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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차 산업혁명의 성격
2. 4차 산업혁명과 국제정치 변화상
3. 4차 산업혁명과 한국의 과학기술외교 방향
최근 들어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마치 4차 산업혁명이 공상과학영화를 현실로 만들 것같이 묘사된다. 1984년에 개봉된 영화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를 보면, 2029년 미래에서 1984년으로 온 학습 능력을 갖춘 기계 ‘T-800’이 나온다. 요즘 용어로 표현하면 인공지능 ‘안드로이드(Android)’인 셈이다. 2029년이 10년밖에 남지 않은 현재,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진전은 ‘안드로이드’가 현실에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될 때에 국제정치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냐는 것이다. 세계가 여전히 주권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4차 산업혁명은 개인과 집단 단위를 넘어 국가 단위에서 느껴질 변화를 수반할 것이고, 국가는 그것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 4차 산업혁명의 성격
4차 산업혁명은 2016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언급된 이후에 세계의 관심사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은 또한 “인더스트리 4.0(Industrie 4.0)”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2011년에 독일 정부가 자신의 새로운 산업정책에 붙인 이름이다.
4차 산업혁명은 물리학, 디지털학, 생물학 등이 결합되는 기술 혁명으로 정의된다. 구체적으로 4차 산업혁명에 해당하는 영역은 나노기술(nanotechnology), 생명기술(biotechnology), 정보기술(IT), 통신기술(CT) 및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IT를 다양한 분야에 결합하여 과거와는 다른 생산성과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다. 2개 이상 기술의 결합으로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인간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물적 능력을 향상시키거나, 인간과 같은 사고(思考) 능력을 갖고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기계 제작, 새로운 물질 개발, 우주·심해 등 인간의 접근이 불가능했던 조건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견 4차 산업혁명이 새로워 보이기는 하나 완전히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IT가 4차 산업혁명의 중심이라고 할 때, 4차 산업혁명이 인식되기 전부터 3차 산업혁명(디지털혁명)으로서 빅데이터(Big data), 사물 인터넷(IoT),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로봇기술(Robotics), 유전자 편집(Gene editing)이 발전해가고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 기술의 결합을 가속화하거나 새로운 결합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 ‘진화(evolution)’이지 ‘혁명(revo- lution)’은 아니라는 관점이 존재하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진화인지 또는 혁명인지를 정확히 규정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 같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4차 산업혁명이 혁명이 아니고 진화라고 할지라도 현재의 기술 진전으로 볼 때 가까운 미래에 인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을 대체하는 4차 산업혁명이 21세기에 가져올 변화는 증기기관, 전기, 인터넷이 발생시킨 변화와도 다를 것이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되는 방식은 2차 산업혁명이 전개되는 방식과도 다를 것이다. 2차 산업혁명이 중심에서 주변부로 확산되고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서 채택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면,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세계화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새로운 기술이 도처에서 개발되고, 기술의 채택에 지역 간 시간 차이가 많이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4차 산업혁명은 동시적이고도 즉각적일 것이라는 의미이다.
4차 산업혁명은 본질적으로 기술에 관한 것이지만,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지 않을 사회 분야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비(非)기술적 변화가 가장 많을 분야로 경제가 꼽힌다. 인간을 뛰어넘는 데이터 처리, 인간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기계의 등장이 경제·상업적으로 무슨 혜택을 가져올 것인지, 그러한 변화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에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인간은 개인 또는 집단으로서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지, 또 어떤 도덕적 고려를 개입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시작 단계에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또한 정치도 변화시킬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회적 갈등의 원인과 패턴이 달라질 수 있고, 갈등관리 기제로서 정치의 역할과 대중의 정치참여 방식이 변화할 수 있다.
2. 4차 산업혁명과 국제정치 변화상
4차 산업혁명은 예외 없이 국제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권국가를 단위로 작동하는 국제관계에서 4차 산업혁명은 국내와 국제, 전쟁과 평화, 민간과 군대, 물리와 디지털, 공공과 개인 사이의 구분선이 흐려지게 할 것이고, 그것은 아래와 같은 효과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
⑴ 국가 경쟁력과 국제체제의 변화
4차 산업혁명은 거의 모든 산업 분야의 경쟁력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4차 산업혁명은 국가 경쟁력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국가를 강대국으로 등장시킬 수 있다. 2차 산업혁명이 국가 경쟁력, 더 나아가서 국제관계를 변화시킨 경험은 4차 산업혁명이 국제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짐작게 한다. 2차 산업혁명에서 석탄과 철광석은 승자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였고, 국가 간 기술적 비대칭은 지정학적 우열로 전환되었다(예: 유럽에서 영국의 우위). 4차 산업혁명도 역시 2·3차 산업혁명에 기반한 글로벌 세력균형에 변화를 가져올 기회이다.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생산방식과 생산품은 국가의 제조업 경쟁력을 변화시키고, 그의 공급과 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국가를 강대국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20세기에는 핵무기 보유가 강대국 지위를 결정한 요소였다면, 21세기에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보유가 강대국 지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4차 산업혁명 경쟁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갖는다. 미국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한 실제 목적이 무역적자 감축보다는 지적 재산권에 관한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압박하여 중국의 국가 주도 4차 산업혁명 정책 ‘제조업 2025’를 억제함으로써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국제정치적으로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기술, 안보, 경제 사이에 긴밀한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사회 전체가 기술 의존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안보의 대상(국가가 방어해야 할 대상)이 변화하고 민간과 군사 용도의 구분도 흐려질 것이다. 기술 중심적인 안보에서는 안보 재원(인력과 예산)이 투입될 대상도 변화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민간 용도로 개발된 기술이 안보로 전용되는 것은 물론이고, 안보 용도로 개발된 기술이 민간 용도로 전환되면서 기술, 안보, 경제 사이의 선순환은 과거보다 긴밀해지고 자원도 효율적으로 활용될 것이다.
⑵ 국가 안보·통상 환경의 변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강대국이 출현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국가들의 지위와 관계는 유동적일 수 있다. 에너지와 중공업 기술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에 기반한 국가 경제와 군사력은 지리적 이동이 한정됨으로써 국가 간 우열이 한동안 고정되고, 그래서 국제체제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이에 반해 이동성이 높은 기술 중심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국가 간 우열이 변화하기 쉽고, 국가의 우월한 지위는 단기에 머무를 수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제체제의 유동성이 국가들의 전쟁 가능성을 낮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4차 산업혁명 기술로 국가들은 군사적으로 침략하지 않고서 (또는 자국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상대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방법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보다 전쟁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고, ▲급속한 기술 진보는 국가들이 전쟁 결과를 오판하거나 과장된 위협 인식과 전략적 우위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공격적인 행동을 취할 인센티브를 높일 수 있으며, ▲국가들은 전통적인 전투에 해킹과 같은 비전투 행위를 결합시키거나 비국가 행위자를 대리자로 이용하는 혼합전쟁(hybrid war)을 수행할 수도 있다. 국제적 공격의 책임 소재를 확정할 수 없을 때 국제적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 안보 환경은 국가 행위자에 더하여 비국가 행위자 안보 위협의 증가로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핵무기와 달리 4차 산업혁명의 군사기술은 개발 비용이 낮아 민간이 보유하기 쉽고, 민간의 기술이 국가보다 앞서나간 부분도 적지 않다. 무인비행기(드론), 인공지능, 유전자 편집, 암호화, 감시 등 이중용도 기술은 이미 비국가 행위자들 사이에 확산되어 있다. 소위 “파괴 기술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destruction)”로 비국가 행위자가 상당한 정도의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파괴 기술의 민주화’는 무엇이 국가 안보를 구성하는지(민간 기업에 대한 해킹이 국가안보 위협?), 그러한 안보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 무엇이 적절한 대응인지를 불명확하게 만든다.
이로써 4차 산업혁명은 국제제도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규모와 영향으로 볼 때 국가들의 협력이 더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국가 경쟁력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은 글로벌 경쟁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하여 다양한 기술을 결합하는 4차 산업혁명은 전략적 이익에 불확실성을 가져오고, 미래 발전 방향도 예측하기 어려우므로 군축은 어렵고 군비경쟁은 심화될 수 있다(예: 자동화된 살상 무기가 공격과 방어 중 어느 쪽에 유리한지 불분명하여 자동화된 살상 무기 금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전쟁과 안보에 관한 국가 중심의 국제 제도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비국가 행위자에 의한 안보 위협을 다루는 데에 무기력할 수 있다. 또한 규제를 앞서가는 민간 기술의 발전 속도는 국가를 중심으로 한 국제제도를 약화시킬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오는 국제적 갈등은 안보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통상 분야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통상 기회를 수반하는 것과 동시에, ▲생산과 작동에 다양한 기술이 결합되어 있는 4차 산업혁명 상품은 그것이 상품인지 서비스인지 구분이 불분명하여 무역 규범 적용에 논란이 발생할 수 있고, ▲4차 산업혁명 상품의 노동과 안전성 기준에 대해 4차 산업혁명 선도국가와 후진국가 간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3. 4차 산업혁명과 한국의 과학기술외교 방향
4차 산업혁명이 경제적 기회와 지정학 모두에 중요한 만큼 2017년 하반기부터 국가들은 앞다투어 4차 산업혁명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하였다. 국가들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접근법과 리더십 어젠다를 내놓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초기 단계인 만큼 승자와 패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국가 차원의 대응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으로서 연구·개발(R&D) 강화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 기술이므로 R&D 없이는 기술도 없다. 다만 4차 산업혁명에서는 민간이 선도하는 분야도 많으므로 국가와 민간 행위자들의 관계 설정과 분업이 중요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과학기술외교’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과학기술외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에서 중요하다.
첫째, 4차 산업혁명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은 확실하지만 4차 산업혁명을 감당할 수 있는 자본과 기술력을 모두 갖춘 국가는 많지 않다. 그러한 경우에 유일한 대안은 국제 협력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과학기술외교는 한국의 강점을 살리고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어느 국가와 어떤 분야에서 협력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국가 전략의 문제이다.
둘째, 국제협력은 4차 산업혁명의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 차원에서 필요하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 통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빨리 확산시켜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이 즉각적이고도 동시적인 발생을 특징으로 한다면 파트너 국가가 많을수록 네트워크 효과도 높아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외교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국제규범의 수립에서 중요하다. 다자 국제기구에서 한국의 이익을 보장할 규범 또는 최소한 한국의 미래 발전을 차단하지 않을 규범을 수립하는 데에 이익을 공유하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본질적으로 기술에 관한 것이지만, 여기에서 외교가 담당할 부분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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