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o:abstract |
1. 반(反)네타냐후 연립정부의 등장
2. 네타냐후 장기집권의 배경
3. 실각의 원인
4. 이스라엘 정국의 향방
5. 함의
1. 반(反)네타냐후 연립정부의 등장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가 퇴진할 예정이다. 지난 3월 23일 실시한 24대 의회(Knesset) 총선에서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Likud) 당은 120석 중 30석을 획득, 제1당을 차지했지만 연립 정부 구성에 실패했다. 대신 제2당(17석)인 중도정당 예쉬 아티드(Yesh Atid)의 야이르 라피드(Yair Lapid)와 제5당(7석) 극우 정당 야미나(Yamina)의 나프탈리 베네트(Naftali Bennett)가 반 네타냐후 연정에 합의하고 아랍-이슬람 정당의 만수르 압바스(Mansour Abbas) 등 기타 정당들이 여기에 합류했다.
의회의 정부 구성 신임투표(vote of confidence)가 합의대로 진행되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현재 네타냐후는 야미나 소속 보수파 의원들의 연정 불참을 사력을 다해 설득 중이다. 이미 한두 명이 연정 거부를 선언했다는 소식은 들리지만 돌발변수가 없는 한 반네타냐후 연정 출범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2009년 3월 31일 이스라엘 총리에 취임한 이후 12년 2개월여 연속된 네타냐후 집권 체제는 막을 내린다. 1996년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피살 후 총리 재임 3년을 포함, 물경 15년의 기간이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웠다.
2019년부터 네 차례에 걸친 총선을 치르는 등 이스라엘 정치는 혼돈 국면이었다. 독직과 부패 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네타냐후는 제2당 카홀라반(Kahol Lavan, 청백당)과 대연정 등의 포석을 두면서 집권을 이어왔다. 그러나 강경보수파의 핵심인물 베네트가 반네타냐후 진영에 합류하면서 결국 네타냐후의 재집권은 실패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라피드와 베네트의 2년 단위 총리직 교대 합의 이후 정국 예측이 불투명하다. 반네타냐후 연정에 아랍계 정당 라암(Ra'am, United Arab List) 합류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유대국가를 지향하는 이스라엘 역사상 소수 아랍계 정당이 정부 구성에 참여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2. 네타냐후 장기집권의 배경
두 번에 걸쳐 15년 이상 총리직에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네타냐후 개인사에서 연원하는 배경을 들 수 있다. 명문 가문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MIT를 졸업한 네타냐후는 모국어 수준의 영어와 국제 감각을 지녔다. 그의 형은 엔테베 작전에 투입되어 사망했고, 네타냐후 본인도 귀국 후 장교로 복무하며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에 참전했다. 국제적 리더십, 미국 내 주요 인사와의 네트워크, 참전 경험과 형의 죽음 등은 그의 정치적 자산을 구성했다.
두 번째는 그의 정치적 이념 및 역량이다. 네타냐후는 줄곧 아랍에 대한 강경노선을 견지해왔다.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국제사회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며 이스라엘의 대승적 양보를 통한 팔레스타인 독립 추진을 바랐지만 네타냐후는 완고했다. 원칙적으로는 두 국가 해법에 동의하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팔레스타인과의 최종지위 협상에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교착국면을 이어왔다. 같은 리쿠드당의 강경 보수파 총리였던 아리엘 샤론도 가자지구 정착촌을 철수했었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서안지구 정착촌 철수에 관한 국제사회의 압력에 맞섰다. 이스라엘 내 보수 진영의 대표적 인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선거를 치르면서 보수 진영을 규합하여 연정을 만들어내고, 필요시 반대진영과의 대연정도 결단하는 등 노련한 정치기술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구조적 요인은 이스라엘 정치의 보수화 경향성이다. 안보 상황 변화와 국제경제의 흐름 속에서 이스라엘의 유권자들은 보수 세력으로 조금씩 기울어왔다. 최근 20년간 총선 추세를 살펴보면 대략 보수화 경향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추세는 중도진보를 대표하는 노동당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보수진영의 대표정당 리쿠드도 샤론 총리 재임 시 굴곡이 있었으나 현재는 제1당으로서의 입지를 지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정치적 환경도 작용했다. 그의 집권 후 아랍 정치변동이 도미노처럼 일어났다. 접경 수교국인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가 하야하는 등 불안정 기조가 이어졌다. 시리아, 예멘, 리비아에서 내전에 준하는 갈등이 지속되었다. 역내 안보가 위기 국면으로 전개되면서 보수적인 정치지형이 형성되었고 이는 네타냐후 장기집권의 토양이 되었다. 특히 미국 오바마 정부 당시 이란과의 핵 합의(JCPoA)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이란의 위협을 부각시켰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후 트럼프 정부에서 네타냐후는 밀월관계에 준하는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 기조를 누릴 수 있었다. 그 절정은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그리고 아브라함 협정이었다.
3. 실각의 원인
네타냐후의 집권 연장 실패를 선거 패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은 23대 크네세트 선거에 비해 2021년 3월 24대 선거에서 7석을 잃긴 했다. 그러나 엄연한 제1당(30석)을 차지했다. 17석을 얻은 제2당 예쉬 아티드에 비해 13석을 더 얻었다. 2019년 4월 21대 선거 이후 리쿠드당의 득표 추이를 보면 대략 25-29%로 의석수 30-37석 범주에 있었다. 결국 네타냐후와 그의 정파를 지지하는 이스라엘 유권자들은 약간의 부침 정도가 있었지만 네타냐후를 비토한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이스라엘의 보수화 경향성을 본다면 보수진영의 몰락도 아니다. 실제 표심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번 실각의 원인은 이스라엘 정치권 내부, 특히 보수진영 역학관계의 동학과 이합집산의 결과로 읽을 수 있다.
개인사, 역량 및 이념에 있어서 필적할 인물 없는 보수파의 대표주자로 장기집권에 성공했지만 결국 개인의 부패와 독직 스캔들이 낙마의 주 명분이었다. 기소 논란이 벌어지면서부터 네타냐후의 무리수가 나타났다. 이에 저항하는 반대파 정치 세력들의 규합이 본격적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년간 네 차례의 선거를 거치면서도 효율적인 정부 구성을 못 해왔다. 일차적인 정치책임의 당사자인 네타냐후의 신상 변화 없이는 현 상황의 반복이 예상된다는 세간의 여론도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내 보수 진영의 균열도 작동했다. 특히 초정통파 유대 종교인들에 대한 불만 여론이 비등하면서 보수파 내부의 저항과 반발이 심해졌다. 특혜를 받는 종교인들의 군 복무 면제, 납세 면제 등의 처우 문제가 불거지고 이들과 사회 대중들과의 인식차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네타냐후의 지지층인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심각했다. 종교인 포용 논란과 맞물려 네타냐후 개인의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과 보수 인사들의 정치적 야심 등이 작동했다. 결국 베네트 및 아비그도르 리베르만(Avigdor Lieberman) 등 강경파 인사들이 일찍이 네타냐후와 결별했다. 이번 연정 구성 이후 리쿠드당과 함께 친네타냐후 진영에 남은 야당 세력은 초정통파 샤스당(9석), 연합토라유대주의 정당(UTJ, 7석) 그리고 극우 정당인 종교적 시온주의당(6석) 등 3개 정파에 불과하다. 이들은 모두 초정통파 유대교 성향에 가깝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정치권 내의 네타냐후 장기집권 피로감과 그의 부패 스캔들이 겹쳤고, 종교인들 예우 문제 등이 겹치면서 실각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현 연정 구도는 보수-진보의 분기가 아니라 네타냐후에 관한 반대 구도다. 연정 세력은 극우부터 아랍계 인사까지 정치이념을 망라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초정통파 유대교에 대한 반대의 구도로 볼 수도 있다.
4. 이스라엘 정국의 향방
전반기 2년은 베네트가 총리를, 라피드가 외무장관을 맡기로 합의했다. 하반기 2년은 역할을 교대하게 된다. 문제는 두 사람이 정치적으로 상당히 상이한 입장이라는 점이다. 물론 연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스라엘 정치 전통상 1당과 2당 간 대연정도 가능하다. 이번 연정이 생소하지는 않다. 그러나 워낙 스펙트럼이 넓은 정파들이 오직 반네타냐후를 명분으로 한 데 모였다. 불안정성이 높다. 특히 베네트가 총리를 맡게 되는 전반기 2년이 관건이다.
네타냐후의 비서실장 출신인 베네트의 정치 성향은 네타냐후보다 더욱 강경하다. 이스라엘 정체성 문제에 관하여 타협 불가 입장을 줄곧 견지해왔다. 2012년 리쿠드를 탈당, 시오니스트 정당인 베이트 예후디를 창당하며 정치적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표출했다.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서안지구 60%에 해당하는 Area C를 합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특히 이팔 문제에 관하여 매우 강경하다. 당연히 정착촌 동결을 반대해왔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이팔 평화협상 중재가 본격화될 경우 워싱턴과 예루살렘 간 갈등 기류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전반기 외무장관을 맡는 라피드의 정부 내 지분이 제일 크고, 연정 내 제2세력인 카홀라반의 베니 간츠 국방장관 역시 중도보수 성향이기 때문에 베네트 총리가 완고한 강경 정책을 펴기에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 베네트의 야미나와 동일한 의석수를 가진 중도좌파 노동당이 내각에서 일정 부분 목소리를 낼 경우 총리는 운신의 폭이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베네트가 강경한 이념형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정 8개 정파 중 6개 정파가 중도 또는 좌파 심지어 아랍계 정당이므로 향후 보수파의 연정 이탈 내지 분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관건은 네타냐후의 정치적 입지다. 부패 혐의가 어떻게 법적 판단을 받느냐가 변수다. 그리고 연정 내 보수파 특히 베네트가 이끄는 야미나 소속 의원들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정부 참여가 불편하고 어색한 인사들에 대한 보수진영의 공격과 회유도 변수다. 네타냐후는 베네트의 이번 반네타냐후 연정 가담을 ‘세기의 사기(fraud of the century)’ 라 맹비난하고 있다. 연정에 가담한 보수파 의원들의 거부권 행사를 설득 중이다.
여전히 네타냐후를 지지하는 25%의 유권자들은 상수로 존재한다. 24대 크네세트 선거 결과에 의하면 현재 이스라엘 유권자의 전반적 정치지형은 보수파가 약간 우세한 것으로 평가된다. (보수정당군 54%, 중도진보정당군 46% 획득) 만일 네타냐후가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경우 향후 운신의 폭을 넓히면서 재기를 추진할 것이다. 연정 해체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이스라엘의 현 보수진영에서 네타냐후의 뒤를 이을 대표 주자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네타냐후의 노련한 경험과 정치 감각은 그를 여전히 이스라엘 정치의 변수로 남아있게 할 것이다. 특히 이번에 출범할 연정이 갈등을 겪고, 내외 안보 환경이 위기로 치닫게 될 경우 네타냐후가 다시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향후 그의 정치적 귀환을 예견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한편 또 다른 관심사는 연정이 지속되어 라피드가 총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이다. 노동당의 몰락 이후, 그리고 라빈과 페레스의 타계 이후 사실상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중도파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베니 간츠 前 총참모장이 최근 야권을 이끌었지만 군 출신의 한계가 나타났다. 반면 라피드는 네타냐후 및 보수파 정치인과는 대조되는 이미지와 이력을 쌓아왔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법무장관을 지낸 부친과 소설가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뉴스 앵커로 활약했다. 중산층을 대변하며 세련된 이미지를 구축했다. 2013년 총선에 정치 신인으로 출마, 예쉬 아티드를 일약 원내 2당으로 만들어낸 이력도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서는 보수적이나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고 있어 베네트와 대조적이다. 2년 이내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 총리가 되지 못하더라도 향후 중도파를 대변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로서는 네타냐후의 부재 국면에서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날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5. 함의
미국의 JCPoA 복귀와 관련하여, 네타냐후 정부와 같은 조직적 강경 대응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란 대선이 임박했고, JCPoA 복귀 관련 결론이 조만간 도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이란 핵합의 반대자 역할이 약화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게 된다. 금번에 합의한 연정의 성격상 네타냐후 같은 대이란 강경 노선을 추진하기엔 정부 내 입장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팔 협상과 관련, 당분간 정부 내 조율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24대 크네세트 정부에는 아랍 정당 라암까지 합류했기 때문이다. 라암은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며,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네트 입장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처럼 이팔 문제는 연정 정파 내 시각이 다양하기에 예측이 어렵다. 연정 1당을 이끄는 라피드 외무장관 예정자가 베네트 총리 예정자의 강경 입장을 어떻게 받아내며 통합 행보를 가져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스라엘은 중동 내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중동 주요국가 대부분이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해 온 반면, 이스라엘은 정당정치가 활성화되어 있다. 선거를 통해 정권이 수시로 바뀌어 온 것이 관례다. 그러나 지난 12년 네타냐후 집권 기간 이스라엘 민주주의에 관한 심각한 도전이 나타났다. 최근 보듯 소수정당들의 이합집산으로 정치적 안정성이 자주 깨어지는 연정 구성의 비효율성과 관련된 논란이 있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유지할 것인지의 기로에 섰다는 점이다.
단순 다수의 투표 결과에 따라 정권이 교체되는 민주주의를 유지할 경우 현재 이스라엘의 보수파들이 합병을 주장하는 점령지역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향후 선거권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현 인구 구도로 보면 아랍인이 유대인을 곧 추월하여 이스라엘에 아랍 정권이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두 국가 해법은 민주주의와 유대국가(Jewish state) 정체성을 동시에 지키기 위한 라빈과 중도, 진보 세력의 결론이었다. 만일 팔레스타인 영토를 그대로 이스라엘이 점령하되 주민들에게 투표권은 주지 않고 현 이스라엘 국민들만 투표하게 한다면 유대국가는 유지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포기하는 셈이다. 국제사회는 이를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차별)로 비판한다.
네타냐후의 퇴진은 이스라엘 국가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다시 환기시킨다. 두 국가 해법이 다시 구체적 논의의 주제가 되고 최종지위 협상이 재개될 것인지 여부다. 그동안 네타냐후 정부는 두 국가 해법을 원칙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현상 유지 정책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새롭게 들어설 정부의 양대 지도자는 이 고민에서 각기 다른 지점에 서 있다. 베네트는 네타냐후보다 더 강경하다. 과연 그의 고집과 이념이 작동하며 기존 노선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라피드와 중도, 진보, 아랍의 연대가 힘을 발휘하여 이팔 협상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네타냐후의 부재가 일시적일지 영구적일지 가늠할 수 없지만, 이스라엘은 이팔 문제 관련 새로운 기로에 섰다.
* 붙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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