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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의 ‘이중 교리’와 미국의 세 가지 대응
2. 북한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과시 대응
3. 평가 및 전망
큰 틀에서 볼 때, 북한이라는 나라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구석에 몰리는 일을 극단적으로 경계한다는 점이다. 지향점이 명확해 보이는 선택을 하면서도 동시에 끊임없이 플랜B, 플랜C를 염두에 두는 대외정책 결정 패턴은 대부분 이러한 특성에서 비롯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러 갈래의 길이 여전히 가능한 선택이야말로 평양이 가장 선호하는 바다. 하나의 결정으로 두 가지 이상의 목표, 특히나 완전히 상반된 목표를 모두 만족시키는 카드가 있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5월 4일 시작되어 9월 10일까지 이어진 일련의 신형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 발사 시험은 그 극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간 이들 테스트에 얽힌 평양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국내외에서 다양한 분석이 이어져 왔고, 대부분 상당한 설득력과 타당성을 갖고 있다.
북측 관영 언론이 공언한 바와 같이 평양이 이들 시험을 통해 한·미 연합훈련과 F-35 도입 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판문점 회동 이후에도 여전히 원칙적 태도를 견지해온 미국 측을 자극하는 한편, 협상의 틀을 깨지 않는 수위의 행동을 과시 차원에서 반복해왔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 국내 정치적으로도 다양한 의도가 얽혀있다는 징후가 확인된다. 각각의 발사 시험 직후마다 ‘불세출의 업적’을 강조한 <노동신문>의 편집 스타일은 올 한해 경제와 외교에서 모두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치적 위상을 유지 혹은 강화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주요 시험을 참관 혹은 영접했던 박정천 포병국장의 인민군 총참모장 승진은 ▲재래식 전력을 담당해온 이들을 달래려는 목적과 함께 ▲핵 포기를 선택하는 경우에도 재래식 전력 강화를 통해 안보 불안을 일부나마 상쇄할 수 있다는 대내 메시지를 확산시키려는 계산을 시사한다. 최소한 일련의 시험발사를 통해 평양이 ‘이러한 의도를 가진 것으로 비치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 글은 또 다른 각도의 분석, 즉 외교 협상이나 국내 정치가 아니라 순수한 군사적 관점에서의 접근을 다룬다.
달리 말해 애초에 단거리 미사일 및 방사포 발사 훈련을 기획했을 북한의 군사 전략 및 교리 담당자들이 새 무기체계 시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추론이다. 혹은 이들이 군사 교리의 관점에서 이들 체계의 용도를 어떻게 계산하고 있을지에 대한 추론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관점이 앞서 설명한 다른 관점의 분석을 반박하거나 틀렸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협상 차원의 이유와 국내 정치적 동기에 더해, 이제부터 설명하고자 하는 군사적 동기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연쇄 시험이라는 정책 결정이 이뤄졌다고 보는 게 보다 설득력 있을 것이다.
1. 북한의 ‘이중 교리’와 미국의 세 가지 대응
잠시 시계를 돌려 2016~17년 이른바 ‘전략 미사일’ 발사 시험 시기로 돌아가 보자. 당시 주요 훈련에 대해 북측 전략군사령부가 남긴 설명과 개념도는 북한군이 주요 미사일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이를 활용할 고유의 핵 교리를 함께 발전시키고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전장 환경을 역이용하면 미국에 비해 극히 적은 수의 핵무기와 미사일만으로도 유사시 정권의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북한 측이 시사해온 핵 사용 전략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 ‘이중 교리(twofold doctrine)’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남측과 주일 미군, 괌 등의 주요 군사 항만·비행장에 제한적 핵 타격을 위협함으로써 유사시 미군의 전시 증원을 저지하는 방식으로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최소화하는 한편, ▲이러한 제한적 핵 사용 위협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로 미 본토 핵 타격을 위협함으로써, 자신들이 먼저 전술핵 등을 역내 군사적 목표에 대해 투사한 이후에도 미국이 전략핵 보복에 나서지 못하도록 저지한다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기억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이중 교리가 개념적으로나마 가능했던 근거 중 하나가 그간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의 미측 전술핵 능력이 상대적으로 제한돼 있었다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북측이 남측 혹은 일본 영토 내의 군사 시설을 상대로 소규모 핵 사용을 감행할 경우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미측 핵 카드로는 ICBM 혹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을 활용한 전략핵 대량 보복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국제법 규범의 ‘비례성(proportionality)원칙’을 감안하면 이는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미국 내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더욱이 오바마 행정부가 핵무기의 군사적 용도를 제한하는 정책 방향을 명확히 한 이래, 앞서 가정한 북측의 제한적 핵 사용 이후에도 미국의 대응은 정밀 타격 능력을 활용한 재래식 공격으로 제한될 개연성이 증가해온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2016년 이후로 평양의 핵 교리 계산은 ‘미 본토 핵 타격’만을 반복해 위협적 태도를 과시하는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실전 전력(war-fighting capability)’으로서의 핵을 고민하며 어떻게든 군사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탐색해가는 작업으로 진화해왔다.
반면 북측의 교리가 정교해지는 만큼 미국 역시 다음 단계의 군사적 대응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7년 하반기부터 미측이 공식화한 일련의 핵 정책은 북측의 이러한 ‘실전 전력으로서의 핵 사용’ 개연성을 원천적으로 최소화하는 데 상당한 무게 중심을 실었다. 요컨대 워싱턴은 ▲평양에 상호확증파괴(MAD:Mutual Assured Destruction) 같은 핵 억제 상황을 용인할 의사가 전혀 없고,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핵 억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2017년 말 공개된 백악관 <국가안보전략(NSS:National Security Strategy)> 보고서, ▲2018년 초 공개된 미 국방부 <국방전략(NDS: National Defense Strategy)> 보고서, ▲2019년 초의 <미사일방어검토(MDR: Missile Defense Review) 보고서 등에서 드러난 미국의 대북 핵 억제는 미사일방어(MD)에 상당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연장선에 서 있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는, 북측 이중 교리의 첫 번째 부분을 무력화하려는 대응 행동으로 개념화할 수 있다. 유사시 전시 증원 통로가 될 남측 지역의 주요 항구와 비행장을 보호함으로써 북측의 제한적 핵 사용 개연성 자체를 최소화하려는 시도다.
또 다른 부분, 즉 북측 ICBM에 대한 대응에서는 알래스카에 배치돼있는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 Ground-Based Interceptor) 증강이 핵심을 차지한다. 영토가 좁은 북한의 특성상 ― 특히 SLBM 능력이 제한된 상태에서는 ― 미 본토를 향하는 ICBM 대부분이 알래스카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발사 직전 교란(Left of Launch)’과 선제(pre-emptive) 타격을 적절히 결합할 경우 북한이 향후 수년 내에 구축할 수 있는 10~20기 수준의 ICBM은 저지할 수 있으며, ▲따라서 미 본토가 핵 위협에 노출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이 시기 미국 군사 당국자들이 언급한 ‘MD에 기반한 억제’의 기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북측 이중 교리의 ‘약한 고리’에 대한 가장 섬세한 타격은 2018년 1월 중순 유출된 트럼프 행정부의 <핵태세검토(NPR: Nuclear Posture Review)> 보고서에 의해 이뤄졌다. 향후 SLBM과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Submarine-Launched Cruise Missile)에 저위력(low-yield) 핵탄두를 장착해 역내 억제 플랫폼으로 활용할 계획임을 명확히 한 이 문서는 기존의 고강도 전략핵보다 단계가 낮은 소규모 핵을 투입해 ‘확전 사다리(escalation ladder)’의 ‘빈칸’을 메움으로써 위협을 조기에 저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앞서 설명한 대로 북측의 이중 교리는 자신들의 제한적 핵 사용에 대해 미국이 전략핵 대량 보복을 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었으나, NPR 이후 공식화된 새 교리에 따르면 미측 역시 저강도 핵 사용으로 대응하기가 훨씬 쉬워졌으므로 북한으로서는 핵 확전을 피할 방법이 사라지게 된다.
미측이 공식화한 이들 세 가지 조치는 2018년 협상 국면이 개시된 이후에도 예산 배정과 연구 개발 등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향후 이러한 미측의 전력 변경이 완료되면 평양이 이중 교리를 통해 도모하려 했던 최소한의 개연성은 지극히 협소해질 공산이 크다. ▲북한이 상정하고 있는 제한적 핵 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이를 위협해 전시 증원을 차단하는 일 역시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기존 북측 핵 교리 전체가 최소한의 신뢰성을 상실하게 하는 대응 조치라고 할 수 있다.
2. 북한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과시 대응
상상해보건대, 이러한 전개는 북측의 군사 교리 담당자들에게 매우 골치 아픈 상황이었을 것이다. 사력을 다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한 뒤 미측 교리의 ‘빈틈’을 노려 핵의 군사적 활용 방안을 추구하려 했던 이들로서는, 미측의 부분적인 정책 변경이나 낮은 수준의 대응방안만으로도 그 개연성이 극히 협소해지는 상황이 무척이나 난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로서도 어떻게든 미측의 대응을 무력화할 수 있는 또 다른 ‘멍군’을 지도자에게 선보이는 것, 즉 여전히 핵의 군사적 활용을 도모할 수 있는 개연성을 어떻게든 넓히는 일이 매우 중요해졌을 것이다.
올해 총 10차례 진행된 발사 시험과 이를 통해 북측이 선보인 네 가지 신형 무기 체계, 그 와중에 공개된 3000t급 잠수함은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살펴볼 것은 이들 체계의 개발 일정이다.
지난 7월 22일 자 RFA(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이른바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미사일 개발을 담당했던 ‘8.25과학자·기술자돌격대’가 조직된 것은 2017년 8월로, 한 달 전인 7월 북측의 ‘화성-14형’ 발사에 대응해 한·미 양국이 THAAD잔여 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를 공식화한 직후의 일이었다. 이후 북측 관영 언론에 등장한 ‘첨단전술무기’와 ‘전술유도무기’ 관련 기사를 따라가 보면 2018년 11월과 올해 4월의 국방과학원 성능 시험을 거쳐 5월부터 시험 발사에 나선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2018년 11월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이 ‘첨단전술무기’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에 처음 검토됐으나 오랜 기간 본격화되지 못했다는 취지에서 ‘유복자 무기’라고 지칭한 바 있다. 요컨대 2016년 4월 일제 발사를 통해 북한 전략군이 과시했던 ‘스커드 미사일에 핵을 장착해 남측 전시 증원 통로를 타격하는’ 교리가 THAAD 배치로 인해 어려워지자, 이를 돌파할 수 있는 기술을 꺼내 들어 ‘KN-23’으로 완성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주지하다시피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러시아가 미국의 유럽 MD를 돌파하기 위해 개발·특화한 시스템이며, 올해 이뤄진 대부분의 시험 발사는 모두 THAAD와 패트리엇(PAC) 요격 범위 사이의 취약 고도에 집중돼 있다.
연이은 신형 방사포 공개와 이른바 ‘북한판 에이태킴스(ATACMS·전술용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 ‘섞어쏘기’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새 방사포는 240㎜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기존 방사포, 즉 공중에서 자탄을 뿌려 넓은 면적을 타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체계가 아니다. 공개된 사진들은 이들 체계가 유도 기술을 적용해 정확한 지점을 타격하는 사실상의 또 다른 미사일임을 보여준다. 결국 비슷한 사거리에서 각각 다른 궤도로 비행하는 다양한 미사일을 확보함으로써 요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일, 즉 THAAD장벽을 넘어서는 일이 ‘섞어 쏘기’의 주요 목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7월 23일의 3000t급 잠수함 공개는 맥락이 한층 더 복잡하다. 북측 언론은 관련 보도에서 이 잠수함의 작전 영역을 동해에 한정함으로써 당분간은 한·미 요격 체계의 방어각 바깥에서 전시 증원 통로를 타격하는 것이 주요 용도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후 ‘수중작전에 관한 우리 당의 전략적구상’, ‘잠수함공업부문의 당면임무와 전략적과업’ 등을 강조한 후속보도를 감안하면, 잠수함 기술이 충분히 발전할 경우 이미 입증한 ‘북극성’ SLBM과 결합해 미 본토에 대한 또 다른 경로의 타격 능력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도 함께 과시하려는 계산을 읽을 수 있다. 미측이 진행하고 있는 알래스카 GBI 증강 배치를 언젠가는 넘어설 수 있는 ‘다른 경로’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의미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잠수함에 대한 북측의 집착은 앞서 본 미측의 저위력 핵탄두 배치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냉전 시기 소련과 영국은 적국의 전략핵 공격으로 본토의 국가 지휘부가 완전히 절멸한 뒤에도 잠수함은 살아남아 상대에게 핵 공격을 가하는 극단적인 교리를 탐색한 바 있다. 발사 명령권자가 모두 사라진 뒤에도 핵미사일 단추를 누른다는 의미에서 ‘죽은 손(Dead Hand)’으로 불린, 혹은 적국의 2차 타격을 받은 뒤에 가하는 핵 공격이라는 뜻에서 ‘3차 타격 능력(third strike capability)’으로 분류됐던 개념이다.
미측의 저위력 핵탄두 배치가 확전 사다리의 빈칸을 채워 ‘확전 지배(escalation dominance)’를 유지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면, 3차 타격 능력은 전략핵 대량 공격 다음에 또 하나의 칸을 만들어 둠으로써 상대의 확전 지배를 흔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 영토를 초토화한 뒤에도 핵미사일이 날아올 개연성이 있다면 전략핵 사용을 쉽게 결심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지금으로서는 먼 미래의 일이지만, 잠수함 기술이 충분히 발전할 경우 북측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에 담긴 미측 핵 교리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시도할 수 있다. 최소한 북한의 군사 전략 담당자들로서는 충분히 고민할만한 ‘멍군’인 셈이다.
3. 평가 및 전망
그러나 이러한 핵 억제 게임 차원의 해석에는 한 가지 빠진 고리가 있다. 북측 군사 전략 담당자들이 나름의 고육지책을 꺼내 들었다 해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그 현실화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점이다. 새로 등장한 체계들이 변칙 기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요격 가능성을 줄이는 측면이 있지만, 반대로 속도가 줄어 오히려 요격을 용이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알래스카 GBI의 역량 한계를 넘어설 만큼 대규모로 ICBM을 증강하지 않는 한, 혹은 SLBM으로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을 만큼 잠수함 능력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하는 한, 일단 한반도에서 핵이 사용되면 미측의 핵 확전 결심을 저지할 결정적인 방법은 평양에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죽은 손’ 교리를 꿈꾸며 잠수함 능력 강화에 성공한다 해도, 한·미의 대잠수함전(ASW: Anti-Submarine Warfare) 역량이나 옛 소련조차 돌파를 포기했던 태평양 해저의 미측 수중감시 체계를 빠져나가 생존할 개연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론적으로 풀이하면, ‘억제(deterrence)’는 상대가 인정하는 경우에만 성공할 수 있다. 우리 측 능력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상대가 생각한다면 억제는 성립할 수 없다. 북측이 보여준 일련의 시도가 미측으로 하여금 억제 방정식이 바뀌었다고 판단할만한 수준에 이를 수 없음은 명백하고, 따라서 북·미 사이의 핵 억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일련의 시도는 어떻게든 이중교리의 유효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북한 군사 전략 담당자들의 아집을 보여줄 뿐, 한·미와의 상호 핵 억제상황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남는 염려는 신형 무기 체계를 시험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평양의 과도한 자신감 때문이다. 이번 연쇄 발사에서 가장 묘한 장면 중 하나는 8월 12일의 개발자 표창과 승진이었다. 통상 평양은 새로운 체계의 시험을 모두 마친 뒤에 사후 경축 행사 차원에서 개발자 표창을 단행하곤 했다. 이렇게 보면 8월 12일 이후 진행된 세 차례의 추가 발사는 당초 예정된 것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8월 16일의 시험이 이미 10일에 성공적으로 발사했던 체계를 한 번 더 쏜 것에 불과했다는 점, ▲9월 10일 이뤄진 방사포 연속 사격에서 일부가 추락한 점 등도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된 것이라는 추론에 무게를 싣는다.
평양이 8월 중순에 이르러 당초 계획보다 공세적인 방식으로 발사 시험을 추가 진행했다면, 일련의 행보에 얽힌 자신들의 계산이 성공적이었다고 판단한 결과였을 것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혹시나 핵의 군사적 활용 방안을 유지하는 일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기대가 평양의 정책 결정 그룹 내부에서 확대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러한 방안이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압도적 핵 전력을 가진 미국과 상호 핵 억제를 구성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라는 사실을, ▲북측의 군사 전략 담당자들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나름의 ‘멍군’을 고안한다 해도 한·미 양국의 또 다른 대응에 의해 손쉽게 무력화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북측의 정책 결정 그룹에 납득시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평양이 이 ‘차가운 현실’을 하루라도 빨리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견인할 첫 번째 문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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