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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은의 전격적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 개최
2. 김정은의 방중 결정 배경과 요인 평가
3. 북·중 정상회담의 여파 및 대응 방향
1. 김정은의 전격적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 개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이 3월 25~28일 북경을 방문하여,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정은의 “전격적인 제안”에 따른 “비공식 방문”이었지만, 중국 측은 의장대 사열, 정상회담, 환영 만찬, 공연 관람, 환송 오찬 등 ‘국빈방문’의 예우로 환영했다. 부인 리설주의 동반과 행사 참석도 ‘국빈 방문’ 형식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중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우선 청와대 대변인 논평(3.29)에서 북·중 정상회담을 환영하고, 동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의지를 확실히 밝힌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 한반도 평화 논의에 참여하게 된 것은 한반도 정세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한편, 중국은 양제츠(楊潔篪) 외교 담당 정치국 위원을 방한시켜 문재인 대통령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각각 북·중 정상회담 결과를 상세히 설명(3.29-30)하였다. 한·중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한·중 공조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협의하고,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는데 필요한 협력을 계속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이번 김정은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은 김정일 사망(2011.12) 이후 권력을 계승한 김정은의 첫 해외 방문이자, 첫 정상회담에 해당된다. 김정일의 마지막 방중이 2011년 5월이었으므로, 약 7년 만에 북·중 정상회담이 열리는 셈이다. 김정일이 뇌졸중에서 회복된 이후 2010~2011년간 2년에 걸쳐 3회를 방문하면서, 소위 ‘북·중 긴밀화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김정은의 친중파 장성택 처형(2013), 모란봉악단 귀국 사건(2015), 핵·미사일 다발 시험발사(2016-17) 및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 등으로 인해 북·중 관계가 근래 경색 국면을 넘어, 크게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급기야 2017년 12월 쑹타오(宋涛)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시진핑 주석의 특사로 방북했으나,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과 시진핑 주석의 극진한 대접으로 양국 관계가 급반전하고 있다. 이번 방중 행사로 상당 기간 단절되었던 북·중 간 정상외교, 당외교, 정부외교 채널이 복구되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악화일로에 있던 북·중 관계에서 왜 반전이 발생했는가, 왜 김정은은 갑작스럽게 중국을 방문하고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키로 결정했나, 어떤 메시지를 중국과 미국에 전달하고자 했나, 또한 향후 북·중 관계의 지속적 개선 여부, 북한의 비핵화 약속 이행 여부, 북·중 간 비핵화 해법에 대한 합의 여부, 북핵 협상에서 중국의 역할 및 대북제재 유지 여부 등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2. 김정은의 방중 결정 배경과 요인 평가
김정일의 전격적인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 개최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외교적 기습(diplomatic surprise)’이었다. 급물살을 탄 현 한반도 정국에는 한국과 북한과 미국만 보였기 때문에 심지어 “차이나 패싱(China Passing)”이라는 용어마저 횡횡하던 차에 김정은의 방중은 모두의 허를 찌른 셈이다. 그렇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왜 갑작스럽게 방중을 결정하고 북·중 정상회담을 추진했을까? 아래와 같은 북한의 동기와 전략에 주목한다.
첫째, 김정은의 방중은 세력정치와 전략론의 격언에 따른 전형적인 ‘진영 강화’와 ‘배후 다지기’에 해당된다. 기본적으로 영합적(zero-sum) 경쟁 관계에 있는 남한 및 미국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호세력이자 배후세력인 중국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은 외교 또는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론의 기본이다. 이는 2010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일이 방중한 것, 그리고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정부의 고위인사들이 방미하여 미 정부와 긴밀히 공조 체제를 구축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근래 중국의 비판과 제재를 받으면서 반발하기도 했지만, 진짜 적대세력과 담판을 앞두고 배후세력이자 전통적인 우호세력인 중국과 다시 화해하고 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북한의 선택은 일시적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항구적인 국익과 지정학적 요구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에 해당된다고 본다.
둘째, 중소국으로서 강대국 사이에 낀 ‘중심축 국가(pivot state)’인 북한은 전통적으로 ‘이이제이(以夷制夷)’ 또는 등거리외교 행태를 보였는데, 이번에도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통적인 ‘이이제이’ 외교를 재가동했다.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와 강한 자주성을 감안할 때 이런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은 국가생존의 핵심 DNA에 해당된다. 과거의 ‘이이제이’가 중·소 경쟁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미·중 경쟁을 이용하려는 점이 다를 뿐 그 전략의 본질은 같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을 단순히 ‘배후세력’으로 이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미국의 압력을 회피하거나 분산시키고, 심지어 미국과 대리전에 나서도록 하는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자 한다. 중국도 자신의 국가안보 이익을 위해 접경국인 북한을 자신의 영향권 내에 묶어두기 위해 상당한 보상과 희생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항간에 떠돌듯이 북한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미군 주둔을 허용하는 것은 중국에 상상하기조차 싫은 악몽의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셋째, 김정은은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통해 “차이나 패싱”에 대한 우려를 친히 불식시켜 줌으로써, 북·중 간 전통적 우호 관계를 회복하고, 북한의 국가안보와 김정은의 정권안보를 강화시키는 효과를 노렸다. 김정은 위원장은 방중 동안에 ▲“전례 없이 격변하고 있는 조선반도의 새로운 정세 속에서 위대한 조중친선의 오랜 력사적 전통과 혁명적 의리를 변함없이 지키며 조중 두 나라 관계를 대를 이어 훌륭히 계승 발전시켜 나갈 일념을 안고”, ▲“나의 첫 외국방문의 발걸음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가 된 것은 너무도 마땅한 것이며 이는 조중친선을 대를 이어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고 이어나가야 할 나의 숭고한 의무로 되며” 등의 발언을 통해, 북·중 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양국 관계에서 중국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듯이 발언했다. 시진핑 주석은 “돌아온 탕아”를 환영하듯 김정은 위원장을 극진히 환대하고 부추겼다. 세계적 강대국의 지도자인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하고 환대함으로써, 결국 중국이 북한의 국가안보와 정권안보를 지지하고 보장한다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넷째,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은 자신의 비핵정책과 대화정책을 사전에 중국에 설명하고 이에 대한 동의와 지지를 구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김정은은 ▲“주동적으로 긴장한 정세를 완화시키는 조치를 취했고 평화로운 대화를 진행할 것을 건의”,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유훈에 따라 반도 비핵화의 실현에 진력하는 것은 일관적이고 변함없는 우리의 입장”, ▲“북남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키고, 북남 정상회담을 거행하고, 미국 측과 대화하고, 조·미 정상회담을 가지기로 결심”, ▲“남조선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호응하고, 평화적·안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단계적이고 동기화한 조치를 취한다면 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 ▲이 과정에서 중국과 전략적인 의사소통 및 전술전략적 협동 강화 등의 입장을 중국에 제시했다.
이런 북한의 입장은 중국의 한반도 정책인 ▲한반도 비핵화 실현, ▲북핵 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해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전쟁 반대),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대규모 기동의) 한·미 군사훈련 중단의 ‘쌍잠정(雙暫停)’, ▲비핵화와 평화협정 프로세스의 ‘쌍궤병행(雙軌竝行)’ 등과 양립 가능하므로, 중국이 북한의 입장을 수용하고 지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김정은이 동 입장을 시진핑 주석에게 직접 설명하였고, 양측이 언론에 공포한 만큼 향후 중국은 북한에 이의 준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북한은 옥좨오는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경제봉쇄와 예방공격 가능성을 저지하는 데 중국의 도움을 요청하고자 했다. 사실 북·중 국경은 1500㎞이고 국제적 감시의 눈길이 북·중 국경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어, 중국의 유엔안보리 제재결의 이행과 협조 여부는 대북제재가 성공하는지에 대한 관건이었다. 최근 북한이 과도한 핵·미사일 실험으로 중국을 도발하였고, 또한 미국의 대중 압박이 효과를 거두어 대북 제재·압박이 북한에 큰 고통이 되었다. 더욱이 미국이 대북 경제봉쇄, 석유공급 전면 차단, 예방공격 등을 위협하자, 북한은 이를 저지시키기 위해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런 북한의 우려 사항을 중국이 해소하는 대가로 북한은 중국에 ▲핵·미사일 도발 중단, ▲중국의 북핵 해법 수용, ▲북·중 전략대화 확대, ▲미·북 등거리정책 포기 등을 직간접으로 약속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 중국도 북한이 비핵화 약속과 상호 조치를 충실히 이행한다는 전제하에서 추가 제재와 군사 조치를 반대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을 수 있다. 또한, 중국이 양자 차원에서 대북제재 조치를 완화하고 교역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3. 북·중 정상회담의 여파 및 대응 방향
오늘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전은 동북아판 ‘거대게임(Great Game)’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군사적 밀집도가 높고, 미·중 간 안보·국익이 충돌하는 한반도에서 남북한과 세계적 강대국들이 각각 자신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한반도 정국이 매일같이 급변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직접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를 주도하면서 종래 관료와 전문가 중심의 북핵 문제 관리체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속도가 빠르다.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정(路程)의 중간역과 종착역이 어디가 될지는 누구도 가늠키 어렵다.
과연 이번 북·중 정상회담이 우리가 추구하는 한반도 비핵평화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우선 북·중 정상회담은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에서 일부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 차원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핵·미사일 도발 중단, 비핵화 목표 확인,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 추진 등을 확인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사실 남북관계는 기본적으로 불안정성이 매우 높아 어떤 약속도 금방 무너지는 모래집에 불과하다. 또한, 최근 북한의 입장은 한국에만 전달되어, 그 진정성과 이행 여부에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방중을 통해 북한이 중국에, 그것도 김정은이 시진핑에게 직접 약속한 것은 그 신뢰성과 이행 여부를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다음,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에 다시 참여하는 의미가 있다. 최근 한반도 정국은 남·북·미 삼국이 주도한 결과, ‘차이나 패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국이 소외되었다. 그런데 중국의 국제적 위상과 한반도 이익을 감안할 때 중국의 참여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중국 참여 시 행위자와 변수의 증가로 인한 문제점도 있지만, 중국 배제가 초래할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제정치이론 분야의 권위자인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시카고대 교수가 최근 한 국내 강연에서 중장기적으로 ▲한반도에서 미·중 경쟁의 첨예화, ▲북한의 핵 보유 장기화, ▲남북 분단의 고착화, ▲북한의 중국 영향권 내 포섭 등을 경고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예상치 못한 중국 및 북·중 관계 변수의 개입으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추진하려고 했던 북핵 문제의 일괄타결과 조기 해결이 지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최근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미·중 4자 평화협정’을 제안했다는 언론 보도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돈 속에서 국민과 정치가 요구하는 한반도 비핵평화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 외교는 전략기획과 위기관리 역량을 최고조로 발휘해야 한다. 전략기획을 위해 비핵평화체제 로드맵을 작성하고, 이에 대해 국내외의 공감대를 구축해야 한다. 이때 북핵 해법을 둘러싼 많은 혼선과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반도 비핵평화체제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숨어있어,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아울러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도 반드시 발생할 것이므로 이에 대비한 대응원칙도 마련되어야 한다. 일련의 정상회담을 통해 어렵게 찾아온 한반도 비핵·평화 정착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성과를 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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