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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도-태평양 전략'의 정책목표
2. '인도-태평양 전략'의 주요 정책프로그램
3. 평가 및 전망
4. '신남방정책' 추진에 대한 시사점
1. ‘인도-태평양 전략’의 정책목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2017년 11월 아시아 순방 계기 베트남 다낭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Free and Open Indo Pacific Strategy)’(이하 ‘인도-태평양 전략’)을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 전략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동안 규칙기반질서(RBO: Rules-based Order)’ 및 항행의 자유 등과 같은 원칙적이고 추상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수사(rhetoric) 수준에 머물러 있던 ‘인도-태평양 전략’은 최근 ‘구상’ 단계에서 구체적인 ‘정책’으로 진화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국무장관이 지난 7월 30일 ‘미국의 인도-태평양 경제비전(America’s Indo Pacific Economic Vision)’ 제하의 연설과 8월 4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ASEAN Regional Forum) 참석 계기 일련의 회견과 회담을 통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정책 프로그램으로 구체화하여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 국무부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총괄하는 월터 더글라스(Walter Douglas) 차관보는 최근 서울 방문 계기, ‘인도-태평양 전략’의 3대 축으로 ▲경제개발, ▲거버넌스, ▲안보를 설정하고, 미국은 지역 내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를 추진해나가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즉, ▲첫째,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BRI: Belt and Road Initiative)’ 추진방식과 달리 역내에서 민간자본 투자 중심의 대안적 인프라 및 경제개발 추진, ▲둘째, 투명성, 법의 지배, 국제적 기준과 관행에 부합하도록 지역 내 국가들의 거버넌스 개선, ▲셋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항행의 자유 및 해양안보 수호를 위해 역내 국가들과 안보협력 강화 등의 세 가지 전략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목표가 특정국을 배제하는 지역구도가 아니라 자유롭고 개방된 지역질서 구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중국을 배제한 지역구도 형성에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아세안을 비롯한 역내 중소국의 지지와 참여를 유도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인공섬 건설과 군사기지화 움직임, 그리고 ‘일대일로’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스리랑카 등 일부 국가들이 과도한 부채를 떠안게 된 점에 대한 비판도 강하게 제기함으로써, 인도-태평양 구상의 전략적 대상이 중국이라는 점도 숨기지 않았다. 즉,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모든 국가들은 국제 규범과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며, 이러한 원칙에는 중국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이러한 국제적 규범과 원칙을 계속 위반한다면, 미국은 단호히 반대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가능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2. ‘인도-태평양 전략’의 주요 정책 프로그램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7월 30일 미국상공회의소 주최로 워싱턴에서 개최된 ‘인도-태평양 비즈니스 포럼’ 연설에서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지배가 아니라 파트너십(partnership, not domination)’을 구축하고자 하며, 인도-태평양 비전은 자유롭고 개방된 RBO를 지지하는 모든 나라에 열려 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을 겨냥하여 미국은 파트너십이 아니라 지배를 추구하려는 어떠한 나라도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동 연설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4대 요소로 다음을 제시하였다. 첫째, 1억1천3백만 달러 규모로 디지털 경제, 에너지 및 인프라 분야에서 역내 국가들에 대한 경제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역내 국가들의 디지털 연계성 및 사이버 안보 대응능력 강화를 위한 디지털 연계성 및 사이버 안보 파트너십(Digital Connectivity and Cybersecurity Partnership), ▲에너지 분야의 기술지원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 개발지원 프로그램(EDGE: Enhancing Development and Growth through Energy), ▲아세안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의 인프라 개발을 위한 지원 네트워크(Infrastructure Transaction and Assist- ance Network) 구축 등이 그것이다. 1억1천3백만 달러 규모의 이들 프로그램의 목적은 미국의 공적재원 투입을 통한 인프라 개발이 아니라 향후 민간자본이 보다 효율적으로 투자되도록 투자정보 제공, 기술지원 및 능력배양(technical assistance and capacity building)을 지원하는 것이다.
둘째, 인도-태평양 지역 개도국의 인프라 건설, 경제발전 및 빈곤퇴치 등의 분야에 대한 민간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개발금융 지원 규모를 현재의 연 300억에서 600억 달러로 대폭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서남아 및 동남아에서 ‘일대일로’ 구상 추진 차원에서 진행 중인 항만, 철도, 댐 건설 등 인프라 개발이 주로 중국의 국내 금융기관을 통한 공적재원 제공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수원국과의 불투명한 계약과 부정부패의 만연, ▲수원국의 상환능력을 초과한 과도한 부채 공여, ▲수원국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경제성이 없는 프로젝트의 진행 등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수원국의 수요에 기반하고 국제적 기준과 관행에 근거하여 투명한 절차에 따라 경제성을 가진 인프라 개발 사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간자본이 중심적인 역할(led by private sector investment)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트럼프 정부는 1971년 설립되어 미국의 개발금융 지원 기관으로 기능해 온 해외민간투자공사(OPIC: Overseas Private Investment Corporation)를 국제개발금융공사(IDFC: International Development Finance Corporation)로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이를 위한 신규 법안인 BUILD Act(Better Utilization of Investments Leading do Development Act of 2018)가 이미 미 하원을 통과하였고 현재 상원에 계류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공적개발 원조 기관인 미국국제개발처(USAID: 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 national Development)의 활성화와 아울러 개발금융 지원을 대폭 확대하여 민간 투자가 대폭 확대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 필요한 인프라 건설을 위해서 공적재원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민간 자본이 투자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새로운 인프라 투자 촉진 및 개발협력 프로그램의 추진과 함께 미국은 일본 및 호주와 함께 이들 분야에서 3자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각국이 독자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들 간 긴밀한 조율과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미 독자적인 ‘인도-태평양’ 구상을 추진 중인 동맹국 일본과 호주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일본은 ▲항행의 자유 등 규칙기반질서(RBO) 구축, ▲인프라 개발을 통한 역내 연계성 강화, ▲역내 개도국에 대한 경제개발 및 해양안보 분야의 능력개발 지원 등을 자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정책목표로 설정·추진하고 있다. 호주도 최근 발간된 ??외교백서(2017 Foreign Policy White Paper)??를 통해 역내에서 RBO 구축을 대외전략의 목표로 설정하고 미국과 적극적인 보조를 맞추고 있다. 당초 안보적 성격을 강하게 표방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역내 경제개발 지원을 중심으로 한 경제 분야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도 호주 및 일본과의 협의 결과로 평가된다. 인도-태평양 정책의 실행을 위해 미·일·호 3자 협력체제를 구축한 미국은 향후 구체적 이슈 분야별로 역내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 양자, 3자 및 4차 차원의 다양한 협력체를 구축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넷째,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항행의 자유 원칙을 수호하고 역내 국가들의 해양안보 분야의 능력개발 지원을 위해 3억 달러 규모의 안보협력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동남아 및 태평양 도서 국가들의 배타적 경제수역 감시 및 정찰(MDA: coastal radar-enhanced maritime domain awareness) 능력 향상을 위한 기술지원 및 훈련 제공, 인도적 지원 및 재난구호(HA/DR: humanitarian assistance and disaster relief) 대응능력 향상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인도양 해양안보의 핵심지역인 벵골만(Bay of Bengal) 인접 국가들에 선박운행 감시 및 정보공유 능력 향상을 위한 기술 및 훈련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 외에도 평화유지, 마약 및 인신매매, 해상 테러 등 분야에 대한 능력배양 지원 프로그램도 추진된다.
3. 평가 및 전망
첫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제 경제, 거버넌스 및 안보 등 세 가지 핵심요소를 가진 정책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됨으로써 추상적인 구상 수준을 넘어서 예산이 뒷받침 되고 실체를 갖는 정책적 행동으로 전환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경제비전’ 연설에서 발표한 정책 프로그램들은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을 위한 착수금(downpayment)이라고 강조했듯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은 향후 보다 정교화 되고 다양한 정책 수단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까지 모습이 드러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진화·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당초 예상과 달리 현재까지 발표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들은 안보적 성격보다는 경제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즉, 역내 국가들의 경제개발을 강조하고, 이를 위한 정책적·기술적 지원 및 능력배양 제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해양안보 분야의 안보협력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개발협력, 거버넌스 개선, 민간투자 촉진을 핵심 요소로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경제적 성격을 대폭 강화한 것은 역내 개도국들의 지지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공세적 행동을 강하게 비판하고, ‘항행의 자유 작전(FONOP: Freedom of Navigation Operation)’을 주기적으로 펼치는 상황에서 이에 동조하는 국가들과 작년 1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미·일·인·호 4자 협의체(QUAD: Quadrilateral arrangement)를 개최할 때만 해도 미국이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한 안보적 성격의 협의체 형성을 추진하고, 향후 이를 확대하여 역내 국가들의 참여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아세안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은 당초 중국 견제 성격의 협의체인 QUAD의 확대 여부에 대한 강한 우려를 했다. 즉 중국과 두터운 경제적 연계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역내 국가들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인해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일적’ 선택 또는 ‘외교적 줄 세우기’를 강요당할 가능성을 경계하였다. 예를 들어, 비비안 발라크리쉬난(Vivian Balakrishnan) 싱가포르 외교장관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특정국을 배제하는 구도를 지향한다면 자국은 결코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애초의 중국 견제 성격을 희석시키고 안보적 요소보다는 경제적 요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재구성하여 공표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역내 중소국들의 안보적 우려를 불식시키고 이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미국이 인도-태평양 정책의 이행을 위해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양자, 3자 및 4자 협력 등 다양한 형태의 소다자 협력(minilateral cooperation)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점이 주목된다. 지난 8월 27~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제3차 인도양회의(Indian Ocean Conference)에 참가한 앨리스 웰스(Alice Wells) 미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목표 실현을 위해 “미국과 뜻을 같이하는 역내 국가들과 다양한 형태의 협력(flexible regional groups of like-minded countries)”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점에서 개발협력 분야에서 미·일·호 3자 협력체제, 항행의 자유 분야에서 미·일·인·호 4자 협의체(QUAD)를 추진하고 향후 다른 분야에서도 참여 의사가 있는 역내 국가들과 다양한 형태의 소다자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미국이 인도-태평양 정책 이행에서 강조하는 것은 결코 역내에 존재하는 기존의 제도들을 대체하는 새로운 제도 형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제도적 틀 위에서 역내 RBO 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 동아시아 지역의 핵심적인 역내 협력 기제인 아세안 중심(ASEAN Centrality)의 제도들 즉, ARF,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 ASEAN Defence Ministers' Meeting-Plus),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East Asia Summit) 등을 적극 활용하고, 인도양 지역 21개국이 참여하는 지역협의체인 환인도양연합(IORA: Indian Ocean Rim Association)과의 협력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한편으로 그동안 동아시아 지역 협력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 온 아세안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인해 주변화(marginalize)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불식시키고 아세안의 적극적 동참과 지지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도가 주도하는 인도양 지역 국가들의 협력기구인 IORA에 대한 관여와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핵심 협력 파트너인 인도뿐만 아니라 해양안보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도양 연안 국가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도 있다고 평가된다.
미국은 7월 30일 폼페이오 장관의 ‘경제비전’ 발표 이후 최근 역내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 강화를 위한 정책협의를 본격적으로 개시한 것으로 보인다. 마니샤 싱(Manisha Singh) 경제담당 차관보, 월터 더글러스 동아시아 및 태평양 공보담당 차관보, 앨리스 웰스(Alice Wells) 남·중앙아시아 담당 수석부차관보 등 미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최근 일본, 한국,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필리핀,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등 인도-태평양 지역 주요 국가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공식 및 비공식 방문, 언론공개 행사를 통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을 홍보하고, 현지 정부 관리들과 인도-태평양 정책추진 관련 양자협력 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넷째,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인도-태평양 전략’은 단순한 행정부 차원의 독자적 이니셔티브가 아니라 미 의회의 초당적 지지(bipartisan support)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지속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강조하는 RBO 확립과 투명한 거버넌스 구축은 경제적·외교적 차원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대응적 성격이 강하다. 동중국해, 남중국해 및 인도양 지역에서 중국이 공세적 군사안보 행동을 지속함에 따라 항행의 자유 등 RBO가 위협받고 있다는 인식은 트럼프 행정부뿐만 아니라 미 의회도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 또한 불공정한 무역관행뿐만 아니라 ‘일대일로’ 전략 참여국가 들에서 다양한 부작용이 야기되는 등 국제적 규범과 기준에서 벗어나는 “차이나 스탠다드(China standard)”의 확산에 따라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의 거버넌스가 개악(改惡)되고 있다는 것이 미국 정치권의 지배적 인식이다.
미국의 단호한 중국 견제 인식은 ▲최근 대중 무역전쟁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미 의회가 전폭적인 초당적 지지를 보내고 있고, ▲중국에 대한 광범위한 견제 조치를 담고 있는 ‘2019년 국방수권법(NDAA: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of 2019)’이 미 의회에서 초당적으로 채택된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의 참여를 공식적으로 배제하지 않으나,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을 변경해야만 중국도 지지할 수 있는 가치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미·중 간 갈등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추진하고자 하는 역내 개도국의 경제개발 지원을 위한 정책 프로그램들이 과연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특히, 민간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것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경제적 핵심 목표인데, 과연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이에 얼마나 호응할 것인가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인도-태평양 지역 개도국에 대한 인프라 개발 수요는 높은 데 반해 이에 대한 민간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infrastructure deficit)이 지속되어 온 이유는 역내 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상업적으로 투자 가능한 요건을 충족시키는 프로젝트(bankable projects)를 발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총 1조 달러 규모에 육박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들은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고 중국 정부의 결정으로 공적재원을 제공하기 때문에 서방으로부터 민간투자 유치가 어려운 개도국들로부터 적극적인 환영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요컨대 향후 미국의 인도-태평양 경제정책에 대한 역내 개도국들의 지지와 동참 여부는 미국이 의도하는 대로 역내 개도국에 대해 민간 투자가 얼마나 활성화되는가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4. ‘신남방정책’ 추진에 대한 시사점
첫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본격적 정책 이행단계로 진입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신남방정책’ 추진 차원에서 이에 대한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적극적으로 협력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강조하는 규칙기반질서(RBO), 항행의 자유, 개방된 시장 경제 등의 가치는 지역 및 글로벌 수준에서의 다자주의 및 개방적 지역주의를 지지해온 우리의 기본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인도-태평양 전략’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개방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가능한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방안을 모색, 한미동맹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미국이 강조하는 RBO에 대한 과도한 수사적 편승(rhetorical bandwagoning)은 주변국에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둘째, 미국이 역내 개도국들에 대한 민간투자 확대를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요소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신남방정책’과 경제적 차원에서 접점을 모색할 여지가 매우 크다. 아세안 및 인도양 지역 국가들에 대한 경제 다변화 및 외교적 외연 확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우리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이 중점을 두고자 하는 인프라, 디지털 경제, 에너지 분야의 협력 이니셔티브들은 상호 중첩되는 측면이 많은바, 양국의 정책 간 접점을 모색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들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개발협력, 인프라 개발, 정보통신기술(ICT) 및 사이버 안보 분야 등에서 미국 측 파트너 및 민간기업들과 실무차원의 협력 프로젝트 개발 및 추진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개발협력 분야에서는 우리 국제협력단(KOICA), 수출입은행과 미국 측 상대인 미국 국제개발처(USAID), 해외민간투자공사(IDFC) 간 정책 협의를 추진하고, 인프라 개발 및 ICT 분야에서 우리 민간 기업들과 미국 측 파트너들 간 양자 및 3자 협력 프로젝트도 적극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무적 차원에서 미국 측 파트너들과 구체적 협력 사업들을 발굴하고 추진함으로써 정부 및 민간차원에서 미국과 실질협력 확대하는 것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방향으로 보인다.
셋째,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소다자주의적 협력을 활성화하겠다는 입장인바, 이는 소다자주의 협력을 주요한 외교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우리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다만 소다자 협력의 대상을 특정국으로 한정하지 말고 미국, 일본, 호주 등 서방국가뿐만 아니라 인도, 중국 등과도 유연하게 소다자 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 이슈 분야별로 정책적 수요가 있는 경우 한·미·일, 한·미·호 뿐만 아니라 한·미·중, 한·중·일, 한·미·인 등 다양한 형태의 소다자 협력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중이 각각 자국이 중심이 되는 배타적 지역구도 형성을 위해 경쟁하는 상황보다는 그동안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매개체 역할을 해 온 아세안의 각종 제도적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향후 역내 지역협력이 전개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한다. 이러한 점에서 역내 지역제도 구축과 관련하여 우리와 유사한 입장을 가진 아세안과의 외교전략적 차원에서 협력 강화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지역구도 구축(Building Regional Architectures)”을 주제로 지난 8월 27~28일 베트남에서 개최된 인도양회의에서 많은 참가국들은 특정국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역내 국가가 참여하는 포용적(inclusive) 성격의 지역구도가 향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형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는 미국이 추진하는 중국 견제 성격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향후 미·중 간 대결 구도를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을 다수의 역내 국가들이 경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신남방정책’ 추진 차원에서 개방적·포용적 지역제도 구축 필요성을 미국에 적극 개진하고, 필요하다면 이에 관한 정책협의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다자주의 규범 및 제도를 강화하고 아세안 주도의 협력 메커니즘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면서, 역내 지역구도 형성과 관련하여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의 다양한 접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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