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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심은 어떻게 움직였나?: 역대 최저 투표율의 의미
2. 라이시 당선인은 누구인가?: 세속 교육받지 않은 강경 보수 이슬람 법학자
3. 금번 선거 결과의 원인은?: 중도-개혁성향 유권자들의 고민과 그 선택
4. 향후 미국의 이란 핵합의 복귀 논의전망은?: 여전히 남아있는 가능성
6월 18일 실시한 13대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에브라힘 라이시(Ebrahim Raisi) 사법부 수장(Chief Justice)이 당선되었다. 바이든 정부 출범 후 미국의 이란 핵합의(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 복귀 논의가 관련국들 사이에서 한창 진행 중이었기에 더욱 관심을 끌었던 선거였다. 현 하산 로하니(Hassan Rouhani) 대통령 정부를 잇는 중도 또는 개혁파 후보는 패배했고, 보수파의 대표적 인물이 8월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향후 이란의 대외관계, 특히 핵합의 관련 미국과의 대화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미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최우선순위 중 하나가 이란 핵합의 복귀 및 중동 안정화이기에 단순히 이란 국내 정치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선거 결과다.
1. 표심은 어떻게 움직였나?: 역대 최저 투표율의 의미
애초부터 보수파로 기울어진 선거였다. 선거가 도래하면서 물망에 올랐던 유력 후보 중 상당수가 사전 후보 검증에서 탈락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중도파 후보들은 거의 배제되었다. 헌법수호위원회(Guardian Council)는 출마 신청자 552명 중 최종 후보 7명을 최종 승인했다. 사전 조사 지지율 1위를 달렸던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Mahmoud Ahmadinejad) 전 대통령을 비롯, 명망가들의 출마가 좌절되면서 라이시 후보의 당선으로 수렴되는 분위기였다. 특히 중도-개혁파 후보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자바드 자리프(Mohammad Javad Zarif) 외무장관의 출마설이 지속되었으나 본인이 고사하면서 뚜렷한 후보가 보이지 않았다. 중도파를 대표해서 압돌나세르 헴마티(Abdolnasser Hammati) 이란 중앙은행장이 출마했다. 자리프와 연대를 내세우면서 중도-개혁 성향의 유권자에게 호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낮은 투표율이라 할 수 있다. 48.78%로 혁명 이후 역대 최저였다. 2017년 대선 투표율 73.33%에 비하면 무려 24.55% 감소한 수치다. 투표 참여 자체가 저조한 선거에서 라이시 후보는 28,933,004표 중 61.95%인 17,926,345표를 획득, 1차 투표에서 여유 있게 당선을 확정지었다. 혁명수비대 출신 모흐센 레자이(Mohsen Rezaei) 후보가 3,412,712표(11.79%)를, 그리고 중도 진영의 헴마티 후보가 2,427,201표(8.38%)를 얻는 데 그쳤다. 직전 대선에서 로하니 대통령의 득표수 23,636,652표(57.14%)를 고려하면 중도 진영은 물경 2천만 표 가까이 잃은 셈이다. 무엇보다 투표장에 나오고도 기표하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무효표를 만든 투표수가 370만 표에 달한다. 라이시 후보의 압승은 틀림없으나 유권자의 3분의 2가 지지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주목을 받고 있다.
2. 라이시 당선인은 누구인가?: 세속 교육 받지 않은 강경 보수 이슬람 법학자
이란 동북부 호라산 지방 마샤드(Mashad) 출신의 원리주의 성직자다. 15세부터 시아파 이슬람 신학의 본산인 곰(Qom) 신학교에서 이슬람 법학을 수학했으며 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Grand Ayatollah Ali Al Khamenei)의 복심(腹心)으로 알려져 있다. 혁명 이후 주로 이슬람 성법 관련 부서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특히 1988년 검찰 근무할 당시 정치범 숙청 책임 논란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라이시 당선인은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Quran)과 언행록 하디스(Hadith)를 법의 원천으로 하는 성법(fiqh) 체계를 평생 훈련받은 법학자(faqih)다. 세속 학문 분야를 학습, 연마한 경험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똑같이 신학 교육을 배경으로 시작했지만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으며 학문의 영역을 넓혀왔고 군 경험까지 가진 현 로하니 대통령의 이력과 다르다.
반이슬람 사상 척결에 주력했던 경력은 자연스럽게 혁명수호전위대인 혁명수비대와의 밀착 관계로 이어졌다. 혁명수비대가 옹위해 온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최측근이 된 배경이기도 하다. 또한 언론인, 정치인 및 친서방인사 등 다수를 반혁명세력으로 규정, 대거 투옥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라이시 당선인은 미국의 제재 대상이기도 하다.
2019년 사법부 수장에 임명된 이후, 그의 정책 목표는 부패 척결이었다. 유력 인사들에 대한 기소가 잇따랐다. 국내 경제 상황의 악화로, 민심이 흉흉해지면 체제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이란 행정부는 미국 트럼프 정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 반면, 사법부는 명망가들의 부패를 고발하며 여론의 화살을 체제 아닌 특정 인사에게 돌렸다. 따라서 그의 당선은 향후 이란 내 반정부세력에 대한 강압적인 태도로 연결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다만 외교정책과 관련, 선거기간 내 별다른 입장 표명이 없었기에 향후 대미 관계를 비롯, 역내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나갈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라이시 당선인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의 정치적 야심이다. 즉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승계할 가능성의 여부다. 미국과의 핵합의 직후, 로하니 대통령이 재선되는 등 이란의 국제사회 편입이 기정사실화 되었을 때만 해도 로하니 대통령의 최고권력 접근설이 유력했다. 그러나 상황이 반전된 현재, 라이시 당선인의 최고지도자 승계 추진설도 세간에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 경우 성직자 배경만으로는 약하다. 국가 운영의 경험 없이 이슬람법 준용 경력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번 당선을 통해 하메네이는 라이시를 다음 최고지도자의 반열에 올리려는 의지를 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3. 금번 선거 결과의 원인은?: 중도-개혁 성향 유권자들의 고민과 그 선택
한마디로 중도-개혁 성향 유권자들이 고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로하니 2기 정부 즉 지난 4년간 이란의 경제 상황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특히 2018년 미국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핵합의 철회(decertification)의 여파가 컸다. 미국의 핵합의 철회는 곧바로 제재 복원(snap-back)으로 이어졌고, 대부분의 석유 수출 및 금융 결제가 중단되었다. 이란의 경제는 다시 2015년 7월 핵합의 이전 제재 국면으로 돌아갔다. 저항경제의 재현이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체감 경제난은 핵합의 이전보다 훨씬 심각했다.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국가로 작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가 다시 옛 고립 국면으로 돌아갈 때 느끼는 박탈감이 컸다. 실제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주로 유럽 대기업들의 이란 투자가 활발했고 이란 국민들의 기대감은 높아졌다. 한국도 2000여 개 넘는 중소기업들이 이란에서 본격적 기업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란의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한국 정유 업계에 중요한 수입상품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제재 복원은 상황을 반전시켰고 한국을 비롯한 이란의 주교역 국가와의 경제 협력도 중단되었다. 여기에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이 겹쳤다. 이란의 방역 조치는 전염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중동에서 가장 심각한 확진율 및 치사율을 보이기도 했다. 국민들의 민심은 흉흉해졌으며 작년 국회의원 총선거에 이어 이번 대통령 선거를 맞게 되었다.
중도-개혁 성향의 유권자들은 도저히 강경 보수파 라이시 후보를 찍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중도파 대표를 자임하고 나온 헴마티 후보에게 표를 주기도 어려웠다. 헴마티의 지명도나 중량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중도-개혁 유권자들의 대거 투표 불참은 결국 선거의 본원적 의미, 즉 현 집권 세력에 대한 평가라는 점을 숙고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의 일방적 철회, 그리고 바이러스 확산이라는 일종의 불가항력적 조건을 고려한다고 해도 일단 국정의 무한 책임은 집권 행정부가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헴마티 후보는 선거기간 시종일관 라이시 후보의 신학 교육 배경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자신은 금융과 경제를 잘 알기에 경제난을 타개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다수의 유권자들은 투표 포기를 통한 선거 참여의 역설을 보여주었다.
4. 향후 미국의 이란 핵합의 복귀 논의 전망은?: 여전히 남아있는 가능성
숨 고르기를 하겠지만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라이시의 보수 성향 그리고 로하니 정부의 핵합의에 대한 불만을 가진 라이시 지지 유권자층의 배경을 고려하면, 미국의 핵합의 복귀 논의는 일단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일정 기간 냉각기를 가질 가능성도 보인다. 그러나 8월 라이시 행정부 출범 이전, 매듭을 지으려는 최고지도자의 의지가 작동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이유는 미국과의 합의가 불발로 귀결되고 경제 회복의 계기를 당분간 상실할 경우, 최고지도자의 지지를 받는 라이시 신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따라서 로하니 현 정부가 합의 관련 책임을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를 기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선거전에서 라이시 당선인은 대외정책에 관해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반부패 기조 및 경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부패 척결은 기존의 압박 노선을 유지하면 되지만, 경제 회복은 미국의 제재가 지속되는 한 쉬운 일이 아니다. &저항경제기조'를 내세워 중국, 러시아, 터키 등 일부 국가와의 제한 교역만으로는 이란의 경제 특성 및 규모상 정상화가 쉽지 않다. 이 점이 고민이다. 바이든 정부가 핵합의 복귀 원칙을 천명하고 협상에 나와 있는 상황을 활용하지 않을 경우, 자칫 합의의 판이 붕괴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라이시 신정부가 자존심은 세울 수는 있지만 국민에게 약속한 경제 회복의 기회는 상당 기간 상실된다. 그렇다면 체제 자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퇴진으로 미국을 계속 비난하며 저항경제를 유지하기엔 동력이 약하다. 로하니 행정부의 실정 비판은 8월 이후 과거 시제가 된다. 이후 모든 비판은 라이시 대통령에게 향한다.
그동안 최고지도자와 혁명수비대는 로하니 정부의 무능과 실정을 탓하며 상황을 관리했다. 그러나 신정부는 자기 책임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선거에 투표하지 않은 침묵하는 다수(전체 유권자의 3분의 2)는 언제든 정치적 압박의 주체로 나설 수 있다. 미국과의 협상 판을 깨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선거 직후이므로 미-이란 양측은 숨 고르기를 2-3주간 하며 일단 탐색기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중 미국의 대이란 메시지가 어떻게 전달되는지가 관건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 핵합의 복귀 기조에 원칙적으로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라이시가 강경 보수 성직자이긴 하지만 핵합의 관련 최종 결정권자는 하메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다. 그러나 미국 대외정책 시계열의 우선순위에는 조정이 올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대외정책 중에 최우선 과제를 이란 핵합의 복귀로 설정하고 협상에 임해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로하니 정부의 협상팀과의 게임에 아울러 이란 라이시 신정부의 대응도 파악하며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8월까지 별다른 합의점에 이르지 못한다면 호흡을 길게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 이란 신정부의 각료 구성, 특히 외교 부처 및 핵협상 대표 임명 동향에 따라 향후 시간 계획이 설정될 것이다. 따라서 이란 핵합의 이후 준비했던 대외 정책, 예를 들어 북핵문제 해법 등을 앞당겨 추진하며 이란 핵합의 논의와 병행할 가능성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 대외정책의 시간 계획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제기되는 이유다.
* 붙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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