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0] 국교수립 - 튀니지, 1969.3.31 ( http://opendata.mofa.go.kr/mofadocu/resource/Document/2570 ) at Linked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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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주이탈리아대사대리는 1960.9.21. 주이탈리아 튀니지대사대리에게 양국 간 외교관계 수립을 제의하였으나 튀니지측으로부터 회답이 없었음. 주이탈리아대사는 1962.3.6. 주이탈리아 튀니지대사에게 양국 간 국교수립을 제의하는 공한을 정식 전달하였으나, 주이탈리아 튀니지대사관은 1962.5.8. 튀니지 현 정세로 인하여 우리나라와 국교수립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회신 공한을 보내옴.
    2. 정부는 아프리카 중립국가들과의 외교관계 확장을 위한 특별사절단을 1963.2.15.~4.25. 아프리카 12개국에 파견하였는바, 동 사절단 단장인 이수영 주유엔대사는 튀니지 외무장관이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양국 간 외교관계 수립문제는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답변하였으므로 튀니지의 민정이양 후에 다시 교섭하는 것이 좋겠다고 외무부에 건의하여, 국교수립 교섭은 일시 중단됨.
    3. 그 후 튀니지 외교정책이 우경화하는 경향을 보여, 정부는 주모로코대사를 통하여 교섭을 재개하였으며, 1965.9월 튀니지 외상이 우리와의 외교관계 수립을 희망하며 비상주 외교사절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정보를 입수함. 이에 따라 정부는 1965.9.29. 비상주 외교사절 교환에 관한 외교관계 수립을 튀니지측에 정식 제의함.
    4. 튀니지 정부는 1966.6.15. 우리측 제의에 대한 회신을 통해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함에 있어 튀니지가 북한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자유를 제한받지 않는다.’는 유보를 한국정부가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함. 정부는 튀니지측 요청을 수락하는 것은 두 개의 한국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므로 튀니지측 유보에 대해 언급함이 없이 수교를 추진코자 하였으나, 튀니지측은 1967.4.22. 자국 공한(1966.6.15.자)에 대한 우리측 회신을 요청함.
    5. 정부는 유보문제 해결을 위해 주프랑스대사를 튀니지에 파견하여 튀니지 대통령 및 외상과 직접 교섭토록 하였으며, 주프랑스대사는 1968.1.26. 튀니지 대통령을 방문함. 튀니지 대통령은 주프랑스대사에게 한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에 동의하며, 1969.1월 이전에 한국대사관을 설치토록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외교관계 수립에 앞서 한국총영사관을 튀니지에 우선 설치할 것을 권고함. 이에 따라 양국은 1968.5.17. 영사관계수립에 합의하였으며, 정부는 1968.10.1. 튀니지에 총영사관을 설치함.
    6. 총영사관 설치 후 정부는 영사관계를 외교관계로 승격하기 위한 문서상 합의가 필요한지 여부에 대해 튀니지측에 문의한 바, 튀니지측은 1968.11.1. 별도의 문서상 합의가 불필요하며 우리측에서 편리한 시기에 대사를 파견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서 양측은 1969.3.31.자로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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