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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문제와 한반도의 국제정치
교수 우승지
외교안보연구원
요약
본 연구는 남북교류협력시대에 새로운 문젯거리로 등장한 탈북자문제
의 현황과 그 국제정치적 함의를 분석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에서 전개된 남과 북의 대립구도는 여전히 지속
되고 있으나 한국 정부는 북방외교, 햇볕정책,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하며
북한을 껴안으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 미국과
‘핵 줄다리기’를 하는 한편, 내적으로는 실리사회주의와 선군정치를
펼치고 있다. 신의주특구, 개성특구,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등은 북한 나름의 생존방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
후 북한은 경제난, 식량난, 에너지난이라는 3중고를 겪고 있다. 북한의
산업시설은 30%만이 작동하고 있으며, 북한경제는 1990~98년까지 9
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은 90년대 중
반 자연재해와 맞물리면서 대규모 기아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북한 주민
들은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기 시작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수가 늘어
나면서 탈북자 문제는 국제적 이슈로 부각되게 되었다.
최근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입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90년대 중반에
는 100명 이내의 규모였으나, 2002년에는 1,000명 선을 초과해 현재
국내에는 5,000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2004년 7월말에
는 베트남에서 탈북자 468명이 한국으로 입국하기도 했다. 대규모입국
사태 이후 남북관계는 경색되어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을 제외한
민간교류와 당국간 회담이 중단된 바 있다. 북한은 이 문제에 대해 강하
게 반발하면서 참여정부를 과거 문민정부와 동일시하며 거세게 비난한
바 있다.
초기에는 식량을 구하기 위한 ‘생존형 탈북’이 주류를 이루었던 데
비해 최근에는 탈북 동기가 다양해지고 있다. 가족 단위의 탈북과 재탈
북 사례가 늘고, 경제적 부를 추구하는 생활형 탈북이 늘고 있는 추세이
다. 현재 북한을 이탈하여 중국 등지에서 머무르고 있는 북한 주민의
수는 약 10만 명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 등 중국 동북 3성 및 내몽골, 산동반도 등지에 머물러
왔으나 최근에는 중국 내지와 동남아 등으로 체류지가 확산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중국내 탈북자들이 잇달아 외교 공관으로 진입을 시도함으
로써 국가간 외교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북한 당국은 한동안 강제 이송된 탈북자들을 경미하게 처벌하는 데 그
쳤으나 미국내 북한인권법안 통과 이후 다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
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탈북자들을 통해 외부의 정보가 유입됨으로
써 사회혼란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전파효과의 차단
에 주력하고 있다.
현행 헌법상 북한을 영토의 일부로, 북한주민을 국민으로 간주하고 있
는 바, 북한을 벗어난 이탈주민문제는 엄연히 한국 정부가 풀어야 할 문
제이다. 향후 대량탈북시대에 대비하여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확충해야
할 것이다. 탈북자들이 자본주의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확충하는 일도 필요하다. 한국정부는 한국 정착을 희망하는 탈북자를 전
원 수용할 것이며, 또한 탈북자가 제3국 정착을 희망할 경우 최대한 협
조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탈북자의 국내 이송시에는 외교적 마찰
을 최소화하면서 체류국 정부의 협조 또는 양해 하에 이루어지도록 노력
하고 있다. 탈북자문제는 체류국과 북한과의 관계, 남북관계, 인권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므로 체류국과 조용한 교섭을 통해 문제
를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탈북자문제는 인도주의적 차원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제정치적인 문
제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이 식량 확보 등 경제적 이유로 북
한을 탈출한 불법 입국자인 만큼 탈북자 문제는 북한과 중국 사이의 양
자관계의 사안이며, 제3국이나 국제기구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
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측은 在中 탈북자에 대해 방임정책을 취하다가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면 북한으로 송환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최근
탈북자 문제가 국제문제화하면서 중국은 예전에 비해 예민한 반응을 보
이고 있다. 특히 기획탈북과 외교공관 진입에 대해서는 강경 대처한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미국은 탈북자들의 인권 상황에 주목하여 탈북자에 대한 유엔난민고등
판무관(UNHCR)의 접근을 허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의 보수파
는 탈북자 문제와 관련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
다. 2004년에는 북한인권법이 상, 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하였고, 부시 대통령도 이에 서명하여 인권법이 발효되었다. 북한인권법안의 통과는
향후 북핵문제와 맞물려 한반도 정세에 깊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북한인권법은 탈북자들에 대한 미국 망명의 길을 열어 놓았으며 북한 인
권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인권문제 제기에 대해 의혹과 불만을 품고 있으며, 핵
문제와 인권문제를 미국이 제기한 고립압살정책의 두 기둥으로 인식하고
있다. 근년 들어 김정일 초상화 철거, 김정일 호칭 변경, 북한내 반체제
전단 살포, 용천 폭파사건, 실력자 장성택의 실각 등의 뉴스가 잇달아
보도되면서 북한의 체제이상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또한 최근
의 탈북추세는 북한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가족 단위의 탈북이 늘
고 있다. 한편 노동당원 등 상층부의 탈북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바, 인권법안이 본격 가동되면 북한의 상층부가 동요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북한 당국은 체제이완현상을 우려하면서 내
부 통제를 강화할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인권법과 북한인권문제를 바라보는 두 개의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
다. 인권문제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하나의 시각은 북한정권의 비민주적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인권문제를 제외시켜 놓고 북한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인권문제를 제기하여 북한 당국이
인권상황을 하루빨리 개선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인권법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시각은 이 법안의 입안자들이
정작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에는 관심이 없고 소련이나 동독의 정권을
무너뜨렸듯 김정일정권의 전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한다. 북한
인권법의 제정은 경제제재나 군사적 수단의 사용을 합리화시키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소위 진보적 시각은 북한의 인
권문제가 중요하나, 미국의 인권, 탈북자 문제 접근은 북한 흔들기의 일
환으로 규정하고, 실제로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
음을 우려하고 있다.
북한인권법의 발효와 함께 미국의 대북 인권외교는 더욱 활발해질 것
으로 예상된다. 미국 행정부는 민주, 공화 양당이 모두 관심을 가지는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매개로 북한을 더욱 압박할 것이다. 탈북자 지원
단체와 북한민주화운동 단체들의 활동도 미국의 지원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그러나 정작 탈북자들이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넓
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정책적으로는 탈북자들의 미국행 기회를 열어놓
기는 했으나 실제로 많은 수의 탈북자들을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탈북자 문제는 남북만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 미국, 동남아, 중앙아시
아 국가들까지 관련된 국제적인 사안이다. 탈북자 문제는 단순한 인도주
의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정치에 입각한 주변 국가들과의 정치적, 외교
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안이며, 탈북자의 법적 지위문제 역시 국제
법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한국 정부가 통일을 대비하는 과정에서 탈북
자 문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과도 같다. 탈북자 문제의 능숙한 처리
여부가 한국 사회의 통일준비 성숙도의 척도라고 볼 때, 정부도 피동적
이고, 사후 문제처리식의 관행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역할 수행이 필요하
며, 또한 체계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이다.
미국은 2005년 6자회담을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도록 하
고, PSI, 인권문제를 앞세워 북한을 압박할 공산이 크다. 미국이 북한의
탈북자와 인권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경우 ‘조용한 외교’를 펼치는 한
국정부와의 갈등도 예상된다. 과거 서독이 과감한 동방정책을 추진하면
서도 동독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만은 원칙을 철저히 지켰던 경험을 떠올
릴 필요가 있다. 우리도 대북경협을 통해서 중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되 인권문제에 대해서만은 지금부터 문제를 제기하여 북한주민의
삶의 질이 개선되는 길을 열어야만 한다. 원칙문제에서 계속 양보하면
북한은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은 채 교류의 과실만을 따먹는 이기적인
행보를 계속할 것이다. 대북 교류 협력의 근본 목표는 대화와 접촉을 통
해서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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