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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TI 핵안보지수 보고서와 핵안보 추세
2. 북한의 핵물질과 핵안보지수 평가
3. 북한의 핵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 필요성
1. NTI 핵안보지수 보고서와 핵안보 추세
미국 워싱턴에 소재한 ‘핵위협구상(NTI: Nuclear Threat Initiative)’ 연구소가 2020년 7월 전 세계 핵물질 또는 핵시설 보유국의 핵안보(nuclear security) 실태를 평가한 ‘NTI 핵안보지수(Nuclear Security Index)’ 보고서(이하 “NTI 보고서”)를 발간했다. 세계적인 핵안보 전문 연구기관인 NTI는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개최했던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2012년부터 핵안보 보고서를 격년제로 발간하고 했다. 동 보고서는 국가별 핵안보 실태를 평가하는 가장 권위 있는 보고서로 자리잡았다. 참고로 ‘핵안보’란 악의를 가진 집단이나 개인이 핵물질 또는 핵시설을 탈취·파괴하여 핵무기 테러(핵테러), 방사능 테러[더티밤(dirty bomb) 테러], 핵시설 사보타주를 가하는 것을 탐지·예방·방지하는 일체의 조치를 말한다.
금년 NTI 보고서에는 “무질서한 세계에서 초점을 잃다(Losing Focus in a Disordered World)”라는 제목이 붙었다. 사실 ▲미국과 소련이 전 세계를 양분하여 자기 진영을 철저히 관리했던 냉전기와 ▲미국이 유일초강대국으로서 세계 질서를 관리했던 탈냉전기에 비하면, 오늘의 세계는 매우 혼란스럽다. 미국이 자유주의적 규범 기반의 국제 질서를 만들고 실행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역량과 의사도 없어 보인다. 미국이 포기한 세계적 지도자 역할을 담당할 나라는 보이지 않고, 앞으로 상당 기간 없을 전망이다.
2010년대 들어 중국의 부상이 가시화되자, 전문가들은 앞다투어 지정학과 역사의 귀환을 예고했다. 강대국 세력 정치가 격화되면, 국가들은 더 이상 핵군축과 핵비확산의 국제규범에 구속당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핵강대국들은 이미 핵무기 현대화와 증강을 추진하며 핵경쟁에 돌입했다. 비핵국도 악화되는 안보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핵무장 또는 핵잠재력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들의 핵활동이 증가하게 되면, 각종 핵물질과 핵시설을 둘러싼 핵안보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도 증가하게 된다.
한편, 지난 10년간 과격 테러 집단의 지도자들이 대거 제거되었고, 2017년 이슬람국가(IS)가 완전히 패퇴된 것은 핵테러 방지, 즉 핵안보 차원에서 큰 진전이었다. 이로써 대형 핵테러의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 2001년 뉴욕 테러 사건을 일으킨 테러범들이 핵무기를 이용한 핵테러를 모색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는 처음으로 비국가 행위자들의 핵무기 획득을 차단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대한 국제규범을 만들기 위해 유엔 안보리는 2004년에 안보리 결의 1540호를 채택했고, 미국은 2010년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했었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화의 부작용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엄청난 사회·경제적 혼란은 핵안보의 취약성을 새로이 부각시켰다. 현재 많은 국가가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심화, 정치적 양극화,이민 갈등, 인종 갈등 등으로 몸살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경제 위기, 대량실업, 사회 소요 등은 이런 추세를 더욱 악화시켰다. 국내적으로 사회·경제적 불만이 누적되면서, 개인과 집단의 과격화 현상이 발생했다. 이때 사회·경제적 불만분자가 일상적인 일탈 행위를 넘어, 핵물질을 이용한 테러, 핵시설에 대한 사보타주에 나설 위험성이 있다. 자신들이 일하는 핵시설에 위해를 가하는 ‘내부자 위협(insider threats)’ 가능성도 커진다. 비록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하더라고, 핵안보 침해의 결과가 너무 위중하므로 우리는 이에 충분한 대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 인공지능·로봇·드론·사이버공격 등 신기술을 이용한 신종 핵테러도 기존 핵안보 체제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워 새로운 대응 체제가 필요한 부분이다.
2010년대 핵안보정상회의 동안 일시적으로 핵안보 강화에 진전이 있었다. IS와 테러 지도자들의 제거도 핵안보를 예방하는 효과가 컸다. 그런데 근래 들어 ▲미·중 전략 경쟁, ▲핵강대국의 핵경쟁, ▲규범 기반 국제질서의 약화, ▲지역 강국의 핵개발 관심, ▲세계화의 부작용,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경제 위기, ▲신기술 등장 등으로 인해 핵안보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이런 핵안보 환경의 악화를 감안할 때, 이번 NTI 보고서는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2. 북한의 핵물질과 핵안보지수 평가
2020년 NTI 보고서는 핵물질 또는 핵시설을 보유하여 핵안보 리스크가 있는 국가들을 3개의 범주로 나눈 뒤 각각 지표별 점수를 부과하고, 순위를 매겼다.
첫 번째 범주는 고농축우라늄(HEU) 또는 플루토늄(Pu)과 같은 무기용 핵물질(핵분열물질)을 1㎏ 이상 보유한 22개의 고위험 국가들을 포함한다. 이들은 핵무기 또는 간이핵폭발장치(IND: Improvised Nuclear device)를 이용해 핵테러를 기획하는 테러 집단의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 22개 고위험 국가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상 핵보유국 5개국, ▲NPT 밖의 핵무장국 4개국(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북한), ▲기타 핵분열물질 보유국 13개국[호주, 캐나다, 이란,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벨기에, 이탈리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이다.
두 번째 범주는 핵분열물질을 1㎏ 미만 보유 또는 전혀 보유하지 않은 저위험 국가군인데, 153개국과 타이완(臺灣)이 포함된다. 이들의 경우 핵테러를 추진하는 그룹의 직접적인 타깃이 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이들 국가도 각종 방사성물질을 보유하여, ‘방사능 살포 장치(RDD: Radiological Dispersal Device)’, 일명 ‘더티밤’을 이용해 ‘방사능 테러’를 가하려는 집단들의 타깃이 된다. 한국도 이 그룹에 속한다.
세 번째 범주는 원자력발전소 또는 연구용 원자로와 같은 대형 원자력 시설을 가진 46개국과 타이완이 해당한다. 이들 국가에는 첫 번째 범주에서 이탈리아와 벨라루스를 제외한 20개국과 한국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원자력 시설에 대한 사보타주 위험성이 있어 이를 탐지·방지하기 위한 핵안보 조치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무기용 핵물질을 대량 보유하여 첫 번째 범주(22개국)에 속하게 된 북한은 핵안보지수의 전반적인 평가에서 19점(100점 만점)을 받아, 최하위인 22위가 되었다. 하위 등수 국가로 중국, 이스라엘, 러시아, 남아공, 파키스탄, 인도, 이란 등이 있는데, 북한은 21위인 이란(33점)과도 점수 차가 크다. 세부 평가 항목 중에서 북한은 특히 ▲국제규범 참여 및 준수와 ▲국내적 핵안보 이행 공약과 역량 부문에서 0점을 받았다. 이는 북한이 핵안보 국제규범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어떤 핵안보 조치도 이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외의 평가 항목인 ▲핵물질 양과 보관 장소수, ▲보안과 통제 조치, ▲리스크 환경 부문에서는 각각 33점, 27점, 34점의 낮은 점수를 받았다.
세 번째 범주의 원자력 시설 사보타주에 대한 핵안보지수의 전반적인 평가에서도 북한은 17점을 받아 최하위인 47위가 되었다. 여기서도 북한은 ▲국제규범 참여 및 준수와 ▲국내적 핵안보 이행 공약 및 역량부문에서 0점을 받았다. 그리고 ▲시설 수에서는 80점, ▲보안 및 통제 조치와 ▲리스크 환경 부문에서는 각각 23점과 34점의 낮은 점수를 받았다. 참고로 한국은 전반적인 평가에서 77점으로 18위에 랭크되었다.
그렇다면 실제 북한에는 어떤 핵안보 위험이 있나? 상상할 수 있는 최대 핵안보 위험은 보유한 무기용 핵물질이 탈취 또는 도난당하거나 불법 거래되어 테러 집단의 손에 들어가, 핵테러에 이용되는 경우이다. 종종 북한에는 강력한 내부통제가 있어 핵물질의 해외 유출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북한 사회에도 절도, 사보타주와 같은 각종 일탈 행위가 비일비재하고, 지배층을 중심으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다.
그리고 북·중 국경에서는 밀수와 불법 월경이 수시로 발생한다. 북한 외교관은 외화벌이를 위해 온갖 탈법·불법 거래에 가담한다는 말이 있다. 심지어 북한 정부가 극심한 외화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핵물질과 핵기술의 해외 판매를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만일에 발생할지 모르는 핵물질과 핵기술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북한의 핵안보 실태에 주목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대체 북한은 무기용 핵물질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 사실 어느 누구도 북한이 현재 핵(분열)물질 제조 시설을 몇 개나 갖고 있는지, 얼마나 생산하는지, 재고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북한이 1990년대부터 자신의 핵역량에 대한 공개와 외부 접근을 완전히 차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연구기관들은 다양한 정보원과 계산법을 이용하여 북한이 얼마나 핵물질을 보유했는지에 대한 추정치를 발표하고 있다.
우선 ▲『2018 국방백서』(2019.1 발간)는 북한이 무기용 플루토늄 50여 ㎏과 고농축우라늄 상당량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했다. 참고로, 핵탄두 1개를 만들기 위해 플루토늄 4~8㎏ 또는 고농축우라늄 25㎏이 필요하다. 또한 ▲핵분열물질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 그룹으로 알려진 ‘핵분열물질 국제패널(International Panel on Fissile Materials)’은 북한이 핵탄두를 최대 60개를 제조할 수 있는 핵분열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다. 세분하면, 영변 5㎿ 흑연감속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여 플루토늄 40㎏을 추출했고(2016년 기준), 영변 및 미공개 농축시설을 통해 약 180~850㎏의 고농축우라늄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했던 지그프리드 해커 스탠포드대 교수는 북한이 2017년 말까지 30개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핵분열 물질을 보유했었고, 매년 6개 분량의 핵물질을 추가로 생산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정보국(DIA)은 북한이 2019년까지 65개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무기용 핵물질을 확보했고, 매년 최대 12개 분량의 무기용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요약하면, 북한은 이미 수십 개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고, 더욱이 매년 5개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추가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렇게 많은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핵안보 차원에서 거대한 위협요인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북한은 일체의 핵안보 국제 레짐에 불참하여, 외부의 어떤 핵안보 감시와 평가에서도 벗어났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3. 북한의 핵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 필요성
북핵 문제가 발생한 후 30년 동안 우리와 국제사회의 관심은 오로지 북한의 핵능력을 어떻게 제거하느냐는 ‘비핵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물론 북한의 핵능력을 제거하는 비핵화가 최고의 외교·안보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의 핵물질 생산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핵물질이 유출되어 핵테러나 방사능 테러에 이용되거나 ▲북한 내 핵시설이 사보타주 당하는 핵 안보 위험도 급증했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 노력과 더불어 북한의 핵안보 위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북한 핵안보 문제를 제기하면 종종 아래와 같은 현실적인 반론에 부닥치게 된다.
첫째, 북한의 핵능력은 불법적이고 조속한 비핵화의 대상인데, 핵안보를 제기하면 북한의 핵능력을 사실상 인정하는 효과가 있다. 둘째, 북핵 외교는 북한 비핵화에 집중해야 하는데, 핵안보를 제기하게 되면 북핵 외교가 초점을 잃게 된다. 셋째, 비핵화를 통해 핵 폐기가 달성되면, 핵안보 문제가 저절로 소멸되므로 핵안보 문제를 별도로 제기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넷째, 북한이 북핵 대화를 일체 거부하고 있어, 핵안보 대화는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
지금의 북핵 현실을 보면, 가까운 미래에 북핵이 완전히 폐기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현재 북한의 핵무장이 상당히 진전된 단계에서 비핵화 협상과 조치는 크게 지체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우리는 북핵을 제거하기 위한 비핵화 외교에 더욱 집중하는 한편, 두 개의 추가적인 대응 조치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실체적인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적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발 핵안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북한발 핵안보 위협을 감소시키거나 제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 한국, 미국 또는 국제사회가 북한과 핵안보 대화를 시작한다. 북한이 핵안보 대화를 쉽게 나서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절대 거부할 것이라고 미리 속단할 필요는 없다. 사실 북한 정부도 평소 핵테러를 부정 및 비난하고 있는 데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요 자산인 핵물질과 핵시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의 핵안보 국제 레짐 참여를 유도한다. 주요 핵안보 국제 레짐에는 ▲핵물질의 물리적 방호 협약(CPPNM: Covention on Physical Protection of Nuclear Material), ▲핵테러 억제 협약(ICSANT: International Convention on Suppression of Acts of Nuclear Terrorism),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보 지침 등이 있다. 북한이 이에 참가한다면 북한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의 핵안보 체제 강화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정부 간 핵안보 대화가 어렵다면, 환경 조성 차원에서 전문가 그룹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평소 북한과 대화하는 미국 및 유럽 소재 연구기관이나 전문가 그룹들이 나서서 기존 핵대화에 핵안보 요소를 추가하는 방법도 있다. 평소 북한과의 대화에 긍정적인 ‘핵위협구상(NTI)’이 나서는 방법도 있는데, 북한은 이에 호응할 가능성이 있다.
넷째, 북한 핵물질의 불법 거래 또는 해외 유출을 탐지하고 차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는 세계핵테러방지구상(GICNT: Global Initiative of Counter Nuclear Terrorism)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참여국들과 협력하여 정보교류 및 차단 활동에 적극 참여토록 한다.
마지막으로, 국내 차원에서 북한과 핵안보 대화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종래의 “선 핵폐기, 후핵안보”는 비현실적이며, 현존하는 핵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어렵다. 과거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1994)와 9.19 6자 공동성명(2005) 체제에서도 북한의 핵동결을 위해 기술적·물질적 지원을 제공한 전례가 있는데, 이것도 핵안보 활동에 해당된다. 북한이 이미 핵물질을 대량으로 보유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핵물질 방호를 위한 핵안보 대화를 마냥 미루기도 어렵다. 따라서 비핵화 협상에서 핵안보 대화를 병행하거나, 필요하다면 핵안보 대화를 선행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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