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8] 중국 ∙ 소련 국경분쟁과 국경회담 ( http://opendata.mofa.go.kr/mofadocu/resource/Document/2838 ) at Linked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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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 소련 국경분쟁과 국경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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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9년에 작성된 중・소 국경분쟁에 관한 외무부 자료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음.
    1. 1969.3.2. Damansky도(珍宝島)에서의 중・소 무력충돌 사건(1969.3.13. 외무부 정보문화국)
     1969.3.2. 중국(구 중공)군 부대가 소련국경을 넘어 우수리강 중류 작은 모래섬인 Damansky도 소련 국경경비대에 총격을 가함으로서 발생한 사건으로 쌍방에 각 약 40명의 사상자가 발생함.
     1860년 북경조약에 의해 청조가 우수리강 이동의 연해주를 러시아에 할양하였으나, 중국은 동 조약이 불평등 조약이며 구체적 국경선 획정방법도 명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함.
     Damansky도는 모래섬으로서 기존조약에 따르더라도 귀속에 관해 논쟁의 여지가 있음.
     중・소 양국은 상호 비난하면서도 적극적인 군사대결의 인상을 주는 언사는 억제하고 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가까운 시일 내에 호전될 것으로 전망하기 어려움.
    2. 신강지역에서의 중・소 무력충돌 사건(1969.8.20. 외무부 정보문화국)
     1969.8.13. 카자크스탄 자라나슈콜 동쪽 약 10Km 지점에서 중국군 수개 부대가 국경을 침범하여 소련 국경 경비대에 총격을 가하였으며 소련군의 대응조치로 격퇴되고 2명의 중국군이 억류됨.
    - 중국측은 소련군이 먼저 신강자치구 유민현에 침범하여 중국 국경 경비대에 총격을 가했다고 주장함.
     1930년대 이래 신강지역은 중・소 공동관리 하에 있었으며 양국은 우라늄 등 광산개발을 위해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도 하였으나, 중국은 다수의 한족을 이주시켜 카자크인과 지방민족의 세력 약화를 기도했고 소련도 이에 대응하여 러시아인을 카자크스탄에 이주시킴.
     1962년 6만명의 신강주민이 소련으로 도피한 것과 관련, 양측이 상호 비방하면서 대립한 이후 양국은 동 지역의 경계를 강화함.
     양국은 시베리아, 몽고 및 신강으로 연결되는 국경 경비를 위해 합계 150만명 이상의 군대를 배치하고 있으며, 쌍방의 국경분쟁 가능성은 잠재해 있으나, 전쟁 발발의 가능성은 희박함.
     양국 간 국경충돌은 대립을 격화시키고 북한 등 주변 위성국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할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동남아 및 자주세계의 안전에 기여할 것임.
    3. 중・소 국경분쟁과 국경회담(1969.11.1. 외무부 정보문화국)
     1969.9.11. 코시긴 수상의 제의로 10.20.부터 양국 간 국경회담이 진행 중임.
     양국간 국경문제는 기본적인 상극의 이념대립이 지속되는 한 완전 해소될 수 없음.
     양국 국경회담은 국경문제 뿐만 아니라 관계 개선 문제를 광범위하게 논의할 가능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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