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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20 선언’의 배경
2. 4.20 비핵화 조치에 대한 평가
남북 정상회담(4월 27일)과 북·미 정상회담(5월)을 앞두고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돌연 4월 2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소집했다. 여기서 김 위원장은 ▲병진노선의 승리 선포,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북부 핵실험장 폐기 결정, ▲사회주의 경제발전 집중 등 새로운 전략노선과 비핵화 조치를 발표했다.
1. ‘4.20 선언’의 배경
작년의 극도로 긴장된 한반도 정세와 비교할 때, 최근 양 정상회담 개최 결정과 ‘4.20 선언’ 등 급작스러운 정국의 급반전은 세인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갑자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하여 병진노선의 승리를 선포하고 선제적으로 비핵화 조치를 취했을까?
첫째, 북한은 그동안 적대시하며 전쟁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던 상대방인 남한 및 미국과 갑자기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평화 무드로 급전환하게 된 데 대해 내부에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상황의 급진전은 북한이 사전에 기획했거나, 예상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김정은 자신도 현 상황에 대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변들이 연발하고 있는 경이적인 현실”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러면서도 김정은은 “지난해 국가핵무력완성을 선포한 후 우리의 주동적인 행동과 노력에 의하여 전반적 정세가 우리 혁명에 유리하게 급변”한다고 말해 현 상황이 북한의 주도로 만들어졌고, 북한에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핵무력건설이라는 역사적 대업을 5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완벽하게 달성한 기적적 승리는 조선로동당의 병진로선의 위대한 승리인 동시에 영웅적 조선인민만이 이룩해낼 수 있는 빛나는 승리”라는 설명을 통해, 북한 주민에게 공을 돌리고 새로운 상황을 수용할 것을 설득하고 있다.
둘째,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따라서 일부 비핵화 조치가 타당함을 북한 주민에게 알리고자 했다. 김 위원장은 핵 개발 경과에 대해 “핵개발의 전 공정이 과학적으로 순차적으로 다 진행되었고 운반타격수단들의 개발사업 역시 과학적으로 진행되어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되었다고 보고했다. 그 결과 북한이 “세계적인 핵강국”이며, “세계정치구도의 중심”이 되었다고 자평했다. 따라서 핵 개발 사업이 종결되어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 탄도로케트 시험발사도 필요 없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쳤다” 보고했다.
셋째, 이번 당 중앙위 전원회의 발표문에서 북한이 제재·압박으로 인해 고통받았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제재가 이번 북한의 행동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병진노선의 경과를 보고하면서, “병진의 험난한 로정에서 우리 당은 오직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우리 인민에 대한 굳은 믿음을 안고 시련과 난관을 이겨내며 멈춤 없이 달려왔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제재·압박의 고통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그처럼 어렵고 곤난한 속에서도 병진로선의 승리를 굳게 믿고(…)”,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을 갖추기 위하여 허리띠를 조이며 간고 분투하여 온 우리 인민(…)” 등 표현도 지난 수년간 제재·압박의 고통을 증언하고 있다.
넷째, 김 위원장은 새로이 경제발전을 위한 개혁·개방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를 위한 명분을 찾고자 했다. 김 위원장은 “나라의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강력한 사회주의경제를 일떠세우고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투쟁에 모든 힘을 집중”하고, 또한 “사회주의경제 건설을 위한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며 (…)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를 적극”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이 입장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끝까지 저항해야 하며, 온갖 제재와 고립을 무릅쓰고라도 핵무장해야 한다는 종래 입장과 크게 다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병진노선의 승리와 핵무력 완성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경제발전을 명분으로 개혁·개방과 외교 관계 개선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2. 4.20 비핵화 조치에 대한 평가
4월 20일 소집된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로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 결정서를 채택하였다. 6개 항의 결정서에서 비핵화 조치를 포함한 4개 항은 아래와 같다.
첫째, 당의 병진노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과정에 임계전 핵시험과 지하핵시험,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초대형핵무기와 운반수단개발을 위한 사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여 핵무기 병기화를 믿음직하게 실현하였다는 것을 엄숙히 천명한다.
둘째, 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다. 핵실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실험장을 폐기할 것이다.
셋째, 핵실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실험의 전면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다.
넷째,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결정서에서 눈에 뜨이는 비핵화 조치로 ▲핵실험 중지, ▲ICBM 시험발사 중지, ▲핵실험장 폐기, ▲핵실험의 전면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 절대 사용금지, ▲핵무기와 핵기술 이전금지 등이 있다.
그렇다면 이 비핵화 조치의 의의는 무엇인가?
첫째, 행동을 동반하는 실체적인 비핵화 조치로서 ▲핵실험 중지, ▲ICBM 시험발사 중지, ▲핵실험장 폐기 등이 있다. 여기서 ‘핵실험 중지’는 북·미 정상회담의 전제조건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이 이미 구두 약속한 것을 정책 결정의 수준으로 올리고, 이를 내부문서화한 의미가 있다.
둘째, 핵실험에 대한 기존 북한의 입장은 북·미 대화 기간에 핵실험을 일시중단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핵실험장 폐기” 결정과 관련시켜 볼 때, 일단 ‘핵실험 영구 중단’을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 결정에서 ‘폐기’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일시적인 ‘폐쇄’를 넘어서는 불가역적인 조치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는 풍계리 핵실험장이 과도히 오염되었거나 붕괴 우려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분석을 들어 금번 ‘폐기’ 결정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핵실험장 폐기’ 결정이 실제 실행되고 검증된다면 의미 있는 비핵화 이정표가 될 것이다.
북한이 6회 핵실험을 실시한 후 ‘핵탄두 개발 완성’ 및 ‘핵실험장 폐기’를 선언한 배경을 이해하는데 다른 핵무장국의 핵실험 사례가 참고될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상의 핵국 이외에 추가로 3개 핵무장국이 있는데, 이 중 인도와 파키스탄은 1998년에 각각 5회씩 핵실험을 실시하여, 핵탄두 디자인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 사례에 따르면, 북한도 핵실험을 6회 실시하여 핵탄두 디자인을 일단 완성했을 가능성이 높아 추가 실험 필요성이 크게 줄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미사일 발사시험 중지와 관련, 김정은이 초기 발언에서 ‘중·장거리 미사일’의 시험발사가 필요 없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막상 최종 결정문에는 ‘ICBM 발사 중지’만 채택된 점이 눈에 띈다. 트럼프 행정부가 특히 ICBM 시험발사와 개발을 집중적으로 저지하려고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ICBM 발사 중지’는 북·미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결정문을 엄격히 해석하면, 북한이 ICBM 시험을 중단할 뿐, 이미 개발 완료되거나 배치된 중·장거리 미사일을 그대로 보유하고, 또한 생산도 계속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이 단·중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또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민수용 로켓을 시험 발사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유엔안보리 결의가 모든 탄도미사일의 시험발사 중단을 의무화하고 있어, 현재와 같은 대화 무드가 지속되는 한 북한이 단·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가능성은 낮다.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 중·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거부감을 고려할 때, 향후 북·미 정상회담에서 특히 ICBM의 전면적인 폐기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넷째, “핵실험의 전면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한다는 결정을 보면, 향후 북한이 전면핵실험금지조약(CTBT)에 참가할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CTBT는 중요한 핵군축 협정이지만 아직 필수 참가국이 서명·비준하지 않아 발효되지 않고 있다. NPT에 북한이 재가입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해야 하지만, CTBT는 핵무기를 보유한 채로 가입할 수도 있기 때문에 북한이 핵군축에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가입할 가능성이 있다. CTBT의 발효에 필요한 44개 필수 참가국 중에서 비서명국은 북한, 인도, 파키스탄 3개국이므로, 북한의 서명은 다른 비서명국에 압력이 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한편 서명했으나 비준하지 않은 국가로 미국, 중국, 이집트, 이란, 이스라엘 등 5개국이 있는데, 북한이 CTBT에 서명하고 비준까지 하게 되면, 핵실험 금지 부분에서는 이들 국가보다 앞서게 된다.
다섯째,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 절대 사용금지” 결정은 북한의 기존 핵교리를 반복한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핵 ‘일차 불사용’에서 ‘핵 선제공격’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없이 다양한 핵교리를 발표했다. 기존 북한 입장에 따르면, 한국은 핵국인 미국과 동맹국으로서 한반도에서 한국 또는 미국의 군사행동(한·미 연합군사훈련 포함)은 항상 핵위협을 동반하고 있으므로, 북한의 ‘핵 선제공격’ 대상이 된다. 이번 새로운 결정문도 사실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그런데 최근 정의용 대북특사가 방북 후 발표한 언론발표문(2018.3.6.)에 따르면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다고 한다. 핵무기 사용에 있어, 이번 결정문과 대북특사 발표문 사이에 차이가 있다.
여섯째, ‘핵무기와 핵기술 이전금지’ 결정은 국제안보 측면에서 중대한 의미가 있다. 특히 미국은 중동지역 국가나 테러그룹에 북한의 핵무기·핵물질·핵기술 등이 이전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어, 이 결정에 주목하며 일방적인 정책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효과적으로 집행되기를 강력히 원할 것이다. 이때 한·미 정부가 북한의 ‘핵안보’ 체제 구축을 지원하는 방안이 있다.
사실 북한의 이번 비핵화 조치는 완전 핵폐기(CVID)로 가는 수많은 비핵화 조치 중에서 초보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작년 연말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자행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크게 위협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 상황은 매우 의미 있는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향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이번 결정문에 언급되지 않았던 비핵화 조치가 합의되고 실행되기를 기대한다. 예를 들면, ▲일체 핵탄두 신고와 처분, ▲일체 핵분열물질 신고와 처분, ▲일체 핵분열물질 생산시설의 신고와 폐기, ▲일체 핵무기 생산시설의 신고와 폐기, ▲중·장거리 미사일 신고와 폐기, ▲중·장거리 미사일 생산시설 신고와 폐기, ▲NPT 복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추가의정서(AP) 가입, ▲CTBT 가입, ▲핵안보 협정 가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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