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o:abstract |
1. 한국 입장의 주요 내용 및 의미
2. 평가와 과제
외교부는 6월 19일 지난해 10월 30일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강제징용 문제 해결 방안으로 “양국 기업의 자발적 재원 조성을 통한 피해자 위자료 해당액 지급”을 제안하였다. 그동안 해당 문제에 대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기본 입장 아래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해온 한국 정부로서는 대법원 판결 이후 약 8개월 만에 공식 입장을 표명하면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며 우리 측 제안을 수용 불가하다고 반응했다. 한국 정부의 입장 표명과 해결방안 제시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기대되었던 강제징용 문제는 여전히 난항이 예상된다.
아래에서는 한국 정부 입장의 의미를 평가하고, 후속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1. 한국 입장의 주요 내용 및 의미
외교부의 ‘강제징용 판결 문제 우리 정부 입장’ 발표문에 나타난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 방식은 “소송 당사자인 일본 기업을 포함한 한·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하여 확정판결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함으로써 당사자들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외교부는 “일본 측이 이러한 방안을 수용할 경우, 일본 정부가 요청한 바 있는 한·일 청구권협정 제3조 1항 협의 절차의 수용을 검토할 용의가 있으며, 이러한 입장을 최근 일본정부에 전달하였다”고 밝혔다.
발표문에 담겨있는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당사자 이익 존중’이라는 문제 해결의 방향성 설정이다. 정부의 입장문에서는 ‘소송 당사자인 일본 기업을 포함한 한·일 양국 기업’과 ‘확정판결 피해자’로 위자료 해당액 지급의 ‘주체’와 ‘대상’을 명확히 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해당 소송이 사인(私人) 간의 민사소송인 만큼 정부의 직접적인 관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양국의 관련 기업과 피해자들 간의 화해라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방식은 ▲양국 정부가 위자료 지급 주체에서 제외되었고, ▲당사자들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점에서 지난 1월 청와대가 부인한 바 있는 정부와 한·일 양국 기업이 참여하는 공동기금 조성 방식과는 내용상 다르다. 이는 곧 정부가 ‘당사자 이익 존중’의 원칙을 지켜가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이자, 향후에도 이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둘째, ‘대법원 판결 존중’ 하에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하며, 문제 해결의 전제를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결과로 두고 있다. 금번 정부의 입장 표명은 정확히는 ‘강제징용 문제’ 전반사항이 아닌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문제’에 대한 입장이다. 따라서 정부의 이번 입장 표명은 이미 확정된 판결 결과를 존중한다는 원칙 아래,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며 피해자들에게 가능한 지원과 노력을 하겠다는 고심 끝에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아직 소송중이거나 추후 소송 사안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한·일 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외교적 대화 채널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의 보도 자료와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복잡한 사안을 두고 양측의 의견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게 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는 곧 강제징용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것임과 동시에, 해당 사안에 대한 논의가 공식적인 외교라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2. 평가와 과제
대법원 판결 이후, 약 8개월 만에 한국 정부가 관계부처 간 협의와 각계의 의견 및 여론 청취 등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어렵게 내놓은 공식 입장이다. ▲대법원 판결 존중, ▲당사자 이익 존중, ▲국제규범 준수라는 원칙 아래 해결책도 제시하였다. 하지만 앞으로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해 나가는 데에는 적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
먼저, 앞으로 더욱 피해자들과의 충분한 대화와 문제 해결 방안의 제시가 필요하다. 나아가 향후 문제해결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고 존중되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한·일 양국의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다음으로, 해결 방식에 대한 한·일 간의 조율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일본 측이 수용할 경우, 일본정부가 요청한 한·일 청구권협정 제3조 1항의 협의 절차의 수용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반면에 그동안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문제시하며 ‘외교적 협의’와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해왔다. 해당 사안을 ‘국가 대 국가’의 문제로 보는 일본과 ‘사인(私人) 간의 문제’로 보는 한국의 입장이 일치하지 않고 있는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의 제안은 대법원 판결에서 언급한 식민지 지배 불법성 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지않다. 대법원 판결 이후 8개월 만에 한국 정부가 타개책을 제시하였으나, 한·일 관계에서 가장 입장 차를 좁히기 어려운 식민 지배 불법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어 양국 관계의 쟁점으로 잠복해 있을 전망이다.
이런 과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결 이후 약 8개월간 고심해왔던 한국 정부의 이번 제안은 어렵게 내딛은 한 걸음이다. 더 나아가 문제 해결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구체적인 해결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아직 적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첫 발을 내딛고, 강제징용 판결 이후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한·일 관계를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강제징용 문제는 양측의 입장이 극명하게 대립되고, 역사적·법적·외교적·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안인 만큼 명쾌하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채워나가면 되고, 미흡한 부분은 좀 더 깊은 논의를 통해 구체화시켜 나가면 된다. 한·일 양국 정부는 원칙을 유지하되, 문제 해결을 위한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함께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어렵게 내디딘 한 걸음이 두 걸음, 세 걸음이 될 수 있도록 지금이야말로 일방적인 비난보다 건설적인 비판, 그리고 문제 해결과 양국 관계발전을 위해 한·일 양측의 지혜를 모을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