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2] 유고슬라비아 정세 ( http://opendata.mofa.go.kr/mofadocu/resource/Document/4882 ) at Linked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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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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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고슬라비아연방 내 크로아티아의 1971.11월 대규모 학생 소요사태 발생과 관련한 유고연방 정세 동향임(1972.1.5. 외무부 정세보고).
    
    1. 사태 개요
    •유고연방의 제2의 도시인 자그레브(크로아티아의 수도)에서 1971.11.23. 대학생을 중심으로 
    약 30,000명에 의한 시위가 발생한 바, 이에 따라 대규모 체포, 구금사태가 초래됨. 
    •시위대는 연방정부의 불공평한 차별정책 철폐, 유고 전체 외화 획득액의 40%를 기여하는 크로아티아에 대한 합리적인 외화 할당 및 중앙정부의 영향력으로부터의 자치를 요구함.
    •동 사태는 1968년 이후 최대의 소요로 Tito 대통령은 자신이 중점적으로 추진해 온 연방의 통합 및 단일화 정책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크로아티아 공산당 Tripolo 당수 등 간부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단행함.
    
    2. 사태 발생 원인
    •연방 내 6개 공화국은 1921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의 병합 당시부터 역사적인 배경, 종교, 언어 및 경제수준 등 제반 차이에 따른 민족 간의 반목 및 갈등으로 대립해 옴. 
    •크로아티아는 연방 내에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가장 발전한 공화국으로 병합 직후부터 세르비아 주도의 중앙정부의 불평등한 정책에 불만을 표시해 옴.
    •크로아티아는 유고 상·공업의 중심지로 최근의 경기침체, 외화부족 및 물가상승 등의 경제난에 직면하여 연방정부에 대해 외화 할당액의 증액 및 합리적인 예산 배정 등의 조치를 요구하였으나 거부됨.
    
    3. 사태 여파 및 전망
    •Tito 대통령은 1971.12.19. 발표를 통해 유고는 민족적인 분열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자신의 금번 사태 개입은 평화와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한 외세(구 소련)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서 유고의 지정학적인 여건에 비추어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의 자치 희망은 허황된 환상에 불과함을 언명함.
    •Tito 대통령은 단기 수습책으로 외화 사용 제한 완화 등의 경제조치를 발표한 바, 장기적으로 각 공화국의 자치권 확대 등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전망되나 연방 내 민족 간의 반목이 점차 구체적으로 표출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른 정세 불안이 전망됨. 
    •금번 사태에 따라 향후 Tito 대통령 사망 이후 유고연방의 와해 및 외세의 개입에 따른 국제적인 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증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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