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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판문점 선언의 비핵화 의미
2.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평가
3. 북한 비핵화 촉진 방안
1. 판문점 선언의 비핵화 의미
남북한은 4월 27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하 ‘판문점 선언’) 제3조 4항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공동발표에서 이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오늘 김 위원장과 나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공동 목표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북측이 먼저 취한 핵 동결 조치들은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소중한 출발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남과 북이 더욱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한편, 판문점 선언에서 비핵화가 앞이 아니라 마지막 문항에서 언급되고, 또한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빠진 채 비핵화 목표만 합의한 것에 대해 국내외에서 비판적 견해가 없지 않다. 과연 판문점 선언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이 얼마나 진전되었는가? 필자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첫째, 판문점 선언은 북한이 2008년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한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대외적으로 ‘비핵화’ 목표를 천명하고 합의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가 있다. 특히 김정은 정권은 2013년에 핵무장을 전면에 내세우는 ‘병진노선’을 국가 노선으로 채택하고, 강도 높은 핵·미사일 도발을 계속 자행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 들어 처음으로 판문점 선언에서 사실상 핵무장의 포기를 선언한 셈이다. 향후 이행이 중요하지만, 10년 만에 핵무장 목표를 “완전한 비핵화” 목표로 급선회한 것 자체가 중대한 의미가 있다.
둘째, 일부 전문가들은 당초 한국 정부가 천명한 것과 달리 판문점 선언에서 비핵화 문제는 마지막 조문에서 다루어지고, 전체 내용도 남북관계 발전에 집중한 나머지 북핵 문제를 소홀히 취급했다고 비판한다. 사실 정부는 당초 3차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로 비핵화, 평화체제, 남북관계 발전 등 3개를 순서대로 제시했다. 막상 판문점 선언에서는 남북관계 발전, 군사적 긴장 완화, 비핵화와 평화체제 등 순서로 기술되었다. 그렇다면 남북관계 발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가 핵 문제 해결에 갖는 의미를 잠시 생각해 보자.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우리 특사단 면담과 북·중 정상회담에서 “안보 불안과 체제 불안이 없다면 핵무장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발언했다. 학계에서는 북한 핵무장의 가장 보편적인 이유로 안보 위기와 국내정치적 동기를 들고 있는데, 이는 김정은의 상기 발언을 뒷받침한다.
북한의 핵무장 동기를 분석하면, ▲남한과의 무한 안보 경쟁 및 남한의 흡수통일 거부, ▲적대국인 미국의 공격 가능성 억제, ▲체제 위기 안정화 등 3개를 들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핵무장 동기는 남한과의 무한 안보 경쟁 및 남한의 흡수통일 거부이다. 북한은 탈냉전기 들어 남북 간 경제력 차이가 50배로 벌어지고, 경제 위기와 체제 위기가 만연하자 남한의 흡수통일과 체제 위기를 거부하기 위해 핵무장을 선택했다. 이때 남북관계 개선과 군사적 긴장 완화는 남북 간 안보 경쟁을 완화시켜 북한의 핵무장 동기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문재인 정부는 줄곧 북핵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강조하였는데,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남북관계 개선과 군사적 긴장 완화는 바로 북핵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첩경이 될 것이다.
셋째, 이번 4.27 남북 정상회담은 6.12 북·미 정상회담과 사실상 연관되어 열린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북한과 미국 양측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협상키로 이미 합의한 만큼 남북 정상회담에서 중복적인 협상의 필요성은 없다. 다만 남북 정상회담에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북·미 정상회담에서 그 방법론을 협상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역할을 수행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
2.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평가
김정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 합의했지만, 과연 북한이 비핵화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그치지 않는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1)을 위반한 데서 시작하여, 반복되는 핵합의 위반을 본다면, 이런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북한의 비핵화 약속도 제재 해제와 핵무기 개발용 시간벌기를 위한 방책에 불과한가?
필자는 이번 북한의 비핵화 약속에 대해 과거의 약속과는 다르며, 실제 비핵화가 진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북한 비핵화 약속의 ‘진정성’을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다만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이 처한 각종 여건을 고려할 때, 비핵화 조치가 그들의 ‘이익구조’에 부합하기 때문에 비핵화를 추진할 것으로 판단한다.
만약 환경 변화에 따라 그들의 객관적 또는 주관적 이익구조가 바뀐다면 또다시 ‘평창 이전’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다만 현재로서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하고 이행할 것으로 판단하는 배경과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대회를 소집하여 비핵화를 위한 명분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등 비핵화를 위한 국내적 설득 작업에 나섰다는 점에 주목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27 남북 정상회담과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4월 2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했다. 여기서 김정은 위원장은 ▲병진노선의 승리 선포,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및 북부 핵실험장 폐기 결정,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 등을 발표하였다. 북한은 왜 갑자기 노동당 전원회의를 소집하여 병진노선의 승리를 선포하고 선제적으로 비핵화 조치를 취했을까? 김 위원장은 북한이 적대 국가인 남한 및 미국과 갑자기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평화 분위기로 급전환하게 된 배경에 대해 내부적으로 설명하고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핵 개발의 완결을 선언하고, 따라서 일부 비핵화 조치가 타당함을 북한 주민에게 알리고자 했다.
둘째, 이번 당대회 발표문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으로 인해 많은 고통이 있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제재가 이번 북한의 행동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병진노선의 경과를 보고하면서, “병진의 험난한 로정에서 우리 당은 오직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우리 인민에 대한 굳은 믿음을 안고 시련과 난관을 이겨내며 멈춤 없이 달려왔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대북 제재·압박의 고통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셋째, 병진노선의 성공을 기반으로 하여, 앞으로는 경제발전에 집중하고, 이를 위해 대외관계 개선도 추진한다는 새로운 경제발전 전략 노선을 제시했다. 최소한 명분론으로는 종래 핵무장에 집중하는 ‘선핵(先核)’ 노선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에 집중하는 ‘선경(先經)’ 노선으로 전환을 선언한 셈이다. 또한, 북한은 비핵화 조치를 통해 제재 완화와 해제를 유도하고, 국제사회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넷째, 북한은 특이하게 ‘선제적’ 비핵화 조치를 취했다. 이번 당대회 결정문을 통해 핵실험 중지, ICBM 시험발사 중지, 핵실험장 폐기, 핵실험의 전면중지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합세, 핵무기 사용금지, 핵무기와 핵기술 이전금지 등 비핵화 조치를 채택했다. 전례를 본다면, 북·미 협상에서 사용할 비핵화 협상 카드를 선제적으로 사용했다. 이렇게 중대한 비핵화 조치를 협상 이전에 취했다는 것은 이미 더욱 수준 높은 비핵화 조치를 내심 결정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3. 북한 비핵화 촉진 방안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즉각적, 전면적 핵 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소위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한다. 그런데 리비아와 북한의 핵무장 결정 환경과 핵 능력이 판이하므로, ‘리비아식’ 해법이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은 작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결정을 내렸다고 하나, 북한이 즉각적으로 모든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을 한 번에 모두 포기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단계적·동시적 이행”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현실적으로 “일괄 타결, 단계적 이행”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만 우리 정부는 단계적 이행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압축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북한의 대외정책이 급선회한 배경에 대해 제재·압박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더욱 강한 제재·압박으로 북한의 “결정적 양보”를 확보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 북한의 입장에서 새로운 동향이 자신의 국가 안보와 체제 안보에 오히려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게 되면, ‘평창 이전’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필자는 북한 비핵화를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한반도 평화공존체제 구축 논의도 병행하여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한반도 평화공존체제는 잠정적으로 한반도 정전과 분단 체제를 안정화시켜 북한이 느끼는 안보 위협과 체제 위협을 완화시킬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다음 3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남북 간 상호인정과 평화공존을 위한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한다. 이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불가침 합의’를 법제화하는 것이다. 남북기본협정을 남북한 국회가 각각 비준함으로써 이행 보장성과 지속성을 강화토록 한다.
둘째, 북·미 정상회담에서 수교 협상 개시를 선언하고,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에 합의한다. 북한은 자신의 핵무장 해체가 물리적 행위로서 불가역성이 높은 반면에 미국의 안전보장은 법·정치적 행위로서 가역성이 높아 상호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미국도 불가역성이 있는 대북 안전보장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수교 협상을 개시하고 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면 북한 비핵화 촉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남·북·미·중 4국 정상이 참여하는 ‘평화포럼’을 조기에 개최하여, ‘한반도 비핵·평화 선언’을 채택토록 한다. 비핵·평화 선언을 통해 평화체제의 비전과 개념적 로드맵을 제시하도록 한다. 또한 비핵·평화 선언에 종전 선언의 내용을 포함하여, 후자를 대체하는 효과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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