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o:abstract |
정책연구과제 2009-07
세계 식량위기와 공적개발원조(ODA)
교수 강선주
요약
2007년 하반기부터 식량 가격이 폭등하면서 많은 국가들에서 식량 확보
가 국가적 사안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 상황은 식량을 수입하는 국가들과
만성적인 식량 문제를 안고 있는 개도국들에서 특히 심각하였다. 게다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로 전 세계적으로 저영양(undernutrition) 상태
에 있는 인구의 숫자가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
식량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고 인간이 배고픔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은 기본 권리이다. 그러므로 개도국의 식량위기에 대해 국제사회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에 더하여 국제사회는 식량위기가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개도국에서 인도주의적 위기를 넘어서 사회
경제 정치 안보가 얽힌 복합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식량위기에 대한 일차적인 대응은 기아에 직면해 있는 인구에게 긴급구
호 식량을 전달하는 것이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식량 수요에 비례하는 만큼
식량 생산(공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는 공적개발원조(ODA)의 영역
으로서, ODA가 개도국의 복지 향상과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 만큼
식량위기 해결은 ODA의 대상이기도 하다.
‘식량 위기’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는 식량안보(food security) 개념과 반
대되는 상황, 즉 활동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안전하
고 영양 있는 충분한 식량에 물리적 및 경제적 접근이 가능하지 않은 상태
이다.
1970년대의 식량위기가 식량 절대량의 부족 또는 식량에의 물리적 접근
이 불가능해져서 발생한 위기였다고 한다면, 2000년대의 식량위기는 식량
에의 경제적 접근(accessibility)이 불가능해져서 발생한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식량위기 원인을 살펴보면, ▲공급 측면에서는 식량 생산 및 재
고 감소, 고유가에 따른 생산 비용 증가, 개도국의 식량 생산기반 붕괴 때
문이고, ▲수요 측면에서는 신흥시장 국가들(특히 중국과 인도)의 식량 소비 증가, 식량의 바이오 연료로의 전용 때문이며, ▲수급 외적인 측면에서
는 국제 곡물시장내 투기자금 유입, 자원 민족주의 대두 등의 요인들이 작
용하였기 때문이다.
중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최근의 곡물 가격 폭등은 과도기적 현
상이며, 점차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식량농업기구(FAO)는 곡물
가격이 과거만큼 낮은 수준(1997~2006년 간의 평균 가격)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 이유는 ▲고유가의 지속 ▲경작지 확대의 한계,
▲기후변화에 따른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 심화와 바이오연료 사용 증가
추세, ▲경제성장과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수요의 지속적 증가 ▲개도국
의 식량 증산 인프라 취약 ▲WTO 무역협정에 따른 농업보조금 규제 등
새로운 요인들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식량의 생산과 소비는 인간의 경제활동이지만 식량위기가 경제 문제로
머물지 않을 수 있다. 즉 식량위기가 사회적 동요, 더 나아가서 정치적 불
안을 초래할 정도로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선진국과 달리 위기 대응력을
결여하고 있는 개도국에서는 식량위기가 정치 불안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식량위기는 정치경제적으로 식량 관련 이슈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국제
관계를 재조직할 수 있는 외교적 기회도 될 수 있다는 함의를 가진다. 즉
식량 부족 시기에 식량을 국제적 권력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고,
식량과 비식량(non-food) 이슈를 연계함으로써 식량 외교가 가능하다.
식량 위기가 단순히 인도주의적 경제적 위기를 넘어서 정치 안보적 충
격도 가져올 수 있음에 따라 세계는 식량 위기를 개별 국가의 문제가 아닌
공통의 문제로 간주하고 대응책들을 논의하고 있다. 식량 위기가 수요 증
가와 공급 감소, 시장 외적 요소의 복합으로 일어나므로 위기 극복에 관한
논의도 위기의 원인별로 다양한데, 그 이면에는 개도국 선진국, 선진국 선
진국 간의 입장이 교차하고 있다.
첫째로, 식량 비축과 관련하여, 2008년 4월 UN 산하기관들과 개발 관련
국제기구들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인도주의적 구호에 쓰일 실제 및
가상 식량 비축 계획을 새롭게 제안하였는데, 선진국들은 2009년 G-8 라퀼라 정상회의에서 충분한 긴급 식량원조를 보장하면서 가상 국제 식량재고
관리를 조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둘째로, 최근 식량위기가 식량 가격의 상승에 의한 것이므로, 식량 가격
의 변동성을 줄이고 미래의 식량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농업무역의 자유화
를 실현하는 방안이 주장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농업 무역 자유화를 통한
식량위기 해결을 선호한다.
셋째로, 개도국들과 NGO들은 2000년에 시작된 도하라운드(Doha Round)
의 타결이 개도국의 식량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라면서, 농
업의 ‘공익적 가치’ 및 ‘비무역적 가치’(non-trade value)를 강조하며 농업
무역 자유화 조치의 철회와 각국이 식량 농업 축산업 어업 체제를 규정할
수 있는 ‘식량 주권’(food sovereignty)을 주장한다.
넷째로, 식량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는 식량위기에 취약한 개도국들
에서 식량 생산능력 확충이라는 데에 선진국과 개도국, 식량 수출국과 식
량 수입국 사이에 국제적 합의가 형성되고 있으나, 실질적 이행 문제가 남
아 있다.
다섯째로, 고유가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으로서 곡물을 이용한 바이오
에너지 생산에 관한 새로운 국제적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요구
가 일고 있다. 그리하여 식량안보와 양립할 수 있는 기후변화 대처는 식량
가격에 영향은 적으면서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 효과가 높은 ‘제2세대 바이
오 에너지’ 생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개도국에 필요 식량을 제공하거나 식량 생산능력을 증가시키는 것은
개도국의 복지 향상과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 만큼 ODA의 대상이기
도 하다. ODA를 활용한 식량위기 대처는 직접 식량을 제공하는 식량원
조이다.
식량원조에는 3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프로그램 원조’(program aid)
로, 수혜 대상자를 명확히 지정하지 않은 채 원조 제공국이 승인한 원조
수원국의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 필요한 재원(“counterpart funds”라
고 부름)을 국내에서 동원하기 위해 원조 수원국 시장에 판매하는 식량이
다. 두 번째 형태의 식량원조는 프로젝트원조(project aid)로, 학교급식(school feeding programs) 또는 식량지급노무(food-for-work or food for
assets schemes)와 같이 원조 수원국내에서 수혜 대상자가 명확히 지정된
식량 제공이다. 마지막으로 ‘긴급구호 원조’(emergency humanitarian aid)
는 급작스런 인위적 또는 자연재해 발생 시에 제공하는 식량으로서 난민
(refugees)과 국내이재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을 위한 보조적인
급식 프로그램에 사용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식량원조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긴급구호 원조인데, 1990년 이전에는 평균적으로 10~15%에 불과하였다.
한편, 식량원조를 가장 많이 제공해온 국가는 미국으로서, 미국이 제공한
식량원조의 대부분은 프로그램 원조였다.
전체 ODA에서 식량원조의 비율은 지난 20여 년간 정체된 상태이다. 식
량원조는 세계적으로 식량 공급에 여유가 있을 때에는 증가하지만, 가격이
폭등하여 수입이 어려울 때, 즉 식량원조가 필요할 때는 오히려 줄어드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사실 개도국들이 직면하는 국제 곡물가격 상승의 영향
은 수입비용 증가보다 외부 원조물량 감소가 더 큰 경우도 적지 않다.
개도국에서 농업의 의미는 크다. 농업 부문에 대한 지원은 개도국의 식
량 생산능력을 확충시킬 것이므로 식량 제공보다 식량위기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대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ODA에서 농업 부문 지원은
1980년대 중반 이후로 감소되어 왔다는 데에 있다. 오늘날 전체 ODA에서
농업 부문에 제공된 ODA는 1980년대 중반의 절반 수준이다. 최근 식량위
기로 개도국의 농업 부문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이 재강조되고 있다. 그리
하여 2008년과 2009년 G-8 정상회의는 식량위기 해결에서 글로벌 식량 비
축보다는 농업무역 자유화와 농업 부문에 대한 투자에 뚜렷한 방점을 두었
고, 개도국들의 농업 활성화와 기아 해결을 위해 향후 3년간 200억 달러를
지원키로 합의하였다.
식량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ODA는 양자적으로 뿐만 아니라 세계식량프
로그램(WFP),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다자 국제
기구를 통해서도 제공될 수 있다. 즉 식량위기와 관련된 다자 국제기구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식량원조가 1950년대부터 존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에
급속히 증가하기까지 세계의 저영양 인구 규모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이것은 식량원조가 개발도상국의 장기적인 기아의 원인과 식량 불안정 문
제를 해결하는 데에 효과적이지 않음을 시사한다. 식량원조의 비효율성과
관련하여 소비 추가성(additionality in consumption)과 원조 구속성(tied
aid)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첫째, 식량원조는 모든 인간에게 충분한 식량 접근을 보장하는 것, 달리
말하면 빈곤층의 식량 소비를 가능한 한 많이 추가하는(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식량원조가 식량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상업적 식량
구입 또는 생산을 감소시키지 않을 정도의 양과 형태로만 전달된다면, 식
량원조는 완전히 추가적(completely additional)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
한 완전한 추가성이 달성되지 않고, 과잉 식량원조가 완전한 추가성 달성
을 저해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과잉 식량원조는 수원국의 국내가격을 하락
시켜 증산 유인 잠식, 상업적 식량거래 대체, 식량 증산을 위한 제도 개혁
지연 등 결과적으로 식량의 대외의존성(dependency)을 높임으로써 수원
국의 식량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국제 식량원조 체제를 개선함
에 있어서 개도국들의 정당한 식량 필요 또는 식량원조의 인도적 필요와
상업적 필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둘째로, ▲식량원조의 전달에 병행하여 식량 도정과 수송 등 부대 서비스
의 구속성, ▲우루과이라운드농업협정(URAA)의 구속성, ▲일반적 원조의
구속성 등이 식량원조의 비효율성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식량원조가 선진국의 잉여 농산물을 처리하는 데에 이용되지 않고, 개도국
의 식량 생산능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비구속화(untying)시키는 것이 주장
되는 것이다. 식량원조의 비구속화(untying)에서 중요한 것은 식량원조의
현금 지급이다. 식량원조에 대한 인식을 ‘식량원조’(food aid)에서 ‘식량보
조’(food assistance)로 전환하면 식량뿐만 아니라 농업생산재(agricultural
inputs), 현금 또는 상품권(voucher), 기술전수 등 다양한 수단으로 식량원
조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식량원조에서 현금 지원이 현물보다 나은 수단이기는 하지만, 모든 형태의 현물 식량원조를 전면 철폐하고, 현금 지원만을 허용토록 하
는 것이 현실적인지에 대해 회의론도 존재한다. 따라서 현금 식량원조가
빈곤층에게 식량 전달 또는 식량 생산능력 확충에 쓰이게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모니터링의 강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식량원조 및 농업 분야와 관련된 한국의 ODA 현황은 한국국제협력단
(KOICA)이 집행하는 무상원조에서 발견된다. 최근 식량위기와 관련하여
한국은 2009년 1월에 개최된 ‘식량안보 고위급 회의’에서 2009~2011년간
식량위기 해결을 위해 1억 달러의 지원 계획을 밝혔다. 이로써 매년 총
ODA 규모에서 약 4~5%에 해당되는 약 3,300만 달러가 식량원조와 농업
개발에 제공될 예정이다. 그러나 한국이 2009~2011년간 지원할 1억 달러
는 액수 상으로는 증가일 수 있지만 비율 상으로는 지금까지의 추세와 크
게 다르다고는 볼 수 없고, 또한 국제적 추세(2006~2007년에 평균 6%)와
도 차이가 있다.
한국의 식량위기와 관련한 ODA를 강화함에 있어서 식량위기 대처에 대
한 국제적 논의와 분리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식량위기 대처에는 인도주
의적 목적과 상업적 목적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 논의는 식량위기
극복에 기여하려는 한국의 ODA 정책뿐만 아니라 한국의 장기적 식량안보
와 경제 통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식량위기 극복에의 기여는
식량 관련 이슈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국제관계를 재편할 수
있는 외교적 기회가 될 수 있다.
식량위기에 대한 한국 ODA의 기본 방침은 단기적으로는 수원국 국민들
의 기본적 식량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어야 할 것이며, 중 장기적으로는
수원국이 식량 생산능력을 수립하기 위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차
적 목적을 두어야 할 것이다.
단순한 긴급구호를 위한 식량원조에서 원조 수원국을 의도적으로 선택
한다는 것은 그리 큰 의미는 없다. 긴급구호 식량원조의 경로가 다자 식량
원조기구 등 다양하기 때문에 긴급구호 제공 여부의 결정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장기적 농업개발을 위한 ODA에서는 수원국의 신중한 선
택이 필요하다. 개도국의 식량 생산능력 감소가 국제무역 체제에도 일부 원인이 있지만 개도국의 국내 정책에도 일부 원인이 존재하고, 농업개발
관련 ODA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농업개
발 관련 ODA에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대상국 선정이 중요하다.
또한 3가지 형태의 식량원조 가운데 실제로 한국이 실행할 수 있는 식량
원조는 프로젝트와 긴급구호 원조로 보인다. 잉여 식량을 식량원조에 이용
하는 프로그램 식량원조가 한국에게 적절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식량무
역 대체효과와 구속성 등 고려해야 할 국제적 규범들이 많고, 자칫 무역
분쟁의 위험을 안고 있으며, 구속성 원조를 점차적으로 줄이려는 한국의
기본 정책에 역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조의 효과 측면에서 볼 경우, 프로젝트와 긴급구호 식량원조와
같은 현물 지원은 효과가 적거나 역효과가 있다고 보는 국제적인 논의 추
세를 감안한다면 현금 지원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국제적으로 식량위기의 근본적인 대책으로서 개도국에서 식량 생산능력
확충을 위한 농업 투자가 강조되고 있음을 감안, 한국의 ODA 활동도 이를
반영하여 효과를 극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개도국의 식량 생산
능력 확충을 위한 한국의 ODA는 개도국 환경에 맞는 다수확품종 기술 이
전, 농업 인프라, 무역원조(Aid for Trade), 환경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여건 조성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