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4] 미얀마(구 버마) 정세 ( http://opendata.mofa.go.kr/mofadocu/resource/Document/4124 ) at Linked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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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랑군총영사관이 1971.9.3. 작성한 ‘주재국 정세 개요’의 요지는 다음과 같음.
    
    1. 미얀마의 역사
    ●미얀마는 11~19세기 중엽까지 왕조를 유지하였으며 영국 식민지 시대와 일본군 점령시대를 거쳐 1947.6.10. 헌법제정의회가 미얀마 독립 선포 결의안을 채택하였으나 독립 직전 7.19. 아웅산 등 3명의 각료들이 회의 도중 암살됨.
    - 미얀마는 1948.1.4. 약 60년간의 영국 지배로부터 독립함. 
    ●독립 후 국내정세는 각 민족 간 불화, 폭동, 공산당의 준동 등으로 혼란을 거듭하다가 1962.3.2. 네윈 장군이 주동한 군부혁명 후 혁명 정부는 소위 ‘미얀마식 사회주의’를 선언함.
    
    2. 미얀마 혁명정부의 대외 정책
    ●비동맹 엄정 중립노선을 견지하는 미얀마의 대유엔 정책은 세계평화를 위한 국가 상호 간의 공존 및 국내문제 불간섭, 세계적인 완전 군축 실현 및 핵실험 완전 금지, 중국의 유엔가입 지지, 식민주의 배격, 유엔의 저개발국 원조의 강화 등임.
    - 유엔 한국문제에 관해서는 남북한 동시초청에 찬성하고 여타 문제에 대하여는 기권
    ●한국과의 관계는 비동맹 엄정 중립노선에 따라 한국이 통일될 때까지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어느 쪽도 승인하지 않겠다는 방침임.
    ●미얀마의 대미 관계는 네윈 군사정권 수립 이후 미얀마식 사회주의 정책이 급진적으로 추진되어 경제사회제도가 좌경적 사회주의 제도로 전향됨에 따라 미국의 원조가 중단되는 등 악화되었으나, 1966.9월 네윈 장군의 미국 방문 및 1967.6월의 반중국 폭동사태 등을 계기로 서서히 호전됨.
    ●대일 관계에 있어서는 1955.4월 일본과 배상 및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대일 국교를 정상화하였으며 타국에 비하여 비교적 우호 친선을 유지해 옴.
    ● 1967.6월 반중국 폭동사태 이전까지 미얀마의 대중국 관계는 타국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우호적이었으며 미얀마는 비공산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중국을 승인한 바 있음. 
    - 반중국 폭동사태 이후 양국 관계가 악화되었으나 1970.12월 미얀마는 주중국대사를 정식 임명하고 중국 역시 1971.4월 주미얀마대사를 임명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개선됨.
    ●미얀마는 소련과도 우호친선 관계를 유지하여 오고 있으며 서방자유진영의 미얀마 진출 특히 중국의 대미얀마 진출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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