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0] 라오스 정세 ( http://opendata.mofa.go.kr/mofadocu/resource/Document/4140 ) at Linked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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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오스 정세에 관한 외무부 및 주캄보디아(구 크메르)대사관이 1971년 작성한 보고서 및 일일 정세요약 등은 다음과 같음.
    
    1. ‘최근 라오스 정세’ 주요 내용(1971.1.25.)
    ●1953.10.22. 라오스 왕국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얻고 1954년 제네바 협정에 따라 라오스 내의 Viet Minh(호지명 영도)은 완전 철수하게 되었으며 동 협정에 의거 라오스 북부 2개성은 잠정적으로 라오스 좌파 세력 파테트 라오가 점령함.
    ●1955.12.25. 총선을 파테트 라오가 보이콧함으로써 좌·우파에 의한 분열이 고질화하게 되었고 1960.4월 총선에서 노사반 장군 영도하의 우파가 승리하여 반공 친미노선을 추구하자 반우파 쿠데타가 일어나 그 결과 중립파 Phouma공을 수상으로 하는 연립정부가 수립됨.
    ●1960.12.9. 노사반 장군에 의한 우파 쿠데타로 인하여 Phouma 수상이 캄보디아로 망명하게 되고 우파정권이 수립되자 파테트 라오가 월맹의 지원을 받아 공세를 재개함으로써 라오스 내전이 재발함.
    ●1962.2.23. 라오스 내 좌·우·중립 3파는 미·소의 양해 아래 Phouma 수상을 수반으로 하는 중립연정을 수립하였고, 1963.4.1. 좌파 출신 외무장관이 암살된 사건을 계기로 파테트 라오가 좌파 각료들을 철수시킴으로써 라오스 내란이 재발되어 북부 자르 평원을 둘러싼 양측 간의 공방이 계속됨.
    ●공산 측이 ‘자르’ 평원을 점령한 후 Phouma 수상은 1970.2.28. 월맹의 개입을 규탄하면서 제네바 회의의 개최를 요청하였으나 소련의 비협조 및 유리한 전세를 유지한 공산 측이 제시한 미군기의 라오스 폭격중지 등의 조건으로 인하여 평화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짐.
    
    2. 월남군의 라오스 진격 관련 ‘일일 정세요약’ 등 정세보고의 주요 내용
    ●티우 월남 대통령은 1971.2.8. 라오스 영토 내의 월맹군 기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바, 라오스 정부는 성명을 발표, 월남군의 라오스 진격사태에 항의하고 모든 외국군의 철수를 요구함.
    ●소련은 2.8. 라오스 침공으로 인도차이나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위험한 새 국면에 돌입했다고 발표한바, 소련 및 중국은 월맹에 대한 지원 입장을 천명함.
    ●대한민국 외무부 대변인은 2.8. 성명을 발표, 월남군의 라오스 진격을 지지함.
    ●미 상원 외교위 보고서는 8.4. 월남군의 라오스 진공을 실패로 지적하고 작전 후 라오스 내 월맹군이 15,000명 증가하였으며 라오스전은 미국이 20억 달러의 전비를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산 측이 전투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평가함.
    ● Phouma 수상은 11.27. 라오스 북부 자르 평원을 중립화하고 동 평원에서 파테트 라오와 평화협상을 열 것을 제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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