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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과 대응
2. 글로벌 금융위기와 자유주의 위기의 연관성
3. 장래의 금융위기와 아르헨티나 G20 정상회의의 과제
지난 9월 15일은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왜 발생하였고, 세계가 어떻게 대응하였는가를 평가하기에 적절한 시기처럼 보인다. 2008년에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에는 그것을 경제 현상으로만 인식하였고 또 그렇게 대처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하나의 사건이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렇게 보는 이유는 그것이 일종의 합의로 존재했던 경제 및 정치적 영역에서, 그리고 국내 및 국제적 차원에서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후퇴 신호탄을 쏴 올렸기 때문이다. 이제 더 나은 자유주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현실에서 가능한 조치가 무엇일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과 대응
2008년 금융위기 발생의 핵심적인 원인은 적절한 규제와 감독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한 금융 세계화에 있었다. 금융위기의 발원지인 미국과 유럽의 금융회사들은 무모할 정도로 위험한 단기 투자에 몰입하였다. 이들은 예금의 장기투자 운용보다는 단기자금을 동원하여 규제와 감독이 약한 금융상품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에 더 의존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에서의 서브프라임 주택담보 대출(subprime mortgage)이다. 서브프라임 주택담보 대출은 신용 기준을 급격히 낮추었을 뿐만 아니라 증권화(securitization) 되어 장외에서 거래되었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층에 대한 대출이 1990년대에는 전체 주택담보 대출에서 미미한 비중을 차지하였으나 2006년에는 40%로 증가하였고, 주택 경기의 하락과 함께 상환되지 않은 대출금이 급기야 금융위기를 발생시켰다.
금융업의 세계화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에 한몫을 하였다. 금융회사들은 자본 이동성을 이용하여 규제 차익거래(regulatory arbitrage)를 투자에 활용하고 세계적으로 금융 규제를 완화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세계화된 은행업과 금융 서비스가 글로벌 금융위기 전파의 경로(channel)로 작동하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유럽 은행들은 미국산 서브프라임 주택담보 대출증권의 주요 구매자였는데, 이 증권이 부실해지면서 시작된 미국 금융계의 위기가 경로상 곧바로 유럽 금융계로 급속히 퍼져 나가게 되었다.
리만브라더스의 파산은 경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체제적 위기(systemic crisis)를 일으켰다. 2007년 말에서 2009년 말까지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9%, 영국은 5.5%, 프랑스는 2.8%, 그리고 독일은 4.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4개 국가에서 은행 위기가 발생했고, 이들 국가는 아직도 금융위기 이전의 경제성장 트렌드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에서 정부 부채는 GDP의 30% 이상으로 증가하였는데, 경제 상태의 악화와 경기부양, 그리고 구제금융 때문이었다. 동 기간 전 세계의 산업 생산은 평균 15% 정도 감소하였으며, 국제 무역은 2008년 대비 2009년에 12.2%, 2010년에는 무려 21% 감소하였다. 한 연구는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 국민은 생애 소득에서 평균 7만 달러를 상실할 것이고, 회복도 어려울 것으로 분석하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규모가 전례 없이 컸던 만큼, 대응 또한 과거와도 달랐다. G20으로 불리는 세계 20대 경제국들은 글로벌 규모로 거시경제정책을 조율함으로써 ▲은행이 부실해진 국가들은 자본 제공, 부채 보장, 자산 매입 등을 통해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전환되는 것을 차단했고, ▲중앙은행들은 파격적인 금리 인하와 통화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정부는 대규모 재정 자극으로 수요를 지탱하기로 합의하였다. G20 정상회의에서의 이러한 거시경제 공조는 금융위기가 제2의 대공황으로 발전하는 것을 방지하였다.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처방도 가져왔다. 미국과 유럽이 금융 규제 강화에 나섰고, ‘도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및 소비자 보호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 제정 및 유럽체제위기위원회(European Systemic Risk Board) 설치가 그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더 건전한 자본과 유동성을 보유하게 되었고, 장외파생금융상품이 규제 대상에 포함돼 중앙결제 체제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또한 체제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형 은행들은 더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되었고 부채비율도 낮아졌다.
2. 글로벌 금융위기와 자유주의 위기의 연관성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사건인 이유는 ▲위기의 발원지가 미국이고, ▲위기가 야기한 변화가 금융과 경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국내와 국제적으로 자유주의 질서를 후퇴시키는 정치적 변화를 수반했기 때문이다. 이는 1980~90년대 다수의 개도국 경제위기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현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우 금융과 경제 분야에서는 즉각적인 변화가 일어났지만, 정치적 변화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가시화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의한 국내 차원의 자유주의 후퇴는 반세계화(anti-globalization)와 대중주의(popu- lism)를 등장시켰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화의 폐해를 노정한 것으로 보고, ▲세계화에서 낙오된 그룹과 ▲국내 차원에서 금융위기로 인해 불의의 피해를 본 국민들이 자유주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로 세계화는 국가 간의 소득 불평등을 감소시킨 반면, 선진국 내에서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세계화의 열매는 특정 계층에 한정되었고, 다수의 국민들은 세계화에서 혜택을 받기보다는 소득 정체와 실업의 고통을 겪었다.
반세계화와 대중주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완전한 처리와 ▲소수에게만 혜택이 한정된 세계화에 대한 불만 표출의 산물로서, 글로벌리즘(globalism)이 국내 문제 해결을 방해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선출되는 양상으로 이어졌다. ▲2016년 6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투표, ▲유럽에서 극우 정당의 부상, ▲2016년 11월 미국에서 ‘미국 제일주의’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일견 금융위기와 무관해 보이지만, 이 모두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산물이다. 그리고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성장을 회복한 현재에도 반세계화와 대중주의의 추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결과로 초래된 국제 차원의 자유주의 위기는 ▲다극화와 ▲미국이 주도해 왔던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와 협력의 약화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가 능력에 변화를 가져왔다. 능력의 쇠퇴가 명확해진 국가가 있는가 하면, 새로이 능력을 획득한 국가도 있다. 국가 능력의 이동과 다극화는 각자의 관점에서, 즉 ▲일부는 국제협력 비용의 불공정한 부담을 이유로, ▲다른 일부는 기존 규칙의 부당성을 이유로, 자유주의 원칙에 기반한 국제협력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대안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2017년 G20 정상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G20 국가들은 미국 대(對) 나머지 국가들로 분열되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원칙적으로 지지하는 데에 실패하였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또 다른 대공황으로 발전하는 것을 방지하였던 바로 그 G20 정상회의에서조차도 국제협력은 어려운 임무가 되었다.
그리고 국제 차원에서 자유주의 원칙에 기반한 국제협력의 약화는 위에서 언급한 국내 차원의 자유주의 후퇴와 무관하지 않다. 국제협력은 국가들이 협력을 통해 경제와 정치적으로 이익을 인식할 때에, 그리고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가 존재할 때에 가능해진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에서 세계화로 피해를 보았다고 인식하는 대중이 국제협력을 지지하지 않게 됨으로써,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2차 세계대전 후에 자신들이 수립하고 유지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협력을 스스로 거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대중은 국제협력이 세계화의 비용과 관련된 우려를 완화시킨다고 인식할 때에만 국제협력을 지지하려고 한다. 달리 말하면, 국가들은 ▲세계화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국민들을 도와주는 정책,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협력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3. 장래의 금융위기와 아르헨티나 G20 정상회의의 과제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금융위기가 극복되었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금융위기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일반적이다. 두 시각을 결합하면, 또 다른 금융위기가 세계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문제는 세계가 얼마나 다음 금융위기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이다. 세계가 앞으로의 위기에 대비하는 것을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을 제대로 배웠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면 그 씨앗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완전한 처리 과정에서 심어졌을 것이다. 즉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한 후에 세계 경제에는 저성장, 저금리, 저인플레이션, 저고용,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정상상태)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여기에 보호주의와 사이버 위협이 추가되었다. 그러한 뉴노멀에서 탈피하려는 조치가 오히려 금융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 미국의 금리 정상화 영향으로 ▲아르헨티나가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에서 구제금융을 받은 상태이고, ▲터키,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공, 브라질 등 소위 “신흥 시장(emerging markets)”에서 환율 변동성이 높게 나타나는 것이 그 징후이다.
금융위기가 다시 발생하는 경우 그에 대한 유일한 대응은 국제협력, 즉 글로벌 거시경제 공조일 것이다. 국제협력은 지난 70년간 세계의 번영과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21세기도 예외는 아니다. 2008년 이후 세계화에 대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상호의존성이 많이 감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속한 국제협력만이 금융위기의 확산을 차단할 수 있다. 다만 현재의 국제 환경에서 2008년과 같은 국제협력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11월 30일~12월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최되는 제13차 G20 정상회의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로서는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장래의 금융위기와 관련하여 아르헨티나 G20 정상회의는 체제적인(systemic) 금융 혼란에 대한 대응 원칙을 예비적으로 논의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선진국의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른 잠재적 금융 위험을 다룰 글로벌 정책 조율이 결여되어 있다. 특히 체제적인 금융 혼란이 개도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때, 이를 다룰 기제가 빠져 있다. G20 정상회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타개를 목적으로 소집되었으므로 금융위기 대응을 G20 정상회의의 임무로 볼 수 있다. G20 국가들이 뉴노멀의 금융위기 대응 기제를 예비적으로 합의해 둔다면 앞으로 다른 금융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충격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더 나아가서, 아르헨티나 G20 정상회의에서 국가들이 장래의 가능한 금융위기에 대해 글로벌 거시경제 공조를 약속하는 것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의 국제협력이 비관적이지만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빠진 국제협력, 특히 금융 분야에서의 국제협력은 실효성이 없다. 따라서 미국의 합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협받고 있는 자유주의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에 미국이 관여되어 있다는 상징으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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