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IAEA 총회, 제3차. Vienna, 1959.9.14-22 ( http://opendata.mofa.go.kr/mofadocu/resource/Document/150 ) at Linked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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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AEA 총회, 제3차. Vienna, 1959.9.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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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897-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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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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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IAEA 제3차 총회가 1959.9.22~10.2.간 비엔나에서 개최되어 김법린 원자력원장(대표), 손원일 주독대
    사(교체대표), 기타 원자력연구소 관계관 등 5명이 한국대표단으로 참석함
    2. 우리 정부는 대표단에 대하여 전체 회의에 앞서 개최되는 각종 위원회의 의제 논의에 적극 참여할 것,
    IAEA 사무국 관계자들과 공식 또는 비공식 접촉을 통하여 IAEA의 한국인 직원 채용을 위하여 노력할
    것, 공산 블럭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회의를 이용하려 할 때는 우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조치를 취할 것 등을 훈령함
    3. 우리 정부는 IAEA 사무국 요청에 따라 1960년도 한국 원자력사업의 개요, 1960년도 IAEA 예산안에
    대한 의견서, 후진국의 원자력개발 촉진을 위한 권고사항 등의 자료를 제출함
    4. 총회의 주요 경과는 다음과 같음
     총회 의장에는 일본 후보와 불가리아 후보가 경합하여 자유진영의 지지를 받은 일본의 후루우
    치가 39대15의 표차로 선출됨
     공산국가들은 자유중국의 대표권을 부인하면서 자유중국의 축출을 기도하였으나 압도적인 수로
    부결되었고, 이 과정에서 한국 대표단은 공산측 주장을 저지하고 자유중국의 정통성을 적극 옹호함
     한국 대표는 총회 시 기조연설을 통해 IAEA의 한국 지원에 대해 사의를 표하고 극동지역훈련센터
    설립 등 저개발국에 대한 IAEA의 지원 강화 필요성을 언급함
     한국의 임기 만료로 공석이 된 이사국에 필리핀이 선출되었으며, 태국은 동남아지역 이사국
    진출에 실패함
     자발적 기여금 서약위원회에서 한국 대표단은 1960년도에 2,000불을 기여하겠다고 밝힘
     한국의 유엔 분담금 비율의 증가로 인해 IAEA 분담금도 종전의 0.13에서 0.19%로 인상되었으며,
    우리 대표단은 우리의 분담금을 현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교섭하였으나, 대부분의 회원국이
    자국의 분담금 인상과 관련되는 조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여 교섭에 성공치 못함
     제4차 총회는 1960.9.20. 개최키로 함
    5. 총회 참석 대표단들은 회의 기간을 계기로 이태리, 스위스, 영국, 프랑스의 핵관련 시설을 시찰하는
    일정을 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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