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30] 일본 · 중국(구 중공)간의 센가쿠(尖閣)열도 영유권 분쟁 ( http://opendata.mofa.go.kr/mofadocu/resource/Document/4730 ) at Linked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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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01-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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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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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미국·일본 간에 오키나와 반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센카쿠(중국명: 조어도)를 포함한 동지나해 
    대륙붕의 석유개발 움직임이 표면화되자 중국(구 중공)은 1970∼71년 수차례에 걸친 인민일보 논평을 통해 동 도서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본격화하였으며, 1971.6.17. 오키나와 반환협정 조인으로 센카쿠 열도에 대한 행정권이 일본으로 이양됨에 따라 대만(구 자유중국)도 강하게 반발함. 
    
    2. ‌정부는 1972.3.3. 유엔 Sea-Bed Committee(해저해상위원회)에서 일본과 중국이 센카쿠 열도에 대한 영유권 문제 및 동 열도 영해에 대한 주권행사 문제로 대립하였다는 주유엔대사의 보고에 따라 3.4. 주일대사에게 일본 외무성을 통해 관련 사항을 파악하도록 지시함. 
    
    3. 주일대사는 양국 입장에 대한 일본 외무성의 설명을 1972.3.7. 아래 요지로 보고함.
    •일본 입장
    - ‌‌센카쿠는 역사적으로 일본의 영토인 남서제도의 일부를 구성함.
    - ‌‌센카쿠는 일·청전쟁 결과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할양받은 대만, 펑후제도에 포함되지 않음.
    - ‌‌따라서 센카쿠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일본이 포기한 영토에도 포함되지 않음.
    •중국 입장 (동 건에 관한 중국 외교부 최초의 성명인 1971.12.30.자 외교부 성명 인용)
    - ‌‌조어도(일본명: 센카쿠)는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로서 명 시대에 중국의 방위해역에 편입됨.
    - ‌‌조어도는 1895년 시모노세키 불평등조약으로 대만과 함께 일본에 할양되었음.
    - ‌‌조어도는 일본의 패전으로 중국에 반환되어 대만에 부속되어 있음.
    
    4. ‌주일대사는 1972.3.9. 후쿠다 일본 외상이 3.8. 국회에서 센카쿠는 명백히 일본 영토라는 입장을 표명하였으나, 일본의 무역상사 약 600개의 모임인 국제무역촉진협회는 3.7. 총회에서 센카쿠는 역사적으로 일본의 영토는 아니며, 대만의 일부로 중국의 영토라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보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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