는 민간 기업과 정보 공유 및 투명성 증대를 위해 시장 원리와 정합적인 협력을 강조하였다.
3. 평가
보호주의 진영화와 신뢰가치사슬
미국 정부의 통상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이중용도(dual use)의 신흥·핵심 기술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시키는 공급망 재편이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는 강력한 산업정책을 추진하며 대외적으로는 우방국(like-minded countries)과 복합적·다층적 협력을 추진하려 한다. 이에 글로벌 지정학의 갈등 구도는 &미국 대 중국'에서 &미국 진영 대 중국'으로 변모하는 &보호주의의 진영화(blocization of protectionism)' 단계로 진입하는 듯하다. 이러한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을 글로벌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나 지역가치사슬(Regional Value Chain)와 같은 지경학적 개념으로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필자는 이를 지정학적 시각에서 보호주의 진영화가 투사된 공급망 전략인 &신뢰가치사슬(Trusted Value Chain)' 개념을 원용해 파악한다.
상호의존성이 고도화된 오늘날, 초민감 전략물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도 신흥·기반 이중용도 기술의 국내가치사슬(DVC) 강화가 불가능하며 회복력 측면에서는 위험하기도 하다. 지금처럼 다극화 시대에 미국이 홀로 핵심 기술과 데이터의 대중 봉쇄는 한계가 자명하다. 따라서 중국이 포함된 유명무실한 WTO에 의존할 의사도 없는 미국은 결국 첨단 기술 분야만이라도 아직 기술 우위에 있는 우방과 TVC 구축에 나서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동맹 중시의 바이든 정부 출현은 보호주의 진영화의 변곡점이 되었다. 미국은 대중 경쟁차원에서 &가치 공유', 유사국&, 신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결과가 어느 정도 드러나기까지 가치사슬은 주 행위자, 협력 공간, 대상 품목에 따라 DVC, TVC, RVC, GVC 등이 병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신뢰가치사슬: 이중의 외연 확대
최근 미국의 TVC 구축 흐름에는 그 범위가 RD와 제조에서 물류까지 전 공정으로 확대되는 한편 협력 대상은 점(미국)에서 출발해 선(한국, 일본)으로 확대한 뒤, 면(QUAD, G7, TTC, G14 등)으로 확대되는 이중의 외연확대 기조가 뚜렷하다. G7, QUAD는 여타 우방국의 참여 공간을 비워두고 있고 TTC도 기술표준, 기후변화 및 클린 테크, 수출통제, AI, 반도체, ICTS, 기술 오용 분야에서는 우방과의 협력 필요성을 명시하고 있다.
4. 전망 및 함의
그렇다면 향후 TVC가 확산되어 세계 표준과 규범, 데이터, 시장 등이 본격적으로 두 진영으로 양분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TVC가 미국 의도대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국가 대 국가 관계에서는 TVC 내 신뢰와 호혜주의 실현, 국가 대 시장 관계에서는 안보논리와 시장논리의 균형과 조화 두 가지로 집약된다. 다만, 아직 전망은 밝지 않아 보인다.
국가 대 국가
무엇보다, 미국의 외교적 리더십이 실험대에 올랐다. 바이든 정부의 동맹복원 구호는 미국의 쇠퇴를 반증한다. 따라서 미국이 상호 신뢰와 호혜주의를 실현하고자 솔선수범해야 우방은 동참할 유인이 생긴다. 나아가 이는 TVC 참여국 간 모두에게도 적용된다.
미국이 EU와의 해묵은 보잉-에어버스 보조금 분쟁의 휴전을 선언하고, 무역확장법 232조 기반 대EU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관세 부과조치를 완화해 협력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 했다. 하지만 TTC 첫 회동 1주일 전에 드러난 호주-프랑스 핵잠수함 개발계약 파기와 미국·영국·호주 군사동맹(AUKUS) 출범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확산일로인 영국과 프랑스의 어업 분쟁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과 5eyes, QUAD에 AUKUS까지 맺은 호주의 경우에도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기원 조사 요구로 호주가 중국에 경제보복을 당할 때 사실상 방관했던 미국을 신뢰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미국의 안보동맹 한국과 일본도 양자 갈등으로 인해 서로 외면한지 오래다. 일본이 반도체 부활을 위한 최고의 파트너로 삼는 대만은 정작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에 놀라 대일의존도가 높은 28개 품목 중 4개 품목의 탈일본화에 나선다.
국가 대 시장
TVC의 두 번째 성공 조건은 안보 논리와 시장 논리 간 균형과 조화다. 효율은 여전히 강력한 시장의 작동 원리다.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기반해 우방국에서의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에도 고관세를 부과하듯, 글로벌화 시대에 안보를 명분삼은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산업정책의 폐해를 반복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정 부문 육성과 국내기업 과보호가 만들어 낼 민간의 활력 저하, 구축 효과 발생, 경쟁적인 보조금 지급과 중복투자, 그로 인한 공급과잉과 덤핑 수출 공세는 심각한 무역 분쟁을 야기할 것이다.
미국 정부가 경제안보를 이유로 자국에 투자하는 해외 기업에 영업비밀을 요구하는 것은 시장 논리에 정면으로 맞서며 이율배반적인 중국 따라하기다. 미국은 중국의 영업비밀 침해를 대표적인 불공정한 무역행위라며 맹비난하고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서도 미국 기업의 중국 진출 시 기술이전 계약에서 발생하는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였다. 그런 미국이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중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에 제공될 해당기업들의 영업비밀이 미국의 경쟁기업에게 누설되지 않도록 미국정부가 100% 보장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정책적 함의
미국 주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보호주의의 진영화와 TVC 구축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은 우리의 공급망 전략 수립에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 상호의존성이 고도화된 오늘날, 폐쇄적인 DVC 구축도, 완전한 미중 디커플링도 불가능하다. WTO의 다자주의는 심각히 훼손된 상황에서, 신뢰할 만한 나라와의 다층적인 공조와 협력이 불가피하다. 이에 한국은 품목별 특징에 맞게 GVC, RVC 및 TVC에 공급망을 분산 배치하고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한편 각각의 협력 파트너를 선정하는 현실적이고 유연한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첨단 이중용도 기술의 경우는 미국 주도 TVC 참여가 불가피하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과 디지털 전환을 좌우할 첨단 기술 강국이 모인 TVC 합류는 OECD 회원국이자 G7에 초대받은 나라의 합리적인 선택지다. 점차 이중의 외연 확대 양상을 드러내는 미국 주도 TVC 참여는 우리의 대외 발언권과 협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CPTPP 참여 여부는 이러한 맥락에서 재조명해야 한다. 그러나 TVC 성공 조건 마련을 위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RVC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인 근린국 중국과의 협력이 긴요하다. 중국은 지구 공통 현안인 기후변화, 코로나 팬데믹, 격차 해소 등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내년 1월 발효에 이른 RCEP 참여도 이러한 시각에서 그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한다.
첨단기술의 공급망 재편은 경제를 넘어서 한국의 외교안보 지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현안이다. 한국 현실을 감안한 공급망 재편을 포함하는 경제안보 전략 수립과 국내 거버넌스 구축에 대한 공론화가 시급하다.
* 붙임 참조
1. 미국의 공급망 재편 – 국내 기반
2. 미국의 공급망 재편 – 국제 협력
3. 평가
4. 전망 및 함의
1. 미국의 공급망 재편 – 국내 기반
코로나 19 발발과 기후위기를 계기로 경제와 안보에 핵심적인 품목의 과도한 중국의존도를 자각한 미국은 탈중국화를 위한 공급망 재편에 사활을 걸었다.
바이든의 핵심품목 공급망 검토 지시에 따라 6월 8일 완성된 중간보고서(“Building Resilient Supply Chains, Revitalizing American Manufacturing, and Fostering Broad-Based Growth: 100-Day Reviews under Executive Order 14017”)는 반도체, 대용량 배터리, 핵심 광물, 의약품 4대 품목 각각의 공급망 위험성을 진단하였다. 이를 토대로 해당 품목의 국내 생산역량 재건과 공급망 다각화를 위한 산업정책(국내)과 우방과의 협력(대외)을 대안으로 제시한 이 보고서는 이후 미국의 반중국 공급망 재편 전략의 나침반이 된다.
같은 날 상원을 통과한 ‘미국혁신경쟁법안(USICA, 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s)’은 미국 산업정책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는 2020년에 과학기술 진흥 목적으로 발의한 ‘지속적인 프론티어 법(Endless Frontier Act)’이 점차 확대된 것으로, 이를 포함해 반도체 산업 육성과 공급망 안정화 관련 법안 등 7개 법안에 2022~2026회계년간 무려 2,000억 달러를 지원하는 강력하고도 방대한 산업정책 패키지 법안이다.
백악관은 자동차용 반도체 품귀 현상 등을 배경으로 9월 23일 반도체의 공급망 위험 조기경보시스템(Early Warning System) 구축 방침을 표명하였다. 이에 따라 다음날 상무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등 자국 내에서 사업 중인 모든 반도체 기업에 생산능력, 주요 고객, 재고 등 세밀한 영업비밀의 ‘자발적 공유’를 11일 8일까지 요구하는 관보를 게재했다.
10월 13일에는 백악관이 코로나발 경제위기 회복기에 복병으로 나타난 물류 대란 해소를 위해 로스엔젤레스 및 롱비치 항만 등의 관리에 정부가 관여할 방침을 밝혔다. 바이든 정부는 물류 대란에 따른 물류비용 상승이 초래할 인플레이션 유발도 우려해 물류의 병목현상 해소를 위한 글로벌 차원의 공조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2. 미국의 공급망 재편 – 국제 협력
미 행정부는 그간 중국의 첨단기술 탈취, 불공정 경쟁,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 훼손에 단호한 반대 입장을 취해 왔고, 이는 초당적 지지를 얻었다. 이에 더해 미국의 국제사회 리더로의 복귀와 동맹 복원을 기치로 내건 바이든 취임을 계기로 공급망 재편을 위한 우방과의 공조 협력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바이든 정부는 취임 직후 먼저 핵심 안보동맹인 일본(4. 16), 한국(5. 21)과 정상회담을 개최해 양국과 각기 공급망 협력을 위한 두 개의 선을 그었다. 일본과는 반도체 공급망 강화 협력 등에 합의하였다. 한국과는 포괄적인 협력에 합의하여 동맹관계의 질적 전환을 이뤘으며, 특히 미국의 공급망 강화 4대 핵심 품목 중 희토류를 제외한 3개 품목에서 협력이 가능한 유일한 나라 한국은 미국의 긴요한 협력 파트너로 부상했다.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와 QUAD를 결성해 반도체 등의 공급망 강화 협력에 나서며 일본과 그은 선을 면으로 확대하였다. 6월에는 G7 정상회의에서 개인보호장비(PPE)와 반도체의 공급망 구축 협력에 나서며 또 다른 협력면을 만들었다. 9월 29일 미국에서 첫 회동을 가진 미국·EU 무역·기술위원회(TTC, US-EU Trade and Technology Council)는 공동선언문(US-EU Trade and Technology Council Inaugural joint Statement)에서 그 목표가 대중 공동봉쇄망 구축임을 명시하고 이를 위한 10개 작업반(기술표준, 기후/그린 테크, 공급망 안정화, 정보 기술 및 서비스(ICTS) 안정화와 경쟁력, 데이터 거버넌스/테크 플랫폼, 안보/인권을 위협하는 기술 오용, 수출통제, 투자 심사, 중소기업 디지털화, 무역 관련 글로벌 현안) 구성에 합의하였다.
미국은 10월 31일 개최된 G20 계기에 14개국 및 EU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 회의를 개최해 반중 공급망 재편 공간을 더 확대했다. 14개국은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호주, 인도, 캐나다, 멕시코,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콩고(배터리 주원료 코발트의 세계 최대 생산국)다. 동 회의체(G14)는 R&D, 중간재 조달, 제조에서 물류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대상으로 공급망 교란 대책 마련(단기)과 회복력 제고(장기)를 추구한다.
3. 평가
보호주의 진영화와 신뢰가치사슬
이상에서 확인했듯이, 미국 정부 통상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이중용도(dual use)의 신흥·핵심 기술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시키는 공급망 재편이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는 강력한 산업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신뢰할 만한 동맹 및 우방국(like-minded countries)과 다층적 협력을 추진하려 한다. 이에 글로벌 지정학의 갈등 구도는 ‘미국 대 중국’에서 ‘미국 진영 대 중국’으로 변모하는 ‘보호주의의 진영화(blocization of protectionism)’ 단계로 진입하는 듯하다. 필자는 이러한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을 지정학적 시각에서 보호주의 진영화가 투사된 공급망 전략인 ‘신뢰가치사슬(Trusted Value Chain)’ 개념을 원용해 파악한다. 글로벌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나 지역가치사슬(Regional Value Chain)과 같은 지경학적 개념으로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상호의존성이 고도화된 오늘날, 초민감 전략물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도 신흥·기반 이중용도 기술의 국내가치사슬(Domestic Value Chain) 강화가 불가능하며 이는 오히려 회복력 측면에서 위험하기도 하다. 미국이 홀로 핵심 기술과 데이터의 대중 봉쇄에 나서는 것은 한계가 자명하다. 미국은 중국이 포함된 유명무실한 WTO에 의존할 의사도 없어 보인다. 결국 미국은 첨단 기술 분야만이라도 아직 기술 우위에 있는 우방과 보호주의를 진영화하여 TVC 구축에 나서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동맹 중시의 바이든 정부 출현은 그 변곡점이 되었다. 미국은 대중 경쟁차원에서 ‘가치 공유’, ‘유사국‘, ‘신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신뢰가치사슬, 이중의 외연 확대
최근 미국의 TVC 구축 흐름에는 그 범위가 R&D와 제조에서 물류까지 전 공정으로 확대되는 한편, 협력 대상은 점(미국)에서 출발해 선(한국, 일본)으로 확대한 뒤, 면(QUAD, G7, TTC, G14 등)으로 확대되는 이중의 외연확대 기조가 뚜렷하다. G7, QUAD는 공급망 강화 등의 사업에 여타 우방국의 참여 공간을 비워두고 있고 TTC도 기술표준, 기후변화 및 클린 테크, 수출통제, AI, 반도체, ICTS, 기술 오용 분야에서는 우방과의 협력 필요성을 명시하고 있다.
4. 전망 및 함의
이리하여 미중 전략경쟁의 결과가 어느 정도 드러나기까지 당분간 가치사슬은 주 행위자, 협력 공간, 대상 품목에 따라 DVC, TVC, RVC, GVC 등이 병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분간 TVC가 형성되는 흐름은 분명히 감지되나 단 기간 내에 급속도로 확산되어 세계의 표준과 규범, 데이터, 시장 등이 본격적으로 두 개의 진영으로 양분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TVC가 미국 의도대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국가 대 국가 관계에서는 TVC 내 신뢰와 호혜주의 실현, 국가 대 시장 관계에서는 안보논리와 시장논리의 균형과 조화 두 가지로 집약되는데 아직 그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국가 대 국가
무엇보다, 미국의 외교적 리더십이 실험대에 올랐다. 바이든 정부의 동맹복원 구호는 미국의 쇠퇴를 반증한다. 따라서 미국이 상호 신뢰와 호혜주의를 실현하고자 솔선수범해야 우방은 동참할 유인이 생긴다. 나아가 신뢰와 호혜주의 실현은 미국뿐 아니라 TVC 참여국 간 모두에게도 적용된다.
미국은 EU와의 해묵은 보잉-에어버스 보조금 분쟁의 휴전을 선언하고, 무역확장법 232조 기반 대EU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관세 부과조치를 완화해 미국-EU 간 협력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 했다. 하지만 양측은 TTC 첫 회동 1주일 전에 드러난 호주-프랑스 핵잠수함 개발계약 파기와 미국·영국·호주 군사동맹(AUKUS) 출범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영국과 프랑스의 어업 분쟁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과 5eyes, QUAD에 AUKUS까지 맺은 호주의 경우에도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기원 조사 요구로 호주가 중국의 경제보복에 당할 때 사실상 방관했던 미국을 신뢰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미국의 안보동맹 한국과 일본도 양자 갈등으로 인해 서로 외면한지 오래다. 일본이 반도체 부활을 위한 최고의 파트너로 삼는 대만은 정작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에 놀라 대일의존도가 높은 28개 품목 중 4개 품목의 탈일본화에 나선다.
국가 대 시장
TVC의 두 번째 성공 조건은 안보 논리와 시장 논리 간 균형과 조화다. 효율은 여전히 강력한 시장의 작동 원리다.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기반해 우방국에서의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에도 고관세를 부과하듯, 글로벌화 시대에 안보를 명분삼은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산업정책의 폐해를 반복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정 부문 육성과 국내기업 과보호가 만들어 낼 민간의 활력 저하, 구축 효과 발생, 경쟁적인 보조금 지급과 중복투자, 그로 인한 공급과잉과 덤핑 수출 공세는 심각한 무역 분쟁을 야기할 것이다.
미국 정부가 경제안보를 이유로 자국에 투자하는 해외 기업에 영업비밀을 요구하는 것은 시장 논리에 정면으로 맞서며 이율배반적인 중국 따라하기다. 미국은 중국의 영업비밀 침해를 대표적인 불공정한 무역행위라며 맹비난하고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서도 미국 기업의 중국 진출 시 기술이전 계약에서 발생하는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였다. 그런 미국이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중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에 제공될 해당기업들의 영업비밀이 미국의 경쟁기업에게 누설되지 않도록 미국정부가 100% 보장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정책적 함의
미국 주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보호주의의 진영화와 TVC 구축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은 우리의 공급망 전략 수립에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 상호의존성이 고도화된 오늘날, 폐쇄적인 DVC 구축도, 완전한 미중 디커플링도 불가능하다. WTO의 다자주의는 심각히 훼손된 상황에서, 우리도 신뢰할 만한 나라와의 다층적인 공조와 국제협력이 긴요하다. 이에 한국은 품목별 특징에 맞게 GVC, RVC 및 TVC에 공급망을 분산 배치하고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한편 각각의 협력 파트너를 선정하는 현실적이고 유연한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첨단 이중용도 기술의 경우는 미국 주도 TVC 참여가 불가피하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과 디지털 전환을 좌우할 첨단 기술 강국이 모인 TVC 합류는 OECD 회원국이자 G7에 초대받은 나라의 합리적인 선택지다. 점차 이중의 외연 확대 양상을 드러내며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미국 주도 TVC 참여는 우리의 대외 발언권과 협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CPTPP 참여 필요성은 이러한 맥락에서 재조명해야 한다. 물론, TVC의 성공 조건 마련을 위한 참여국 모두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GVC 및 RVC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인 근린국 중국과의 협력이 긴요하다. 중국은 지구 공통 현안인 기후변화, 코로나 팬데믹, 격차 해소 등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내년 1월 발효에 이른 RCEP 참여도 이러한 시각에서 그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한다.
첨단기술의 공급망 재편은 경제를 넘어서 한국의 외교안보 지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현안이다. 한국 현실을 감안하여 공급망 재편을 포함하는 경제안보 전략 수립과 국내 거버넌스 구축에 대한 공론화가 시급하다.
* 붙임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