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3] 캄보디아 사태 ( http://opendata.mofa.go.kr/mofadocu/resource/Document/1793 ) at Linked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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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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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주프놈펜총영사관은 1966.1.22. 및 2.19. 미국의 캄보디아 주재 아시아재단 총재 John Benigan 추방건
    을 아래 요지로 보고함.
     캄보디아가 미국의 원조를 거부하고 외교관계를 단절한 이후 캄보디아에 주재하는 유일한 미국
    기관인 아시아재단 총재가 1966.1.7. 캄보디아를 떠나 귀임하지 않고 있는바, 현지 외교계에서는
    캄보디아 정부에서 동인이 미국 중앙정보부의 일선기관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추방
    하였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임. 시아누크공은 1966.1.7. 연설에서 아시아재단 존여부를 국민의 결
    정에 일임하겠다고 하였는바, 이는 동재단의 철수를 지시하는 것으로 당지 외교계는 평가함.
     1966.1.18. 아시아재단 본부 총재는 시아누크공 앞 서한을 통하여 미국과 캄보디아간의 현존관
    계로 보아 아시아재단의 주재국에서의 활동은 곤란하므로 양국간의 관계가 정상화될 때까지 잠
    시 사무실을 폐쇄 철수하겠다는 결정을 통보함.
     시아누크공은 아시아재단 총재의 서한에 대한 1966.2.5자 답신을 통하여 아시아재단 사무소 철
    수에 유감을 표하고 Benigan 씨가 캄보디아인의 호의를 남용하여 용서할 수 없는 정치적 활동
    을 한 데 대하여 실망의 뜻과 함께 독립과 중립을 유지하고자 하는 캄보디아의 입장에서 미국
    정보원에게 활동의 자유를 허용할 수 없었다고 강조하였으며 캄보디아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희망하였으나 미국 지도자들은 캄보디아를 적으로 취급하였다고 주장함.
     아시아재단 차석인 Harris 씨도 1966.3.15. 당지를 떠날 예정임.
    2. 주프놈펜총영사관은 1966.6.10. 캄보디아 국내정세를 아래 요지로 보고함.
     시아누크공은 각료회의에서 철저한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비약적 발전을 위한 “2보 전진” 정책
    을 실천하도록 지시하였으며 인도네시아처럼 동서 양진영으로부터 경제원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함.
     시아누크공은 대폭적 각료이동을 구상 중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새 내각에는 젊은 세대를 대폭
    등용하여 구세대와 대결하여 얻어지는 정책을 실천할 것이라고 전하여지고 있음.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간의 화해 움직임이 캄보디아에 큰 관심사항이며 이러한 화해성립에
    있어서 캄보디아의 숙적인 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과 관련, 캄보디
    아가 고립되는 동남아지역 협력기구가 창설될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냄.
    3. 주프놈펜총영사관은 1966.6.17. 캄보디아 국내정세를 아래 요지로 보고함.
     영국 외무차관 Walsion경이 1966.6.13.~14. 캄보디아를 방문, 칸톨 수상 예방 후 시아누크공을
    예방하고 연설을 통하여 영국이 캄보디아와의 우호관계 증진을 희망한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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