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8]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 대한 보도 및 반응 ( http://opendata.mofa.go.kr/mofadocu/resource/Document/18918 ) at Linked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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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 대한 보도 및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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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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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및 본회담에 대한 1972년 재외공관의 주요 언론 보도 보고 내용임. 
    
    1. 제14∼25차 예비회담(1972.1.10.∼8.11.)
    •남북 쌍방의 밀사가 4.26.∼5.2. 평양, 서울을 극비에 방문하고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바, 동 
    기간 동안 한국 언론에 김일성이나 북한에 대한 비난 기사가 보도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남북 간 접촉이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임(5.11. 요미우리). 
    •북한 대표단은 8.5. 제1차 본회담 장소를 서울로 하자는 한적 제의에 결국은 동의할 것으로 
    예상되며, 회담 장소에 대한 양보의 대가로 그들이 제안한 정치사회단체 옵서버 대표단 참가 
    문제에 대한 양보를 요구할 것으로 보임. 한국 측은 본회담은 어디까지나 인도적인 측면에 
    국한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7.27. 뉴욕 타임스). 
    •남북 적십자회담 본회담이 무기 연기되었는 바, 연기 이유는 회담 장소 및 정치사회단체 대표 
    초청에 관한 북한 측 제안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한 데 있음(8.5. 뉴욕타임스). 
    
    2. 제1∼4차 본회담 (1972.8.30.∼11.22.)
    •남북 적십자회담은 한국의 평화적 통일에 기여할 것이며, 현실적으로는 긴장을 완화하고 
    병력 규모를 축소시킬 것임. 이러한 남북 간의 화해는 미·소·중 간의 관계 개선에 따른 것이지만 
    남북한은 각각 평화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음. 한국은 경제 발전에 역점을 두고 
    연평균 8.6%라는 경제성장을 실현하면서 제3차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데 반해 북한은 
    막대한 군사비 지출과 중공업 분야에 대한 집중투자로 주민들의 빈곤을 자초한 바, 이러한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이 김일성으로 하여금 한국과의 화해를 지향하는 정책 전환에 큰 역할을 함(8.25. Ottawa Journal).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북한 대표단을 위한 리셉션에서 남북 조절위원회 회담 개최를 위한 
    세부적 논의가 진행되어 왔으나 동 회담 개최 일자는 합의되지 않았음을 언급하고, 유엔 사무총장의 남북회담 중재 보도를 부인하는 한편 어떠한 외부 개입도 없었으며, 남북회담은 남북한 당사자 간의 문제임을 강조함(9.14.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적십자회담은 이론상으로는 이산가족의 재회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나, 실제는 국가적 화해로 
    향하는 긴 노정의 초기 단계임. 이번 회담에서 차기 회담 개최 일자를 결정한 것 외에는 실질적인 합의 사항은 없었으며, 2회에 걸친 최초의 회담이 의례적일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결과는 아님(9.18. 워싱턴 포스트). 
    •남북한 간에는 이산가족 찾기라는 인도적인 목적의 남북 적십자회담과 보다 광범한 정치적 합의 
    체제로서의 조절위원회라고 하는 두 개의 장치가 마련됨. 체제의 상이, 상호 간의 불신 및 적대 
    관계 등이 한반도 통일의 장애 요인으로 분단 이래 27년에 걸친 대립이 일시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나, 남북한이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결의를 표명한 것은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됨
    (11.8. 마이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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