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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 목적 및 성과
2. 북·러 정상회담과 북한 비핵화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
3. 북한의 ‘새로운 길’ 전망
1.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 목적 및 성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의 첫 정상회담이 2019년 4월 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되었다. 김 위원장은 4월 24일 20여 시간 전용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가 아닌 북·러 접경 인근의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여 26일까지 체류하였다.
북한과 러시아는 2018년에 수교 70주년 기념의 해를 맞이하였다. 이를 위한 기념행사는 열렸으나 정상회담은 해를 넘겨 2019년에 개최되었다.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이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3차례의 북·중 정상회담,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에 임했던 것을 상기하면, 숨 가쁘게 전개되었던 북한의 외교 일정 때문에 북·러 정상회담이 늦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하면 북한 외교에서 한국, 미국, 중국에 비해 대러 외교의 시급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지난 2월 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김 위원장의 첫 외교 행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 회담을 통해 북한의 향후 외교적 대응을 주목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이후 양국의 공동 성명이나 합의문이 없었기 때문에 정상회담의 성과를 양국의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유추해보기로 한다.
북한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북·러 우호관계의 증진이다. 둘째, 제재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해소를 위한 북한의 경제적 지원 요청이다. 셋째,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북한의 외교적 지원 요청이다.
위의 세 가지 목적 중 우호관계의 증진이 명분이라면, 이 목적은 정상회담의 성사를 통해 이루어진 셈이다. 나머지 두 가지 목적은 실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인 러시아의 경제 지원을 통해 북한이 원하는 것은 에너지와 식량 지원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모스크바에서 성의를 보였을 것으로 예상되나 북한에서 만족할 만한 충분한 양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북한이 경제 제재 완화를 위해서 러시아 내 북한 근로자의 2019년 말 귀국 유예 등을 요청했을 것으로 분석된다.러시아 내 북한 근로자들의 귀국은 아직 시한이 남아있기 때문에 향후 정세 변화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2. 북·러 정상회담과 북한 비핵화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
북한의 세 번째 목적인 외교적 지원 요청에 대한 러시아의 답은 어떠했을까? 정상회담 직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체제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하면서 “북한 체제보장에 대해 논의할 때는 6자회담 체계가 가동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북한 비핵화에서 체제보장이 필요하다는 점은 북한의 입장에 동의한 것이며, 6자회담 체계의 필요성 주장은 러시아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러시아는 6자회담 언급을 통해 한반도에서 자국의 영향력 확대 여지를 확보하려 한 것이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러시아의 실제 입장은 북·러 정상회담이 개최된 4월 25일 문재인 대통령과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연방안보회의 서기 일행의 만남에서 언급된 ‘중·러 공동행동계획’에 담겨져 있다고 볼 수있다. 파트루셰프 서기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에 대한 ‘중·러 공동행동계획’을 언급하였다. ‘중·러 공동행동계획’이란 2017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비핵화 공동로드맵’에 대해 공동 발표한 것을 말한다. 당시 양국은 중국의 비핵화 해법인 ‘쌍중단·쌍궤병행’(雙暫停·雙軌竝進)과 러시아의 비핵화 해법인 ‘3단계 비핵화’의 공통성을 토대로 한반도 비핵화 해법에 합의하였다. 중국과 러시아는 1단계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축소/중단을 하고, 2단계에서 북·미 간 및 남북한 간 관계 정상화를 하며, 3단계에서 다자 협정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지역 안보체제를 논의한다는 내용을 공동행동계획에 담았다.
이러한 중·러 공동행동계획이 바로 북한의 외교적 지원 요청에 대한 러시아의 답변일 것이다. 현재 중·러 간 협력이 긴밀하다는 점에서 양국은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침 북·러 정상회담 다음 날인 4월 26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중국의 ‘제2회 일대일로(一带一路)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석하여 중·러 정상회담을 통해 이러한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특히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입장을 러시아가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측의 외교적 지원은 결국 중국의 입장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3. 북한의 ‘새로운 길’ 전망
북한은 2018년 6월 12일 첫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교착 국면에 들어서자 2019년 신년사에서 미국의 결단을 촉구하였다. 또한 만약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계속한다면, 북한은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2018년에 보여준 북한의 행동과는 다른 길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2018년 북한의 행보는 남북 정상회담으로써 남북관계를 개선한 이후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협상을 이끌어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북한의 ‘새로운 길’은 2018년과 같은 ‘선 남북관계 개선, 후 북·미 비핵화 협상’이 아닐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길’은 비핵화 협상을 완전히 포기하고 핵무력의 양적 증강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4월 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통해 밝혔듯이, 북한은 아직까지 비핵화 협상의 완전한 포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의 남은 선택은 ‘선 남북관계 개선, 후 북·미 비핵화 협상’을 재고(再考)하는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만약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되지 못하다고 판단될 경우, 남북관계 개선은 차순위로 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 역시 김정은 위원장이 2019년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이전에 중국과 합의한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였고, 대북 경제제재와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 답변을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해외 노동자 귀환에 대해 북·러 양국이 논의했다는 점을 푸틴 대통령이 인정하였기 때문에 북한은 러시아 측의 대답이 중요했을 것이다. 북한 해외 노동자의 본국 송환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2397호에 의하면 올해 연말까지로 시한이 정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러시아의 대북 경제제재 이행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사안이다. 만약 북한 노동자 귀국에 대해서도 러시아로부터 확실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면, 북한은 북·러 정상회담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실질적 목적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 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새로운 길’에 대한 입장을 잠시 유보한 채 ‘선 남북관계 개선, 후 북·미 비핵화 협상’ 전략의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러 정상회담은 변화된 전략으로 가기 위한 사전 포석일 수 있으며, 변화된 전략은 결국 향후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가시화될 전망이다.
올해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북한의 ‘새로운 길’은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남북 및 한·중 간의 의사소통을 지속하여 북한 당국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시점에 한국 정부의 입장이 고려될 수 있도록 유연하고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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