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o:abstract |
일본의 금융개혁
서동만
1998.03.04
대외적으로는 세계 경제의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응하고 국내적으로는 버블 경제의 소멸에 따른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90년대에 들어서서 일본도 금융개혁을 실행한 영국이나 미국의 예를 좇아 금융 분야의 개혁을 추진해 왔음. 이 시기는 기존 금융시스템이나 금융행정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아닌 부분적이고 미봉적인 조치에 머무르고 있었음. 그러나 버블 경제를 초래한 대장성의 초저금리 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문제를 은폐함으로써 사태를 일련의 금융파탄으로 확대시켰다고 하여 대장성의 금융행정에 대한 비판도 90년대 중반이래 거세지고 있었음. 대장성 개혁과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금융분야를 넘어서 일본형 정치, 경제시스템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제기하는 흐름이 형성되었고 당시 진행 중이던 행정개혁 논의와 결합하여 금융개혁, 즉 '일본판 빅 뱅' 구상이 전면에 부상하게 됨. 금융개혁의 구체적인 배경으로는 일본의 금융시스템이 미국, 영국 등에 비해 취약화되었다는 점, 일본 금융시장의 각종 규제에 따라 해외로 자본 거래가 이동하는 금융공동화의 우려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 1997년도 현재 일본의 개인 금융자산이 1천2백조 엔(전 세계 개인 금융자산의 약 4분의 1에 해당)에 달하는 자산운용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 버블 경제의 후유증으로 97년 현재 은행 총 대출액의 14%, 약 79조 엔에 달하는 '불량채권'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 등이 작용하였음.
금융개혁의 실행 내용 및 그에 따른 중요 효과는 넓은 범위에 걸치고 있음. 첫째로 새로운 금융시스템은 기존의 대장성에 의한 재량형에서 시장 기능이 주된 역할을 하는 시장형으로 접근하는 것을 의미함. 대장성의 보호 하에 은행은 결코 도산시키지 않는다는 이른바 '護送船團체제'도 변화하기 시작하여 대형은행, 증권, 보험회사도 경영 여하에 따라 도산하는 경우가 생기게 됨. 둘째로, 은행, 증권, 보험간의 영업형태(업태) 전통적 구분이 철폐되고 각 업태 내의 금융사는 물론이고 일반기업(제조업, 상사, 유통업 등)의 금융업 참여도 허용되며 외자계 기업도 참여가 자유롭고 용이해짐. 그 결과 일본 금융계는 일찍이 없었던 '금융대경쟁시대'에 돌입하며 각 금융사간에 격차가 확대되고 약자는 도태됨으로써 금융계에 대재편이 일어날 것임. 세째로, 은행의 자회사 형태를 통해 부분적으로 신탁업무, 증권, 보험에 대한 참여를 허용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더 나아가 지주회사를 전면 해금함으로써 금융 그룹이 본격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길을 열었음. 넷째로, 현재 1200조엔에 달하는 일본 개인금융자산의 약 60%는 預貯金으로 구성되어 압도적으로 은행에 편중되어 있으며 이러한 預貯金 비율이 구미 수준으로 낮아진다고 상정할 때 거대한 자금이 투자신탁이나 증권 관련 금융상품으로 이전할 것임. 다섯째로, 공인은행에 제한되어 있던 외환 업무가 일반 기업이나 슈퍼 마케트에도 허용되고 기업과 개인이 외화 결제를 자유로이 행하고 외국에 예금 구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됨. 이에 따라 일본의 저금리 추세(현재 일본은행 공정금리는 0.5%)를 감안할 때는 預貯金 중 상당한 액수가 새로운 자금운용처를 찾아 유출될 가능성이 있음. 다섯째로, 금융개혁 조치가 증권거래소 이외의 폭넓은 장외거래를 인정함으로써 자본시장에서의 경쟁은 증권회사간의 경쟁을 넘어서서 증권시장간의 경쟁으로 확대되어 새로운 거래 시스템이 등장할 여지도 있음. 여섯째로, 금융개혁은 일본 금융시장을 국제적 기준에 맞추려는 시도이지만 동시에 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달러 지배에 대항하려는 '엔화의 국제화'라는 숨은 의도도 가지고 있음.
금융 빅 뱅이 선언되고 나서 동남아시아와 한국에 몰아닥친 금융위기로 일본 금융시장은 엄청난 불안에 휩싸이고 있으며 금융공황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음.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금융위기는 일본의 취약한 금융 시스템을 개혁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하는 동시에, 기존 금융시스템이 파탄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높임으로써 금융개혁 일정을 늦추게 하는 등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 현재 불량채권 해소 방안을 둘러싸고 일본 내에서는 치열한 논란이 전개되고 있으며 여론은 금융개혁보다 금융시스템 안정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있음. 금융개혁은 실현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으나 금융개혁의 내용 및 실시 시기는 금융시스템 안정 조치의 효과에 따라 재조정될 것으로 추측됨.
동아시아 지역의 국제관계는 금융위기를 둘러싸고 새로운 상황이 조성되고 있음. 이 지역의 안보관계도 금융위기의 추이 및 이에 대한 각국의 대응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진행될 것임. 동아시아 국제경제를 둘러싸고 각축을 벌일 美, 中, 日 삼각경제관계에 주목하며 이에 대한 분석 및 대응체제를 시급하게 수립해야 할 것임. 상당기간 동아시아 국제경제는 달러와 엔의 긴장관계를 축으로 전개될 것이며 최근 엔의 달러에 대한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기되고 있는 유럽 단일 통화(유로)와의 제휴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은 '엔의 국제화'를 위한 새로운 방안으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음.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98년부터 실시가 예정되어 있는 외환자유화에 따라 일본 내에 머물고 있던 거대한 개인금융자산이 일정 부분 해외로 이전될 것임. 이를 유치하기 위해 한국 금융기관들은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일본 금융시장에 진출할 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임. 전 세계 금융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국제 헤지 펀드 시장에 재팬 머니가 본격 진출할 경우 對日 경제 의존 및 무역 역조 관계에 있는 한국 경제는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될 것임. 종래 무역 역조 해소를 위해 실물 경제에 치중해 있던 對日 경제 외교에 있어서 금융 부문에 대한 보강이 절실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