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o:abstract |
현지정책연구과제 2010-2
중동지역 정체성 층위와 구성주의 적용에 관한 연구
요약
Ⅰ. 서론
중동지역의 정치적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적 틀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국제정치 주류학계의 이론과 맥을 같이 했다. 즉 중동 아랍지역에
분포하는 힘의 역학관계를 냉전 시기의 동맹관계로 설명하는 현실주의 이
론이 주류였다. 이에 따라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가인 이스라엘의 확고한
지위, 걸프 보수 왕정국가들의 친미 노선 견지, 여기에 소비에트와 친화적
성향을 보였던 아랍 혁명 공화정 국가들(이집트·시리아·이라크 등)의 노선
등을 설명함에 있어 현실주의는 매우 정확한 이론적 틀이었다.
군사적 동맹관계를 설정하고, 이에 따라 이분법적 진영론이 형성되었던
냉전 시기의 역학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현실주의의 틀은 냉전 이후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사실상 중동지역에서 현실주의를 갈음하는 자유주의 또
는 제도주의적 접근법은 큰 적실성이 없었다. 물론 다양한 형태의 평화협
상이 진행되었고,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과정에서 팔레스타
인 최종 지위를 논의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자유주의적 행태가 감지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시 이 과정에서도 미국과 서방의 힘의 동학이 작
동하고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다자적 협력,
예를 들어 아랍연맹(League of Arab States)이나 걸프 협력 위원회(GCC:
Gulf Cooperation Council) 등도 자리잡아 왔다. 그러나 그 실행력이나 영
향력의 수준은 현실주의적 역학을 넘어서기에는 부족했다.
냉전의 붕괴는 인식론적 혼란을 초래했다. 즉 과거에 익숙했던 삶의 양
식, 그리고 국가의 자리매김 기준이 일시에 붕괴된 것이었다. 자유진영을
표방했던 미국과 서방이 중동에서 권위주의 정권과 냉전적 관성을 지닌
동맹관계를 유지할 동인이 약화되었다. 주적이 사라진 상태에서 아랍의 권
위주의 체제는 오히려 서방 세계에는 짐이 될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새로
운 세계의 도래는 새로운 사유의 기반을 요구했다. 중동의 경우 오토만 제
국 이후 시작된 유럽 식민주의 시대의 도래, 그리고 2차 대전 종전 후 이어
진 냉전의 시대를 거치면서 사실상 자신들만의 국제정치 이론과 관련된
사유의 기회가 없었다. 이제 냉전의 붕괴와 진영론의 해체는 새로운 정치
적 견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뮤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의 문명담론은 사실상 이러한 요
구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이었다.
1 그는 소위 문명이라는 틀을 통해 새로운
역학관계를 제시했다. 즉 이념에 의해 이항대립적 구도를 형성해왔던 냉전
적 갈등구도가 냉전 해체 이후 새로운 갈등구도로 치환되었음을 강조한다.
새로이 등장한 갈등구도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역사적 연원을 갖는
다고 보았고, 역사적 연원은 문화적 맥락성을 획득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특정한 지역 및 범위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에 기반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인식의 형상화, 또는 물화의 결과가 문명(civilization)이라고 규정했고, 헌
팅턴은 이러한 범주를 바탕으로 국제정치 질서의 동학을 예측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문명의 충돌 담론이다.
이념의 선명한 대조가 소멸되고, 이를 갈음하는 어떤 형태의 대조 요인
(constratst factors)들이 등장할 것인가가 당시 1990년대 초중반 초미의 관
심사였을 것이다. 즉 과거 식민주의 경쟁 시대의 민족주의적 담론은 나치,
파시스트 및 일본 군국주의를 불러 일으켰고, 이들과 여타 선발 식민국가
가 소위 연합국과 추축국의 대립을 보여주는 대조 요인이었다. 이러한 극
우 민족주의와의 이항대립 양상은 냉전에 접어들면서 이념, 즉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구도로 전개된다. 헌팅턴이 제시했던 냉전 이후의 대조 요
인은 바로 문명이었고, 문명은 역사를 관통하면서 그 지역 인접 공동체에
켜켜이 축적되어 온 종교·문화적 습성과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볼셰비즘(Bolshevism)의 등장 이후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념대립
과는 달리 헌팅턴의 논제는 역사적 반추를 기초로 한다. 무엇보다 전 세계
의 문명권을 7개의 유사 역사 공동체권으로 분류하고 서양을 대표하는 유
태 기독교 문명권(Judaeo-Christian civilization)이 이슬람권과 충돌한다
는 가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문명담론의 등장은 이제 더 이상 생산
양식에 대한 논쟁(시장 경제 대 공동 생산 경제)이나 선발 식민국가와 후
발 주자 간의 식민지 쟁탈 등과 관련된 소위 유물론적 접근은 폐기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새로운 형태의 분쟁과 갈등, 그 역학구도를 견인하는 요인
이 등장한다고 보았고, 그것을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냉전 붕괴 이후 국제사회와 중동지역에서 주목을 받으며 등장
한 문명담론에 관한 이론적 검토를 시도했다. 즉 국제정치 이론의 새로운
조류인 구성주의적 토대를 바탕으로 중동의 다양한 정체성 층위를 설명해
낼 수 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여전히 현실주의적 이론 틀과 제도 구축의
시도들이 현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동사회 내면에 자리잡은 정체성
과 인식의 문제들을 국제정치의 설명적 도구로 끌어낼 수 있는지, 그 적실
성을 검토하였다. 먼저 앞부분에서는 구성주의 이론에 대한 개괄적 검토,
그리고 중동지역에 현존하는 정체성의 층위를 살펴보았다. 후반부에서는
과연 이러한 구성주의적 접근이 중동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최근에 가장 두드러지는 설명 사례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제시함으로써
이 지역을 관통하는 새로운 이론 틀로서 구성주의의 의미를 다루었다.
Ⅵ. 결론: 한국에의 시사점
한국의 중동인식은 매우 피상적이다.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인식의 지
평을 넓히려는 노력은 그동안 일천했다. 따라서 중동은 몇 가지의 표피적
인 이미지로 다가왔고, 사실상 한국과 중동 간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도 석
유와 건설수출 시장이라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인식의 기반이 취약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대중동 외교의 인프라도 역시 피상적
인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인식의 수준이 높지 않고 이해가 표피적
일수록 한국의 대중동 정책도 유사하게 진행된다.
따라서 향후 중동정책의 진전과 발전을 위해서는 결국 중동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실적 역학관계에만
집중하고, 구체적인 힘의 분배 및 정세 추수에만 급급한 대중동 인식에서
탈피하여 역사·문화적 맥락을 바탕으로 한 구조적 인식론을 세우려는 노
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의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중동의 사례는 구성주의의 메카니즘으로
분석할 수 있는 유의미한 조건을 갖춘 지역이다. 다양한 역사·문화적 맥
락이 침착되어 있는 중동사회에 대한 이해는 그들의 정체성 인식에서 출
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어진 조건과 환경의 역학관계
그 물리적 배경 속에서만 중동의 정세와 대외관계가 규정되는 것이 아니
라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한국사회의 이슬람 이해가 매우 척박한 수준임을
감안하여 다양한 이슬람 내러티브를 도출·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
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아랍 소사이어티 등의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기존
의 관계 수립 위주의 사업 성격 외에도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현지 이해
프로그램을 운영하여야 한다.
나아가 앞 장에서 기술한 것처럼, 현재 중동이 경험하고 있는 미증유의
정치변동은 향후 중동의 정치 질서 지형을 새롭게 재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상황에서 중동 아랍의 대중들이 과연 지금까지처럼 이슬람의 가
치에 자신들의 미래를 계속 투사할 것인지, 아니면 중동 아랍권 지역에 녹아 있는 또 다른 정체성의 측면들을 발굴해서 아랍의 미래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현재 이집트와 튀니지는 이미 민주주의 국가
건설 과정에 진입해 있다. 여전히 이슬람의 가치를 이집트의 미래에 엮어
야 한다는 무슬림 형제단의 목소리부터 완전한 세속화를 달성해서 현대적
이집트를 건설해야 한다는 급진적 진보주의자까지 이집트의 정치 공간에
어울려 있다.
이 과정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이집트를 필두로 중동의 정치지형 변화에
조응하여 우리의 대중동 외교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전술한 구성주의
적 접근과 정체성의 인식이 일차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차제에 중동의 미래
를 예측하고, 이에 따라 평화와 번영을 담보할 수 있는 한국식 발전모델
교류를 위해 보다 면밀하게 중동의 정체성과 역사적 맥락을 연구하고 살피
려는 자세가 시급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