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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Ⅱ. 한국과 일본의 정책 대응
Ⅲ.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 이후 양국 간 상호 작용
Ⅳ. 한국의 탈일본화 유형과 특징
Ⅴ. 한·일 상호의존성의 장기 추이와 대한 수출규제
Ⅵ. 결론
<요약>
2019년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강화로 양국 경제 관계는 급속히 냉각기로 접어들었다. 2020년 7월 4일은 일본이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일본 정부는 부인하나, 이것이 다분히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관련 판결의 이행에 영향을 미치기 위함이었다는 점은 이미 여러 곳에서 지적한 바이다.
지난 1년간 양국은 대립과 대화의 강온 국면을 진자추의 움직임처럼 오갔다.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 ‘의도’는 헨리 파렐(Henry Farrell)과 아브라함 뉴먼(Newman)(2019)이 제시한 ‘상호의존성의 무기화(weaponized interdependence)’ 개념에 투사해 보면 이해가 쉽다. 한편 일본이 ‘의도치못한’ 한국의 대응 전략은 ‘탈동조화(decoupling)’로 파악 가능하다. 필자는 이렇듯 지난 1년간의 한·일 무역분쟁을 일본의 ‘상호의존성의 무기화’와 한국의 ‘탈일본화’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한다. 이 글의 문제의식은, 과연 상호의존성이 무기화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글은 Ⅱ장에서 먼저 양국의 정책적 상호 작용을 살핀다. 일본 정부의 3개 품목 수출규제 강화의 법적 기반인 수출령 개정이 자의적 운영의 여지를 지닌 것임을 밝히는 한편, 한국의 맞대응 전략격인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경쟁력 강화 정책’을 살핀다. Ⅲ장에서는 수출규제 시행 이후 양국의 상호작용을 복기한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를 강력히 운영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도 일본 측의 수출통제 제도 개선 요구를 수용하는 동시에, 탈일본화 정책 추진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점차 형해화된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WTO 제소를 재개한 이면에 양국 간 상호의존성이 엄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Ⅳ장에서는 한국의 탈일본화 현황을 재구성하여 ‘탈일본화’가 곧 ‘탈일본기업화’와 등치되지 않는다는 주목할 만한 특성을 밝히고, 이 또한 양국 간 긴밀한 상호의존성에 기인함을 포착한다. Ⅴ장에서는 과거 20년간 하락 추세를 보인 양국 간 상호의존도가 지난 1년의 무역분쟁과 코로나19 발발로 더욱 약화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미시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양국 간 상호의존성이 강고하다.
일본의 수출규제에서 촉발된 한국의 탈일본화는 생산거점 측면에서 수입선 다각화보다 국내생산이 주를 이루며, 후자는 생산주체 면에서 국내 기업의 국산화와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가 주를 이룬다. 제3국 소재 일본 기업으로의 수입 다각화나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 방식은 ‘탈일본화≠탈일본기업화’라는 흥미로운 특징을 드러내는데, 그 이유는 양국 기업이 장기간 구축해 온 고효율의 분업구조에 익숙해 있기 때문으로 유추된다. 이렇듯 한국의 탈일본화가 단기간 내에 예상외 성과를 거둔 이면에는 일본 기업의 존재가 숨어 있다. 3대 품목의 주요 일본 공급사는 기존에 ‘고기술 제품: 일본 생산·수출’, ‘중기술 제품: 현지 생산’이라는 기술 수준별 차등화 전략을 구사했으나, 수출규제 이후 상황 변화에 따라 전자도 현지 생산으로 전환한 점이 주목된다.
필자는 제3국의 일본 기업을 활용한 ‘탈일본화’가 온전한 기술 국산화가 아니라는 점을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제품의 수명 주기는 갈수록 빨라지고 단기간 내 독자기술 개발이 힘들거나 과도한 비용이 소요될 경우, 급변하는 환경 하에서 한국 기업이 소부장 정책 추진 시 장기 거래 관계의 일본 기업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은 경제적 합리성을 지닌 현실적인 선택지라 하겠다. 이 방식은 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이 합작 파트너인 일본기업으로부터의 기술전파(spillover)도 기대할 수 있다.
일본 기업이 배제되는 ‘탈일본화=탈일본기업화’의 유형은 일본 입장에서 뼈아픈 부분이 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의 공고한 과점적 지위에 균열을 내 제3국 기업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듀폰의 대응 전략이다. 거대 미국 기업 듀폰이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에 공조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자사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진입할 호기로 삼았다는 점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확인하는 동시에 간접적으로 미국 정부가 한국을 전략물자 관리 부실국으로 간주한 일본 입장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점을 반증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어느 방식이든 한국의 ‘탈일본화’가 확산된다면, 이는 일본 산업의 공동화를 초래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현재의 탈일본화는 주로 반도체 산업에 국한되어 있으나, 향후 이 부분이 타 분야로 어느 정도 확산될지 예의주시하게 된다. 여기에는 한·일 관계뿐 아니라 코로나19 이후의 국제무역질서 전환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상호의존성의 무기화’를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은 상호의존성의 무기화가 양날의 칼이 되어 자국 기업에 부메랑으로 돌아오자 수출규제의 수위와 완급을 조절하였고, 자국 기업의 우회 수출은 물론 한국 내 투자도 막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한국이 3개 품목의 수출규제 법적 기반인 일본의 수출령 개정, 즉 ‘화이트국가’에서 배제된 영향을 거의 실감하지 못한 이유다.
이는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가 불가피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된다. 일본 기업이 수출규제로 인해 예정에 없던 추가 비용을 치르고 있음에도 그 출발점이 된 강제동원 문제는 별 진전이 없다. 단, 강제동원 문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여전히 수출규제를 원상 복귀하지 않은 상태로, 한국의 대일 의존도가 절대적인 품목의 경우에는 일본이 일방적인 의존성을 무기화할 수 있다. 한국 측이 초반에 수출규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여 과민 반응한 측면도 있겠으나, 일본의 수출규제 수위 조절은 역설적으로 이 제도의 자의적 운영 여지를 확인시켰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의도치 않게 한국의 20년 숙원사업이던 소부장 정책의 재기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위장된 축복’이 되었다. 더욱이 소부장정책은 코로나19에 대비한 국내 제조업 경쟁력 강화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측이 ‘위장된 축복’을 안긴 일본을 다시금 WTO에 제소한 것은 한국도 나름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그 비용이란 수입단가와 운송비용의 상승, 수시로 수출 승인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 등을 꼽을 수 있으나 가장 큰 것은 불확실성이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인하여 전반적인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핵심 소재의 대일 수입의 불확실성이라도 낮춰 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국내 수요기업차원에서는 설령 수입대체가 소기의 성과를 내더라도 위험분산 차원에서 대일 수입의 안정성 제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단, 대부분 중소기업인 국내 소부장 생산업체는 대일 수출규제의 온전한 철회가 정부나 수요 기업의 소부장 육성 의지를 약화시키지 않을까 우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기우라 하겠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세계는 ‘국가의 부활’이라는 뚜렷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이는 곧 산업정책의 부활도 의미한다.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의료제품을 위시하여 핵심 제조업의 국내 생산기반 강화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소부장 정책 플랫폼은 흥미롭게도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파일럿 프로젝트이자 예행연습이 된 셈이다. 이제 소부장 정책은 대일정책을 넘어서는 종합적인 경쟁력 강화정책이 되었다. 정부는 장기적인 시야에서 일관되게 강력한 소부장 육성 의지를 확고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결과론적인 해석이나, 한국이 일본의 요구에 부응해 국내의 수출통제 관련 법 개정과 조직 보강에 나서게 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미·중 기술 갈등이 첨예화되고 점차 기술과 안보의 연계가 심화되는 오늘날,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감안할 때 관련 제도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고 실행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상호의존성의 무기화’와 ‘탈일본화’의 맞대결은 단기적으로는 후자의 판정승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 또한 불확실성의 엄존과 추가 비용 발생을 고려할 때 승자로 보기 어렵다. 굳이 승자를 꼽자면 양국 간의 공고한 상호의존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무기화할 수 있는 것은 상호의존성이 아니라 일방적인 의존성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우리는 양자를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 또한 상호의존성의 과도한 탈동조화도 한계가 명백함을 확인했다. 한·일 관계 악화가 장기화되어 양국 관계의 불확실성이 사라지지 않을 경우 한국 기업의 ‘탈일본화’, 나아가 양국 기업의 ‘탈한국화’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양국 간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약화는 그나마 역사·외교 갈등의 돌이킬 수 없는 폭발을 지금까지 제어해왔던 안전장치를 빼내는 것이 될 수 있어 더욱 우려된다. 따라서 일본은 수출규제를 철회하고 한국은 WTO 제소를 취하하여 정경분리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원칙이 자칫 진부해보일지 모르나, 지난 1년간 ‘상호의존성의 무기화’와 ‘탈일본화’의 맞대결에서 값비싼 비용을 치르며 양국 간 상호의존성의 공고함을 학습한 우리는 그 유효성을 다시금 확인한 것이라 하겠다. 코로나19로 인해 미·중 갈등이 날로 첨예화되고, 각국 정부가 자국 제조업 육성에 사활을 걸며 산업정책의 부활을 알리고 있는 이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 공유국이자 제조업 강국인 양국에 필요한 것은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협력과 대화다.
지난 1년간의 한·일 갈등 사례는 헨리 파렐과 아브라함 뉴먼(2019)이 제시한 ‘상호의존성의 무기화’를 한·일 관계에는 적용시키기 힘들다는 유용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는 정치 논리로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하려는 나라에 분명 경종을 울린다. 코로나19 이후 국제경제 질서는 효율성 일변도에서 강건성과 회복력도 부각됨에 따라 상호의존성에 균열이 일어나는 듯하나, 이 글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는 상호의존성의 해체가 아닌 재편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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