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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Ⅱ. 국제질서의 이론적 검토: 국제체제와 국내정치의 상호작용
Ⅲ.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질서와 국내정치
Ⅳ. 한국의 외교정책에 함의
<요약>
국제질서는 주권국가들의 상호작용에 적용되는 공유된(shared) 원칙과 제도의 조직이다. 현재의 국제질서는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패권국가로 등장한 미국이 주도적으로 수립한 것이다. 2017년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질서를 부정하였고, 2021년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귀환”(America is back)을 선언하여 미국의 패권질서를 재확인하였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반대이지만 미국이 국제질서를 취사선택의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패권적 국제질서를 블랙박스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패권국가가 국제질서에서 직면하는 문제가 무엇이며, 그것을 다루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패권적 국제질서를 패권국가의 외교정책에 관한 국내정치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패권국가는 일방적으로 국가 이익을 달성할 수 있는 국가 능력을 보유하므로, 국제질서 제공도 일방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패권국가에게 국제질서는 변경될 수 없는 목표적 국가 이익이 아니고 수단적 국가 이익이므로, 국내정치를 통해 선택된다. 둘째, 패권국가는 국제질서 유지를 위해 국내에서 재원을 동원해야 하므로 국내정치의 대상이 된다. 국제질서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국가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면 더욱 그렇다.
국제질서에 관한 패권국가의 국내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권력 분립, 선거제도, 그리고 정책 연합에 주목해야 한다. 정책결정에 대해 상호 거부권을 갖는 권력의 분립은 외교정책의 통제력에 영향을 주고, 패권국가 지위는 국제질서를 선거 이슈로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가 추구하는 정책은 그의 실행을 통해 정치지도자들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줄 사회세력의 지지, 즉 정책 연합(policy coalition)을 필요로 한다. 권력 분립, 선거제도 및 정책 연합은 별개이지만 실제에서는 구분선을 긋기 어려울 정도로 상호 연결되어 패권적 국제질서의 작동에 영향을 준다.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질서와 국내정치의 관계를 자유무역과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군사적 개입을 예로 설명할 수 있다. 미국이 자유무역을 국제질서에 포함시킨 것은 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의 일반 대중이 대공황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고립주의를 거부했고, 유럽 및 아시아와의 무역에서 흑자를 내던 산업계가 자유무역을 선호했고, 다수제 선거제도가 자유무역을 초당적 이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세계화로 제조업 기업들이 자유무역을 선호하고, 미숙련 생산직 중심의 보호주의 정책 연합이 해체되었다. 이것은 민주당 출신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을 유지한 것을 설명해준다. 이에 반해 2010년 말부터 미국 경제가 위기를 벗어나 자유무역을 지속할 여건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공화당 대통령 트럼프는 보호주의 정책 연합을 부활시켰다. 금융위기와 이민 증가 등 세계화의 부정적 효과로 경제적·존재적 차원에서 불안을 느낀 미국민들 사이에 민중주의와 민족주의가 확산되었지만, 그러한 불안이 정치제도를 통해 정책으로 전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교안보적 비개입주의에서 개입주의로 전환하였다. 미국의 개입주의로 전환은 패권국가 지위와 소련과의 냉전 때문이다. 미국은 소련을 안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겼고, 일반 대중과 정치 엘리트 모두 미국의 개입주의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 사상자 증가, 반전운동, 경기침체로 여론이 양분되고, 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미국은 비개입주의로 복귀하였다.
1990년대 초 냉전 종식으로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자 자유주의적 개입주의가 부활하였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확산시키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였다. 탈냉전기에 미국의 대표적인 개입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이다. 테러/안보가 미국 국내정치를 지배하였고, 외교안보 정책의 통제가 용이하였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에서 대규모 미군 사상자와 전쟁비용 발생에 따라 미국민들이 이라크 전쟁 지지를 철회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외교의 근간인 자유주의 패권질서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민주주의와 인권의 확산을 위한 개입을 축소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자유주의적 비개입은 패권의 상대적 약화,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개입을 반대하는 여론을 반영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가미국의 자유주의 패권질서의 지속가능성 실패했고,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경찰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을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에서 급격히 벗어나게 한 동인은 미국민들에게 혜택보다 비용을 더 많이 수반한 해외 개입에 대한 미국민들의 거부이다.
전후에 미국의 패권질서를 떠받친 국내정치 역학은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적용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질서를 복원하는 것은 국내적으로 지속가능해야 국제적으로도 지속가능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패권질서를 복원하는 데에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은 미국 국가 능력의 회복이다. 미국은 코로나19로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고, 미국의 최대 경쟁국인 중국과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어야 국민들에게 혜택이 분명하지 않을 수 있는 패권질서 유지를 설득할 수 있다. 둘째,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질서에 대한 국민적 지지이다. 미국민들은 무역과 동맹 문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분열적인 민족주의를 거부하더라도 미국 외교정책의 목적이 미국민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본다. 냉전, 9/11 테러와 같은 명백한 외부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민들이 희생하면서 세계에 관여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셋째, 2022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바이든 대통령은 유권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외교정책을 실시할 인센티브가 없다. 넷째, 의회의 양극화가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정책 주도권을 제한할 수 있다. 현재 의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외교 이슈는 중국에 대한 강경한 대응뿐이다. 마지막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영향력이 훨씬 더 성장해 있는 세계에서 미국의 패권질서를 다루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동안 발생한 미국의 지위 하락을 받아들인다면 미국의 패권질서를 국가 능력에 맞게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국내정치에 기반하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등장할 수 있는 국제질서의 모습은 첫째, 국가들 간에 공통 인식과 합의를 통해 미국의 패권질서를 조정하는 것이다. 둘째, 국제질서의 확연한 변환 없이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퇴보한 상태로, 관성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것은 글로벌 질서 대체의 어려움(비용 감당 의지와 능력), 핵무기가 국제질서 변환을 목표로 한 전쟁의 가능성이 낮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복수의 지역질서가 등장할 수도 있다. 국제질서에서 미국의 역할이 축소됨에 따라, 그리고 글로벌 차원의 질서가 작동하지 않게 됨에 따라 국가들이 대안적으로 경제적 상호보완성, 지리적 근접성, 문화적 유사성 등에 기반하여 블록화와 지역질서로 나아갈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 붙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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