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UAE 평화협정(아브라함 협정)의 함의 ( http://opendata.mofa.go.kr/mofapub/resource/Publication/13619 ) at Linked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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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UAE 평화협정(아브라함 협정)의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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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팔레스타인 대의(Palestine cause)의 약화와 걸프 아랍 국가들의 전략 변화
    2. ‘세기의 거래’를 통한 미국의 우회 승부수
    3. 달라지는 중동의 지정학
    4. 국제정치에의 함의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이 화제다. 미국의 중재로 곧 체결될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간 평화협정이다. 아랍과 네 차례의 전쟁을 치르며 갈등을 겪어 온 이스라엘은 적으로 둘러싸인 고도(孤島) 같았다. 1979년 이집트와, 1994년 요르단과 평화협정을 맺고 고립을 탈피하려 이스라엘은 안간힘을 써왔다. ‘아랍연맹’에 속한 22개 회원국 중 이제 세 번째로 UAE와 수교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집트 및 요르단과의 수교는 접경 국가와의 분쟁 방지가 목적이었다. 반면 UAE와의 수교는 달랐다.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이스라엘의 중동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양국 정부가 단순한 평화협정을 넘어서서 ‘완전한 관계 정상화(full normalization of relations)’ 추진을 선언한 배경이다. 이번 아브라함 협정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몇 가지 주요 함의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팔레스타인 대의(Palestine cause)의 약화와 걸프 아랍 국가들의 전략 변화
    
    안보 문제가 어떤 대의와 명분보다 앞서는 국가이익임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이래 팔레스타인은 아랍 국가들에게 아픈 가시였다. 팔레스타인을 회복해야 한다는 대의(cause)는 아랍 국제정치의 핵심 주제였다. 특히 걸프 산유 왕정국가들의 정치적, 물질적 지원은 컸다. 그러나 UAE는 이번에 팔레스타인 대의보다 안보를 택했다. 최대 위협인 이란의 위협에 맞서려면 세상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아랍 국가들의 지원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일종의 ‘팔레스타인 피로(Palestine fatigue)’였다. 개혁과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걸프 아랍 왕실의 젊은 지도자들은 선대 왕실과 입장이 다르다. 더 이상 발목 잡힐 수 없고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점차 힘을 얻었다. 시리아 내전과 예멘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의 처지가 팔레스타인 문제보다 훨씬 곤궁한 상황인 점도 한몫했다.
    
    돌발적인 정책 변화는 아니다. 9.11 이후부터 UAE는 이스라엘과 정보 협력을 유지해왔다는 후문이다. 특히 실질적 지도자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MBZ: Mohammed bin Zayed) 왕세제의 적극적 외교가 주목된다. 이란과 걸프 해역 3개 도서(島嶼)를 둘러싼 영토 분쟁을 겪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무슬림형제단 등 반(反)왕정 세력의 위협에 노출된 UAE로서는 정보 및 군사 강국인 이스라엘과의 협력이 필요했다. MBZ 왕세제는 왕실 앞 세대가 간직해 온 ‘팔레스타인 대의’보다 ‘국가 안보 이익’에 주목했다. 이번 협정은 일종의 금기를 해체한 것이다.
    
    더불어 UAE의 국가 성장 전략과도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과의 포괄적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 비전을 추진하려는 의지다. 최첨단 과학기술 분야 공동 연구개발은 물론 교역 활성화, 인적교류 확대와 관광산업 증진 등을 내걸었다. 단순히 이스라엘 한 국가와의 협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적성국인 이스라엘과의 ‘수교’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통해 국제사회에 UAE의 전략 변화를 발신한 셈이다. MBZ 왕세제의 통치력과 장악력으로부터 말미암은 자신감의 일환이다. 물론 파장은 만만찮다.
    
    
    2. ‘세기의 거래’를 통한 미국의 우회 승부수
    
    이번 협정을 중재한 미국의 셈법은 무엇이었을까? 미국은 오바마 정부 이후 중동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했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가져온 후과(後果)였다. 미국의 군사적, 정치적 개입으로는 중동의 정치 지형을 바꿀 수 없다는 성찰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다만 완전한 철수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중동지역에 ‘만연한 사회 분쟁(protracted social conflicts)’의 요소들을 방치할 경우 실패국가의 난립과 내전의 확산 그리고 테러리즘의 온상이 되기 쉽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목표는 ‘역외 균형과 선별적 개입’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 목표에 대해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가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전략은 판이했다. 오바마 정부는 중동지역 내 주요 국가들 간의 균형을 통해 안정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 이란, 이스라엘 및 터키 등이 비록 서로 사이가 좋지 않지만, 적대적이고 ‘위태로운 균형(precarious balance of power)’이라도 만들어내야 중동의 안정이 유지될 수 있다고 보았다. 친(親)이스라엘 기조에 변화를 주었고, 2015년 핵합의를 통해 이란을 정상화 궤도로 끌어오려 했던 이유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아랍과 이스라엘을 묶어 ‘이란 시아 벨트(Shiite belt)’를 압박하는 진영론을 구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바마 정부 때 상대적으로 소원했던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원에 나섰다. 주(駐)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비롯해 상징성 있는 조치들이 이어졌다. 한편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했다.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구상, 일명 ‘세기의 거래 (deal of the century)’를 통해 오랜 과제를 다루려 했다.
    
    세기의 거래가 추구하는 핵심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을 연대시켜 팔레스타인을 압박, 다시 협상의 물꼬를 트는 것이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연대를 위해서는 양자의 공공의 적, 이란의 위협에 대한 공동 안보 문제가 중요했고, 이번 아브라함 협정의 골간이 된다. 이전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하 ‘이·팔’) 협상은 ‘양자 간 합의 먼저, 이후 아랍권의 이스라엘 승인’이라는 소위 ‘인사이드-아웃’전략이었다. 반면  트럼프 정부의 구상은 ‘아랍권과 이스라엘 간 합의 먼저, 이후 팔레스타인 압박을 통한 양자 합의 추구’였다. 가히 ‘아웃사이드-인’전략이라 할만하다.
    
    UAE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는 첫 걸프 아랍 국가가 되는 셈이다. 현재 오만,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에 미국이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동 순방을 통해 정지 작업을 진행했으며, 그 이면에서는 재러드 쿠슈너 보좌관의 아랍 국가 설득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입장에서는 수니파 아랍과 이슬람의 맏형 노릇을 자처해 온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MBS: Mohammed bin Salman) 왕세자가 최종 목표일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MBS 사우디 왕세자를 마주 앉혀 평화협정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면 세기의 거래를 위한 필요조건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이·팔 평화 협상 중재까지 치고 나갈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매력적인 사안이다. 과거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과 이·팔 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당사자들이 모두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바 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로 아브라함 협정 1, 2, 3이 연쇄적으로 가능해진다면 당시의 파장과 비교할 수 없이 큰 성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첫 임기 중 외교정책에 관해 호의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던 트럼프 정부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이번 계기를 잘 살려보고 싶은 욕심이 들 만하다.
    
    
    3. 달라지는 중동의 지정학
    
    이번 평화협정은 중동의 지정학적 판세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까지는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시아 벨트’의 공세적인 태세가 눈에 띄었다. 미국 존재감의 약화와 더불어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보여주는 영향력이 확장되면서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트럼프 정부가 핵합의를 파기하고 이란에 대한 고강도의 제재를 다시 부과한 후 전반적인 상황은 악화되는 분위기였다.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남부 등 이란의 영향력이 작동하는 공간에서 이란의 대리자(proxy), 특히 헤즈볼라가 공세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이란을 비롯한 각국이 일단 자국 관리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잠시 소강 국면을 맞고 있던 차였다. 이번 아브라함 협정은 ‘시아 벨트’ 확장에 대응하며 세력권을 구성하던 소위 ‘수니의 호(弧)(Sunni's Arc)’를 강화시키는 구도가 될 만한 사안이다.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 초승달 벨트의 남진을 막기 위한 ‘사우디-쿠웨이트-바레인-UAE’ 등 수니 걸프 왕정의 연대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여기에 이스라엘이 UAE와의 평화협정으로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하게 되면 전반적인 군사 안보 지정학에 변화가 생기는 셈이다.
    
    이란과 적대관계인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사우디 등과 관계 개선 및 평화협정까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아라비아반도를 종횡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열리기 때문이다. 고립된 섬의 입장이었던 이스라엘의 안보 지형이 극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그림이다. 당연히 이란은 긴장할 수밖에 없고 호르무즈 해협을 비롯한 걸프 지역의 긴장도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향후 이번 평화협정 체결 및 연쇄 협정이 이루어질 경우 이란은 역내 대리자를 동원, 안보 상황을 재편하기 위한 무력 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지적인 저강도 분쟁이 만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스라엘의 자의적 무장 개입 가능성도 염두에 둔다면, 중동 현지 상황은 악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관건은 향후 미국이 이란을 어떻게 다루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4. 국제정치에의 함의
    
    이스라엘·UAE 간 평화협정 체결은 먼저 현실주의 국제정치가 다시 부각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동안 중동 지역 국제정치의 근간으로 여겨졌던 ‘정체성 정치’의 변곡점이 온 것이다. 이번 협정을 액면 그대로만 보면 ‘아랍 정체성’을 ‘종파 정체성’이 이긴 셈이다. 즉 언어·민족 정체성이 종교의 초월적 정체성으로 전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결국 역내 이슬람 혁명 세력인 이란이 부상하여 자국 왕실의 안보를 위협함에 따라 이에 대응하는 힘의 결집에 종파를 이용한 것에 다름 아니다. 즉 구성주의적 국제정치의 요소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실제는 힘의 문제, 즉 현실주의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대의 및 아랍 대의가 희석된 이번 협정을 통해 국제사회는 종파 결집의 이면에 있는 힘의 논리를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아브라함’이라는 BC 23세기 메소포타미아 족장 계보의 내러티브는 전형적인 구성주의적 요소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내세워 이란을 견제하는 현실주의의 아이러니가 드러나고 있다.
    
    둘째로, 걸프 왕정의 변화를 체감하게 했다. 걸프 국가들의 입장에서 ▲저유가 기조의 지속은 과거 영화로운 석유의 시대를 접고 불확실성의 시대를 앞당기는 촉매였다. 여기에 ▲‘아랍의 봄’ 이후의 역내 내전으로 인한 난민 위기의 확산, ▲코로나19로 인한 보건 위기, ▲이슬람국가(IS) 등 테러의 문제가 불거졌다. 더 이상 오일 달러의 힘으로 과거 관성에 의해 국가를 지탱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아랍 걸프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 사우디의 MBS 왕세자나 UAE의 MBZ 왕세제를 비롯한 카타르의 타밈 국왕 등의 고민은 같은 지점에 있다. 금기였던 이스라엘과 손을 잡더라도 미래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고민이 이번 협정의 이면에서 읽힌다. 이는 전반적인 중동 정치질서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역외 강국의 중동 개입 문제와 맞닿아 있다. 향후 걸프 왕정의 젊은 리더십이 취하는 국가 전략이 국제정치 질서에 선순환으로 작동할지 아니면 또 다른 위기 요소가 될지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다자 무대, 특히 정무적 사안을 다루는 국제기구에서의 행태 변화가 조심스럽게 전망된다. 그동안 유엔 안보리의 다수 사안은 중동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이 연대하여 팔레스타인 대의와 관련된 사안을 강력하게 제기해왔다. 당연히 이스라엘 비판과 관련된 쟁점이 적지 않았다. 미국은 안보리 사안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아브라함 협정이 걸프지역 및 여타 아랍 국가로까지 확장될 경우, 향후 이·팔 문제 및 중동 현안과 관련하여 다자 무대에서의 각국 행태나 입장에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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